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근 후 유행하는 디저트를 사들고 집에 왔다. 조금 전 엄마랑 시음한다고 에스프레소를 두 잔이나 마셔서 두바이초콜릿쿠키는 커피 대신 우유와 함께 먹기로 한다. 중복이 지나고 여름의 한창때를 보내고 있지만 내 방은 에어컨이 없다. 탁상용 선풍기 하나에 의지하여 나만의 휴식을 취한다. 이 작은 선풍기로는 방의 후덥지근한 공기가 시원해지진 않지만 견딜만하다. 충분히 행복하다. 이렇게 갇힌 듯한 공간에서 휴대폰을 하고 책을 읽는 게 점점 더 좋아진다. 이러다 외톨이가 되는 건 아닐지 무서울 지경으로 이런 시간이 좋다.
앉아서 공사다망했던 지나간 한 해의 절반을 돌아본다. 정신이 어지럽게 바쁜 날이 끝을 모르고 이어졌었다. 다행히 요즘은 봄비 같은 여유가 찾아왔다. 체력의 한계를 느끼고 있었는데 역시 그냥 죽으란 법은 없다. 휴가철이라 사람들이 다 피서를 떠난 걸까. 오랜만에 숨 쉴 틈이 생겼다. 비축한 체력으로 내일 무엇을 읽을지 고민할 수가 있게 되었다. 마치 전 날 미리 퇴근길에 들을 플레이리스트를 한 곡씩 담는 것처럼 읽을 목록들을 맘껏 상상한다. 무언갈 읽고 있다는 것도 잊은 채 제멋대로 다른 생각으로 넘어가기도 한다.
집중이 흐트러져 거울을 들여다봤다. 지저분하게 자란 눈썹을 정리하고 괜히 관자놀이를 눌러본다. 집 밖에서도 비슷하다. 생각할 겨를 없이 일을 하다가도 집중력이 분산된다. 거울을 보듯이 다른 사람들을 관찰하고 그들의 행동을 인식한다. 그들이 내 거울이 된다. 기분 나쁜 사람을 보면 나도 하루의 기분을 망치고 슬픈 사람을 보면 같이 눈물이 난다. 남들의 표정이나 감정에 쉽게 동화되고 휘둘린다. 그래서 어느 공동체에 속해 있느냐가 나는 더욱 중요하다. 거울 신경세포가 꽤 열일을 하는 것 같기 때문에. 부정적인 것들은 더 빨리 흡수하기 때문에.
나의 하루 중 제일 오랜 시간을 보내는 건 병원 사람들일 것이다. 그중에서도 우리는 원장님과 붙어서 일해야 하는 직업이다. 회사의 대표와 이렇게 가까이서 작업하는 직장인은 아마 별로 없을 것이다. 그래서 더욱 원장님의 언어가 중요하다. 다행히 나는 여기서 원장님의 좋은 언어를 배우고 있다. 원장님이 다정하게 "~해주세요." 하면 나도 모르게 세상 착한 목소리로 "넵~" 하게 된다. 마치 산에서 메아리가 치는 것처럼 일부러 따라 하지 않아도 거울세포가 복창을 한다. 오차 없이 들어맞는 건 아니어도 높은 확률로 가는 말이 고우면 오는 말도 고와진다.
거울 속 나를 본다. 내 눈에 내 얼굴이 비치듯 내가 한 말은 결국 나한테 들린다. 거울을 보다가 거울 세포라니. 역시 나는 삼천포의 대마왕이다. 다시 마저 두바이초콜릿을 먹는다. 싸구려 단맛이 아니라 아작아작 소리가 나고 어떠한 얼개가 느껴지는, 왠지 기품까지 느껴지는 단맛이다. 책과 간식이 있고 작은 선풍기 한 대가 놓인 이 방이 내 피서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