색이 보이지 않는 시간은
생각보다 고요했다.
혼란과 불안이 지나가고 나니,
그 자리에 남은 건 묘한 침묵이었다.
그 침묵은 무서웠다.
감정의 색 없이 바라보는 사람들은
이전보다 낯설게 느껴졌고,
나 자신조차도 잘 모르겠는 날들이었다.
어느 날은 하루 종일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출근길 지하철 안에서도,
카페에서도, 서점에서도.
나는 그저 조용히 앉아
마음속에 퍼지는 무언가를 느꼈다.
그건 말로 설명할 수 없는
텅 빈 공간 같은 감정이었다.
그 침묵 속에서,
나는 오래된 감정을 마주했다.
기억 속에서 밀쳐두었던 말들,
누구에게도 털어놓지 못했던 상처들.
그리고 그 감정들은
생각보다 조용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울지도, 소리치지도 않은 채
그저 내 안에서 조용히 숨 쉬고 있었다.
나는 조금씩 깨달았다.
감정은 꼭 드러나야만 하는 게 아니란 걸.
소리 없이 존재하는 감정도 있고,
말 없는 감정일수록
더 오래, 더 깊게 머문다는 걸.
서점 남자에게 나는 처음으로
이야기 대신 침묵을 건넸다.
우리는 함께 앉아 있었고,
그는 나의 침묵을 해석하려 하지 않았다.
대신 말없이 책을 내밀었다.
페이지 한가운데 줄이 그어진 문장이 있었다.
“감정은 언어 이전의 것,
존재 그 자체.”
나는 조용히 책을 덮었다.
그 문장이, 지금의 내 감정을 가장 정확히 설명해주고 있었다.
그날, 나는 집에 돌아와 일기장에 한 줄을 적었다.
“침묵은, 감정이 쉬어가는 시간.”
그리고 나는 그 조용한 감정을
처음으로 있는 그대로 끌어안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