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할 수 있는 것부터
나는 즉석복권이나 로또를 한 번씩 사 왔다. 일주일에 오천원이나 만원을 썼고, 당연히 잘 되어 봤자 5등 두 줄로 만원이 당첨되는 수준이었다. 그런데도 왜 계속 로또를 사는가 하면 백수생활을 하고 싶어서가 아니라 변화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로또를 사면서 혹시나 돈이 많아졌을 때 내가 하고 싶은 일을 곰곰이 떠올려 봤다. 예상외로 집순이 생활은 즉시 청산하려 했다. 밖에 자주 나가면 돈이 드니까에서 출발했기 때문이다. 이후, 요리를 배우러 해외를 다녀오고 요식업 알바를 하면서 치열하게 연구해 식당을 차려보도록 투자할 수 있겠다는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 잠깐 꿈꾸는 데는 비용이 안 든다.
대도시로 이사를 오고 매일 요리를 해 먹으면서 맛 내는 일이 굉장히 흥미롭다는 걸 느꼈다. 집순이로 산 세월이 길다 보니 해 먹었던 경험도 있고 직접 해 먹어보면 또 맛이 괜찮다. 지금 같이 살고 있는 친오빠도 요리솜씨가 좋다고 했지만 뭔가 갈증이 난다. 직업적으로 연결이 되든 안 되든, 요리 자격증을 따거나 해서 시원하게 파헤치고 싶다.
오래 전에 사주를 보러 가서 재밌는 얘기를 들었다. 음식 맛을 잘 내는 사주를 타고 난 사람들이 있는데 내 경우가 그렇다고 했다.
엄마 말씀, “그럼 얘는 분식집을 차려줘야겠네요?”
그땐 현실적으로 당장 할 수 없는 일이라 웃고 넘기긴 했지만 인생의 장기 프로젝트로 가면 얘기가 다를 수 있다는 걸 깨달은 건 수년이 지나서였다.
그동안 인생에 대한 자괴감이 들 때가 많았는데 그건 내게 장기 프로젝트가 없어서였다. 당장 굶어 죽지도 않고 빚도 없다 보니 목표의식이 없고 오히려 허무했다. 그러나 희번뜩하게 떠오른 언젠가 개점할 나의 카모메 식당, 심야식당 같은 상상이 지금 뭐라도 시작해야 할 이유를 찾게 했다.
현재 돈이 적으니 일단 벌면서 요리를 제대로 배우고 연구해 볼까? 로또가 되면 실현을 앞당길 수도 있지만 될 리가 없고 재미도 없다. 장기 프로젝트를 하는 과정에서 온갖 희로애락을 소주 한 잔에 담아 “이게 인생이지, 짠” 하고 풀어낼 맛(?)이 상상된다.
자영업자들의 차디찬 현실은 익히 들어 알겠지만, 조용한 집순이의 머릿속 만큼은 이렇게 반짝이고 화려하다는 사실도 아시는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