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화. 마음의 이름을 짓는 일

by 권성선

나는 지금껏 감정을 색으로만 불렀다.

노란 기쁨, 파란 슬픔, 붉은 분노, 회색 불안.
이름을 붙이지 않아도,
그 색은 내 안에 정확히 어떤 감정인지 알려주곤 했다.

하지만 언젠가부터,
그 색들만으로는 마음을 다 설명할 수 없다는 걸 느끼기 시작했다.


그날, 서점 남자와 나는 오랜만에 밤까지 이야기를 나누었다.

마지막 책장을 덮고, 그는 내게 물었다.

“당신은 지금, 무슨 감정 속에 있어요?”

나는 대답하지 못했다.
무슨 색인지는 알겠는데, 그 색이 말로는 설명되지 않았다.

그건 연한 분홍빛과 회색이 섞인 색이었다.
조금은 서글프고, 조금은 따뜻하고,
조금은 불안하면서도 조용히 설레는 마음.


그날 밤, 나는 집에 돌아와 조용히 속삭였다.

“이건, 그리움 같아.”

이름을 붙이자 감정은 조금 명확해졌고, 덜 무서워졌다.
내가 뭘 느끼고 있는지 아는 것만으로도
조금 더 단단해지는 기분이었다.


그 이후로 나는 내 감정에 천천히 이름을 붙이기 시작했다.

슬픔은 그냥 파란색이 아니라,
‘놓아주고 싶지 않은 아픔’이라고 불렀다.
기쁨은 노란빛이 아니라,
‘혼자 있어도 괜찮다고 느끼는 순간’이라 했다.
불안은 회색이 아니라,
‘사라질까 봐, 말하지 못하는 마음’이라 불렀다.


마음의 이름을 짓는 일은 스스로를 이해하는 일이다.
그리고 더는 내 감정을 외면하지 않겠다는
조용한 선언이기도 하다.


나는 그에게 말했다.

“오늘의 색은요, 그리움이에요.
하지만 그리움이 꼭 아프기만 한 건 아니네요.
그리워할 수 있는 사람이 있다는 건,
내가 마음을 열고 있다는 증거 같아서요.”

그는 잠시 내 말을 바라보다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이름을 붙인 감정은 더 이상 방황하지 않아요.”
그의 말이었다.


이제 나는 안다.
색을 보는 능력은 내 안에 있었고,
감정에 이름을 붙이는 용기는
타인과의 관계 속에서 조금씩 자라난다는 것을.

화, 목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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