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 시스터즈 키퍼
- 자식의 독립성을 존중하지 못하는 부모들을 위한 영화
- 육아와 정신 없는 현실 "나는 누구인가?"
소설이 원작이다.
가족에 대해서, 그리고 독립된 인간의 존재에 대해서 도덕적 잣대로 생각을 해보게 되는 영화다
이 영화에서 말하고자 하는 내용이 살면서 계속해서 내 머릿속에서 영원히 떠나지 않았으니 좋은 영화였다고 생각이 든다.
내가 내 삶을 살아갈 권리에 대한 것은 아이와 어른 할 것 없이 모든 이이게 평등하게 주어지는 것이며, 이 세상의 모든 것을 이길 수 있는 그 숭고한 모성애도 개인의 존엄과 자유에 대적하지 못한다는 것을 깨닫게 해 주었다. 그것이 죽음에 대한 이야기여도 말이다.
아픈 첫째 딸에게 주기적으로 골수와 세포를 이식하기 위해서 둘째 딸을 낳은 부부.
둘째 딸은 언니에게 치료 명목으로 계속해오던 이식을 이제는 거부하고 엄마를 고소하며 영화가 시작된다. 가족애에 대한 윤리, 존엄, 자유, 인권, 모성애에 대해서 한 번쯤은 깊게 생각해 볼 수 있는 소재였다.
자식에게 집착이 심하거나, 독립을 시키지 못하는 부모를 보면 난 이영화를 꼭 추천한다.
줄곧 사회에서, 그리고 주변에서 자식을 자신의 손에서 놓지 못하거나, 자신의 분신쯤으로 착각하는 부모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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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내 신념대로 아이를 잘 키울 수 있을까
롤리타의 첫 문장을 감히 가져와 쓰자면, 꼬꼬닭은 내 삶의 빛, 내 허리의 불꽃. 나의 죄, 나의 영혼 같은 존재이다.
이 사진은 영화샷로 말하면, 로우 앵글이다.
아래에서 위로 우러러보는 앵글.
주로 존경스러운 인물을 표현할 때 쓰는 앵글이다.
슈퍼히어로가 등장하거나, 엄청난 일을 해결해 줄 수 있는 해결사의 등장, 권위를 강조할 때 이런 샷을 쓴다.
내가 고개를 숙이고 숙여서 존경의 뜻을 담아서 꼬꼬닭을 로우앵글로 찍어봤다.
맘 같아선 시민케인처럼 땅을 파서 찍고 싶었는데...
저 배불룩한 위엄한 자태와 자신을 찍는데 다른 곳을 쳐다보는 오만함까지 정말 대단한 자신감이다.
처음에 아이를 아내가 임신하고 아는 동생에게 여러 옷과 장난감을 나눔 받았었는데
그 동생한테 처음에는 꼬꼬닭님을 알아보지 못하고,
"이건 뭐야? 그냥 닭이네"
"형 그거 애들이 진짜 좋아하는 거야"
라는 대답을 들었었다.
아직도 이 꼬꼬닭은 내 서재방에 고이고이 숨겨 두었다.
정말 必요한 순간에 쓰여야 하기 때문이다.
거의 태어나자마자 꼬꼬닭을 접했음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도 이 꼬꼬닭의 인기는 사그라들지 않는다.
그리고 갑자기 뜬금없는 소소한 팁을 주자면, 백화점이나 대형마트에는 장난감이 무슨 금붙이를 붙여 놓은 것처럼 비싼데, 다이소에서는 정말 질 좋은 장난감 가격이 저렴하다. 그리고 종류도 참 많다.
어차피 아이에게 장난감은 하루 가지고 놀다 버리는 일회용품 같은 것...
하지만 꼬꼬닭은 영원하다.
아이를 키우면서 드는 생각은 행복하고 즐거우면서도 많이 힘이 부친다.
지침의 정도는 공수부대를 막 제대한 내 친구가 스무 살 초반에 나랑 같이 상업 영화 조명팀을 할 때
(내가 너무 힘든 일이라서 하지 말라고 한 달간 말렸으나 계속해서 시켜 달라고 해서 같이 일을 시작했다)
나를 옥상으로 불러내서
"이건 핸드폰 쓸 수 있고, 머리만 기를 수 있는 거 말고 군대랑 뭐가 다른데!!"
하면서 멱살을 잡으며 울었던 그 조명일 보다 더 힘들다.
그 힘듦의 강도와 함께 아이를 키우는 것은,
서로에게 무조건적인 사랑을 주는 시기.
부모가 양치만 해도 까르르 웃는 시기.
아이가 찰싹 붙어 떨어지지 않으려는 시기.
아이에게 부모는 세상이며 그 모든 것인 시기가 바로 이때라고 느껴진다.
다시는 오지 않을 시기라고 느껴져서 하루하루가 아쉽다.
어제는 얼마나 정신이 없던지 분명 머릿속 생각으로는 리스테린으로 입을 헹구고 시원한 물을 마시려고 했는데
행동은 리스테린을 마시고 물을 뱉어 낸 소소한 사건이 있었다.
옷을 거꾸로 입고 다니는 건 일도 아니다. 하루 종일 그렇게 입고 다녔는데 나도 모르고 아내도 몰랐다.
앞으로도 영화와 육아, 일상을 녹여낸 이야기를 브런치에 써 보려고 한다.
재미있는 이야기와 영화를 통해 내가 알 수 있었던 보석 같은 것들을 나눌 수 있으면 참 좋은 사간이 되지 않을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