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추운 날의 상경
시골집에 있었을 때, 친할머니가 키우시는 고양이가 3개월 된 새끼에게 뒷발차기를 하면서 독립시키려 하는 모습을 봤다. 그걸 보신 엄마는 느낀 바가 있었는지 뒷발차기 같은 큰 호통과 잔소리로 결국 나를 출가하게 만들었다.
어느 날 벼락 같이 아침부터 가방 하나에 지갑, 휴대폰, 충전기, 텀블러와 립스틱만 챙겨서 도망치듯 집을 나왔다. 다신 집에 들어올 생각은 하지도 말라는 엄마의 고함에 곧장 서울에 있는 오빠집으로 가려고 서울행 버스를 탔다. 착잡했지만 올 게 왔구나 싶기도 하고 서러울 자격도 없는 것 같아 울음을 참았다.
전회사에서 1년 넘게 일해서 모은 2천만원도 아직 있으니 처음 월세방 얻고 자리 잡는 데는 문제가 없을 것 같았다. 일단은 오빠에게 양해를 구하고 당분간 집을 얻을 때까지만 신세를 지기로 했다. 믿을 구석이 있어서 얼마나 다행인지 몰랐다.
오빠는 이 상황을 예상했다며 신중하게 많이 알아보고 천천히 집을 구해보라고 했다. 소식을 들은 엄마는 무슨 고생을 하려고 올라갔냐며 오빠를 통해 잔소리를 또 전해 들었다. 엄마 말씀 그대로 듣기도 싫고 고향에는 내가 돌아갈 자리가 이제 없다고 과감하게 마음을 먹었다.
가출인지 출가인지 모르게 갑자기 이사 온 나는 이제 할 일이 너무 많다. 고향집에 두고 온 물건들을 뒤로하고 다시 하나씩 사들여야 하고, 월세로 살 집을 구하고 직장도 얻어야 한다. 북적이는 거리에서 급히 필요한 생활용품을 사들고 걸어오면서 이제 다시 독립에 도전한다는 게 실감이 났다.
누군가에게는 당연한 게 당연하지 않았던 나에겐 묵직한 무게와 불안감이 느껴지지만, 기회가 더 많고 새로운 환경에서 도전하면 뭔가 얻을 수도 있겠다는 작은 기대도 생겨나고 있다. 뒷발차기 맞고 막 독립한 새끼고양이처럼 씩씩하게 다시 살아가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