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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방구 플렉스 초딩이 변했다

10만원 빤스는 입을 수 있을까

by 유주씨 Jan 22. 2025

 발랄했던 초딩시절, 용돈만 받으면 문방구로 오토바이처럼 달려 나갔다. 30대가 되어 엄마와 집정리를 하다가 오빠의 초딩일기장을 발견했는데 그 증거가 남아있었다. 동생이 용돈을 받자마자 금방 다 써버리고 부모님께 더 달라고 말하는 걸 보고 우리 집 가계 걱정과 동생의 씀씀이에 대한 탄식을 쏟아내는 장남의 일기였다. 연필로 또박또박 적은 게 야무지고 귀여웠다.



 글쎄, 행운인지 불행인지 성인이 되어 신경증으로 돈 버는 게 너무 벅차지자 헛돈 날리는 버릇이 싹 고쳐졌다. 이것도 금융치료랄까. 어느 정도냐면 재작년쯤 요양을 위해 우리 집에 2주간 머무셨던 외할머니도 “내가 보니까 넌 헛돈을 절대 안 쓰는구나.” 하시더란. 속으로 ‘가끔은 써요’ 했지만 손녀 중에 우리 ㅇㅇ이가 제일 똑똑하다고 자주 말씀하시는 외할머니를 실망시킬 필요는 없겠다 싶어 입을 꾹 다물었다.



 사실 아끼는 게 적성에 안 맞는데 뾰족한 수가 없었다. 덕분에 생활비 대출이라든지 국가 지원금이나 빚을 내어 지낸 적은 없다. 나랏돈도 코로나 때 전 국민 25만원 받은 거 말곤 받은 기억이 없다. 사주팔자에도 없는 근검절약을 하려니 힘들었다. 곳간이 꽉 닫혀있다는 아버지와 달리 내 곳간이 닫혀있다는 말은 들은 적도 없기 때문이다. 나중에 10만원 짜리 빤스 입고 살 거라곤 했다만.



 

 하지만 이제 무작정 아끼는 건 옳지 않다. 사회로 재진출 했고 한 직장을 1년 이상 다녔고 돈 버는 일이 두렵지 않다. 원하는 직종에서 아직 안 뽑아줘서 그렇지. 그래서 얼마 전, 10년짜리 여권을 새로 만들었다. 당장 나갈 계획은 없지만 앞으로 10년을 재미있게 살겠다는 마음을 다지기 위해서였다. 대만여행 이후로 8년 동안 해외를 나간 적이 없어서 아낀 돈도 많을 것이지만 아쉬움도 있다.



 파란 신여권을 꼭 쥐고 다가올 10년을 상상해 본다. 10년 안에 10만원 짜리 빤스를 손에 넣는 날이 올진 모르겠다. 아까워서 옷걸이에 걸어 벽을 장식하고 있으려나. 물론 비유적인 표현이지만 다시 희망을 갖고 산다. 이렇게 문방구에서 용돈을 탕진하던 플렉스 초딩이 주변의 예상과 다르게 커버렸으니 인생은 참 알 수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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