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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감사람 Mar 10. 2023

김밥 한 줄로 받은 대접

연신내 연서시장

연신내는 맛의 동네다. 유명한 맛집이 너무 많다. 나는 왜 먹방 유튜버 같은 사람들처럼 많이 먹지 못할까 아쉬울 따름이다. 이미 저녁을 먹은 후였지만 연서시장 안에 있는 먹거리 구역을 그냥 지나칠 수 없었다. 지난번에 어찌어찌하다 구경밖에 못했는데 오늘도 둘러만 보고 가는 건 예의가 아니었다.


김밥 가게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는 곳이다. 맘 같아선 김밥을 종류별로 먹고 싶었다. 하지만 배가 도저히 꺼지질 않는다. 김밥을 딱 한 줄만 먹기로 했다. 여러 가게 중 한 곳을 골라 치즈김밥 한 줄 포장 주문을 했다. 김밥 한 줄밖에 먹지 않는데 접시 나오는 게 미안했기 때문에 포장을 한 후 차에서 먹으려고 했다.

그런데 생각해 보니 차에서 처량하게 먹는 모습도 웃기고 괜한 쓰레기들이 더 나와 환경에 안 좋은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무엇보다, 분위기파인 나는 이 자리에서 이 감성을 즐기고 싶은 욕구가 솟았다. 앉을자리도 여유가 많았고 그냥 먹고 가겠다고 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주문한 치즈김밥이 나왔다. 동시에 한 사람당 하나씩 두 개의 뜨끈한 어묵국물이 그릇 가득히 나왔다. 보자마자 군침이 도는 맛깔나게 생긴 김치까지 푸짐하게 퍼 주셨다. 김밥보다 딸려 나오는 게 더 많았다. 배보다 배꼽이 더 큰 꼴이었다. 당황하여 손사래를 쳤다.

“저녁을 먹었는데 김밥 맛만 보고 싶어서 한 줄 시킨 거니 이렇게 안 주셔도 돼요.”

"에잇! 김밥 한 줄을 먹더라도 제대로 해놓고 먹어야지. 우리가 직접 담근 김치인데 엄청 맛있어요. 많이 먹고 부족하면 말해요."


열기가 계속해서 올라오는 환경에서 일하는 얼굴로는 보이지 않았다. 맑은 피부와 눈빛을 가진 사장님이 웃으며 찡긋하신다. 저 정도의 나이가 되면 살아온 흔적이 얼굴에 쓰인다는데, 과연이었다. 피부가 좋다는 게 아니라 그냥 자체로 반짝반짝 빛나고 순수한 분이었다. 순간적으로 후광이 비치는 것 같기도 했다.

아무리 몇 분쯤 앉았다 가도 될 정도로 자리가 남아 있다고 해도 요즘처럼 고물가 시대에, 4천 원 벌자고 김밥 말고 설거지하고 직접 담근 김치까지 아낌없이 주는 곳이 있을까.


이윤을 최대한 남기는 것보다 손님에게 제대로 음식을 주는 게 중요한 분 같았다. 나는 김밥 한 줄에도 귀한 손님이 되었다. 다른 사람을 예수님 대하듯 귀히 여기라는 성경 말씀이 갑자기 떠오른다. 사장님의 종교는 모르지만 몇 천 년 동안 가장 많이 팔린 책 속의 중요한 가르침을 그대로 실천하고 계시는 모습이 아름답고 멋져 보였다.


보기 좋은 김치는 역시나 별미였다. 염치불고하고 "없었으면 어쩔 뻔"이라는 말이 자꾸 튀어나왔다. 처음에 많이 주신 탓에 김밥을 다 먹었는데도 김치가 남았다. 결국 참치김밥 한 줄을 더 시켰다. 맛 좋은 김치가 꽉 차 있던 위장에 조금씩 공간을 낸다. 자꾸만 들어가는 게 신기했다. 그리고 이 모든 게 사장님의 큰 그림이었나 하고 피식 웃음이 나온다.


그릇 다섯 개를 설거지를 하다시피 말끔히 먹고 기분 좋게 인사하며 밖으로 나왔다. 나를 귀한 손님 대접해 준 가게를 한 번 더 뒤돌아본다. 마음까지 든든해진 김밥 두 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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