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화. 말 없는 공감

by 권성선

그날, 우리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누구의 감정이 무거웠는지,
어떤 일이 있었는지
굳이 묻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그는 조용히 내 앞에 커피 한 잔을 놓았고,
나는 말없이 책을 펼쳤다.
우리는 그저 같은 공간에 앉아
서로의 숨결이 닿는 거리를 조심스럽게 지켰다.

말이 없는 대신,

공기 사이에 감정이 흐르고 있었다.
그의 감정은 오늘,
바람에 흔들리는 초록 이파리 같았다.
가볍게 떨리고 있었지만, 꺾이지 않는 어떤 단단함이 있었다.

내 감정도 그에 닿고 있었다.
나는 그 초록을 조용히 따라가며,
그의 마음 옆에 내 감정을 가만히 놓아두었다.

감정은 말이 없어도 도착한다.

어쩌면 말보다 더 먼저.
때로는 말이 없는 것이
가장 깊은 공감이 되기도 한다는 걸
우리는 오늘 알게 되었다.

책을 덮고, 우리는 동시에 창밖을 바라보았다.

바람이 지나가고 있었고,
햇살이 테이블 위에 머물러 있었다.

그가 입을 열지 않아도,
나는 그가 ‘지금 괜찮아지고 있다’는 걸 느꼈다.
그리고 나 역시,
내가 괜찮아지고 있다는 걸 느꼈다.

우리는 서로 마음을 교환한 것이 아니라

마음 옆에 앉아 있었을 뿐이다.
그것만으로 충분한 날이 있다.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그날 우리는 가장 많은 것을 나눴다.

그날 이후,

나는 공감이란 단어를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그건 상대의 감정을 이해하겠다는 의지가 아니라,
그 감정이 사라질 때까지 옆에 함께 있어주는 일.

그 침묵이 무엇보다 따뜻했다.

화, 목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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