빗소리가 고요히 내려앉은 날이었다.
오전의 일정이 어그러졌다.
마음이 무너질 것 같았다.
그래서 무작정 집 앞 야산으로 발길을 옮겼다.
가파른 오르막을 몇 걸음 오르자,
촉촉한 흙내음이 진하게 코끝을 스쳤다.
도심 한가운데서도 자연은 이렇게 고요히 숨을 쉬고 있었다.
발밑의 흙이 부드럽게 밟힐 때마다
머릿속에 뒤엉켜 있던 생각들이 조금씩 풀리는 기분이었다.
비에 젖은 나뭇잎이 작은 빗방울을 떨구는 소리,
가끔 나뭇가지 사이를 스치는 바람의 숨결.
그 모든 것이 마음을 천천히 어루만져 주었다.
문득, 어디선가 은은한 아카시야 향이 스며들어왔다.
잎사귀 사이로 흰 꽃들이 빗방울을 머금은 채
조용히 피어 있었다.
잠시 눈을 감고, 숨을 깊이 들이마셨다.
달콤하면서도 쌉싸름한 그 향기.
그 향기가 나를 조용히 안아주는 듯했다.
지친 마음을, 쓸쓸한 어깨를,
그리고 다시 일어서고자 하는 작은 용기를.
아카시야는 참 묘한 나무다.
여린 꽃잎으로 잔잔한 위안을 주면서도,
단단한 뿌리로 제 자리를 지키는 강인함을 가졌다.
그 나무 아래 서 있는 동안,
잠시나마 도심의 소음도 마음의 무게도 잊게 되는 기분이었다.
비는 여전히 내리고 있었지만,
어느새 내 마음은 조금씩 가벼워지고 있었다.
초록의 숨결이 나를 감싸는 순간,
나는 잠시나마 도심을 벗어난 기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