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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관계 에너지 낭비 줄이기

관계유지를 위해 나를 희생하지 말 것

by 유주씨

내가 인간관계를 줄인 건 서로 말이 통하지 않기 시작한 걸 감지했기 때문이다. 인간관계를 유지하는 데도 에너지(시간, 돈, 정신력)가 들고, 때론 인정욕구를 채우기 위한 정신적 노동을 하고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그래서 인간관계를 줄이고 나서는 절약, 단순함, 건강회복으로도 이어지는 선순환을 만들어가고 있다.



주변인들과의 낮은 수준의 감정적 동질감, 수시로 남을 험담하면서 자신의 불안을 덮는 분위기에 더 이상 동조할 수 없었다. 낮은 에너지가 진동하는 관계가 나를 좀먹었고 그 밥에 그 나물 같은 레퍼토리의 대화에도 질렸다. 이렇게 선언할 수 있게 된 이유는 내가 자신을 세워나가는 과정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나도 남들처럼 살고 싶다는 바람에서 나온 열등감을 먼저 인정한 다음, 나에게 맞는 방식은 어디 있는가에 대한 오랜 탐구를 했다. 나는 오랫동안 여기 휩쓸리고 저기 휘둘리며 살았다는 걸 깨달았고 내 마음의 중심자리를 남이 차지하게 내버려 뒀단 걸 알았다.



내 마음엔 오랫동안 채워지지 않는 인정욕구가 있었고, 그걸 채우기 위해 주변인들과의 관계의 불편함을 참아가며 자신이 없는 관계를 만들고 있었다. 어느 순간부터일까. 나는 그들의 부정적인 감정호소와 동질의식, 험담으로 만들어진 동맹을 깨부수기 시작했다. 나쁜 에너지에 공명하는 걸 멈추기로 결심한 것이다.





지인과의 일화를 예시로 들자면, 그녀가 내게 한 인터넷 글을 보여줬을 때다. 30대 남자가 30대 여자를 만나자니 나이 든 티가 나는 주제에 조건은 잘 따진다고 써놓은 글을 보여주며, 그녀는 내게 같은 30대 미혼녀로서 같이 크게 분노하길 기대했다. 그러나, 나는 그것이 에너지 낭비인 걸 알고 동조하지 않았다. 분노한다고 30대인 우리가 20대로 회춘하나?



”이게 뭐 어때서요? 이 남자 입장에선 자기 경험상 그랬나 보죠. 우리부터도 나이 먹은 티 나고 어릴 때보다 눈도 높아진 게 맞는데, 뭐.“





또 지인은 겹지인의 사정을 들먹이며 험담을 했다. 겹지인의 부모님이 맞벌이를 하셨는데, 합친 수입보다 자기 아버지의 외벌이 수입이 비슷하거나 더 많았다는 말이었다. 그 말을 하는 이유는 남의 부모님 능력을 낮추고 자기 아버지의 수입이 많았다고 자랑하며 자존감을 올리기 위한 아주 유치한 수작이었다. 아버지가 잘 버셨네요 라는 말을 듣고 어깨를 으쓱하고 싶어 하는 마음, 그걸 간파한 나는 절대 가담하지 않기로 했다.



“그게 뭐 어때서요? 그 친구 부모님 두 분이서 열심히 일해서 딸 잘 키우셨으면 됐죠. 모두가 다 능력자로 살 순 없어요.”



그녀는 입을 다물었다. 결국 우리는 뻔한 화젯거리에다 유치한 방식으로 공감을 주고받는 걸 그만하기로 암묵적 합의하게 된 것이었다. 그 후, 대놓고 그녀의 헐뜯음의 화살은 나를 향하기 시작했고 마침내 관계는 막을 내렸다. 오히려 잘 된 일이었다.





자신을 돌아보지 않고 산다는 건 세상을 바라보는 시야도 좁아진다는 걸 알게 되었을 때, 비로소 나는 자신에게 완전히 집중할 수 있었다. 내 마음의 중심자리를 탈환했으며, 그 자리는 그 누구에게도 침범당하지 않도록 경계선을 확실히 그어두었다.


인정욕구는 외부에서 들리는 공감, 위로 한 마디론 절대 채워지지 않는다. 내가 나 자신의 감정을 있는 그대로 수용하는 게 첫째고 좋은 방향으로 변하는 노력은 플러스알파, 덤이라는 걸 알았다. 진정한 에너지 절약은 내면에서부터가 시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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