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화. 사라지는 색, 남겨진 감정

by 권성선

이상했다.

분명히 보였던 색이

어느 순간부터 조금씩 흐려지기 시작했다.

사람들의 어깨 위를 떠다니던 빛,
말보다 먼저 도착하던 감정의 흔적들.
그 모든 게
서서히, 조용히, 희미해지고 있었다.


처음엔 피곤해서 그런 줄 알았다.
하루쯤 쉬면 괜찮아지겠지 싶었다.
하지만 며칠이 지나도 색은 돌아오지 않았다.

마치, 감정을 보는 필름이 어디선가 찢겨나간 듯했다.


나는 불안해졌다.
색이 없으니, 사람의 표정이 낯설었고
말 한마디에 담긴 감정을
예전처럼 바로 알아챌 수 없었다.

그건 마치

오랫동안 쓰던 언어를 갑자기 잃어버린 것 같은 감각이었다.


그의 얼굴도, 그의 마음도
이젠 선명하게 읽히지 않았다.

나는 그에게 물었다.
“요즘 제 감정이… 잘 보이지 않아요.”
그는 놀라지 않았다.
다만 조용히 물었다.

“당신은 지금, 어떤 감정을 느끼고 있어요?”

나는 한참을 망설이다 작게 대답했다.
“…두려움이요. 그리고 공허함.
무언가를 잃어버린 느낌이에요.”

그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색이 안 보인다는 건,
당신이 스스로의 감정을 더 가까이 느끼고 있다는 뜻일지도 몰라요.”


그 말이 이상하게 마음에 오래 남았다.
감정을 ‘보는 것’이 아니라

‘느끼는 것’.
나는 그동안 감정을 너무 멀리서만 바라본 건 아니었을까.


색은 줄었지만,
대신 감정은 더 깊이 가라앉았다.
말 한마디가 오래 머물렀고,누군가의 침묵이 더 크게 다가왔다.

나는 이제야 조금 알 것 같았다.
감정이란,
색으로 번역되지 않아도
충분히 나를 흔드는 존재라는 걸.


색이 사라져도 감정은 남는다.
그리고 그 감정은
오히려 더 선명하게 나를 울리고 있었다.

화, 목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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