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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의 파이터

by 박찬수 Mar 14.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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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의 파이터

- 뭔가에 열중 하고 싶을때, 매너리즘이나 번아웃이 왔을때 보면 좋은 영화 

- 힘든일을 겪으며 생긴 처세술 


한 번쯤 인생에서 운동에 미치는 때가 오는 것 같다.

최배달.

운동에 관심이 있다면 들어 봤을 전설의 사나이.


출처 - 네이버 영화 넘버 3 - 스틸컷출처 - 네이버 영화 넘버 3 - 스틸컷

넘버 3 - 스틸컷

난 넘버 3에서 송강호 님이 건달 부하들에게 정신 교육을 하는 장면에서 최배달을 처음 알게 되었다.


"코쟁이와 맞짱뜰 때도 마찬가지야.

딱 나타났다. 헤이 존슨? 유 로버트 존슨? 나 최영의야~그냥 걸어가 뚜벅뚜벅 걸어가..

 팍! 하면 이봐봐 이렇게 팔을 올리게 되어 있어. 뭐뭐.. 이 파..파..팔은 뭐..니살 아니야?? 이러면서 X나게 내려치는 거야~ 파.. 팔 치울때 까지!!!!"


이 장면이 어찌나 재미있던지 어렸던 나는 이 장면만 한 백번은 돌려 봤던 거 같다.

지금 글을 쓰면서도 거의 외워서 쓰는 수준인데, 쓰면서도 웃고 있다.

송강호 님은 들은 바로는 편집실에 가장 먼저 나와서 문 앞에서 꾸벅꾸벅 졸고 있었던 배우라고 들었다.

편집을 할 때 배우가 옆에 있으면 얼마나 부담스럽겠나?라는 생각이 들면서도 참 남다른 분이라고 생각이 든다.


다시 바람의 파이터로 돌아와서,

격정적인 장면이 바로 떠오른다. 다 해진 도복을 입고, 갈대숲을 달려 나가던 최배달의 모습, 벌거벗은 모습으로 설원의 숲 속에서 미쳐 날뛰는 모습, 나무와 돌에 맨손으로 피가 나도록 내려치는 모습.

이런 경이로운 모습의 삶을 보고 있으면 생각하게 된다.


우리 삶에서 한 번이라도 무언가에 미쳐서 피가 나도록 신념을 지키고 싶었던 게 있었던가?


"나는 싸우는 것이 두렵다.

맞는 것이 두렵고,

지는 것이 두렵다.

싸우다 죽는 것보다,

불구나 폐인으로 살아남을까 봐 더욱 두렵다."


이 대사를 들었을 때 처음엔 조금 의아했었다.

내가 기존에 알고 있던 영웅물과는 다른 모습이 보였기 때문이다.

영웅은 언제나 강인해야 하고, 약한 모습을 남에게 보이면 안 되는 것이라고 나도 모르게 정하고 있었던 건 아닌가? 하고 갸우뚱했던 기억이 난다.

그리고 저 말에 나는 공감이 갔다.

두려운 것은 누구나에게 당연한 것이지 그것이 아예 없는 사람들 대부분 없을 테니까 말이다.

문창과를 다녔을 때 내 첫 시 발표 때가 그랬다.

나는 사람들에게 발표하는 것이 두렵고, 교수님께 까이는 게 두렵고, 사람들에게 전혀 알아듣지 못할 말들만 썼을까 봐 두렵고, 겉멋 들었다고 욕할까봐  두렵고, 다시는 글을 쓰지 못하고  키보드를 보면 벌벌 떠는 글쓰기 불구나 폐인으로 살아남을까 봐 두려웠다.

결과는 참혹했다. 거의 학번과 이름 빼고는 모든 게 비문이라고 난자를 당했던 기억이 있다.

그냥 내 시 발표문을 찢어도 이상하지 않는 분위기였다.

첫 합평은 무서운 것이었다.

머리가 멍해졌다. 그럴 땐 역시 술을 마셔야 했다.

다행히도 친구들이 학교 끝날 즈음에 날 부르고 있었다.

그렇게 저녁에 친구 집에 가서 삼겹살에 소주를 무진장 마시고는 거나하게 취했다.

잠시 바람이나 쐴 겸 옥상에 올라와 담배를 피우고 있는데,

건물 앞에 꼬마 남자아이와 30대 후반쯤으로 보이는 아빠가 심각하게 대화를 하는 것을 보게 되었다.

 얘기를 들어 보니 아이는 학원을 빼먹었고, 아빠는 그것에 배신과 분노를 느껴 아들을 쥐 잡듯이 잡고 있었다. 아이는 금방이라도 눈물을 흘릴 것만 같아 보였고, 고개를 푹 숙이고 있었다.

난 그 아이의 모습에서 바로 내가 방금 학교에서 깨지던 모습이 디졸브 되어 겹쳐 보였다.

나도 모르게 소리쳤다.

"뭐 그럴 수도 있지 뭐!!!!!!!"


친구들은 숙이라며 바로 나를 잡아끌었고, 나는 뭔가 울분을 더 토해 내고 싶었지만, 친구들이 입을 막아 버려서 더 이상 말을 할 수는 없었다.

잠시 뒤에 건물 아래를 보니 아빠와 아들은 어느새 사라지고 없었다.

그 뒤로 나는 합평을 할 때마다, 내가 무언가 심하게 내려치며 손에서 피가 나는듯한 노력을 해서 만든 작품들이 다른 사람에게 감동을 주지 못해도 "뭐 그럴 수도 있지 뭐!" 라고 생각하곤 한다.

내가 정신적 불구가 되어 아무것도 안 하는 게 더 무서운 것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꾸준히 무언가를 하면 무언가가 되어 나에게 돌아온다고 아직은 믿고 있다.

모든 일이 계획대로 될 수는 없고, 내 기대만큼 안 되는 것도 인정해야 한다라는 걸 그렇게 받아들이게 되었나 보다.

운명은 잘 모르겠고, 인연은 믿는 나로서는 지금 장기수료생으로 남아 있는 대학원의 내 지도 교수님이 바람의 파이터를 만드셨던 감독님이다.

졸업 단편을 3년 동안 만드는 나에게 문자로 "너 장편 찍냐?" 라고 하셨는데

계속 답장을 못하고는 그 해가 가고, 새해가 되었을 때 새해 복 많이 받으시라고 문자를 보냈다.

읽씹 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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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그럴 수도 있지 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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