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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작가 Aug 23. 2022

적당한 거리두기

고양이처럼 살 수 있다면 (1편)

동물은 강아지가 제일 예쁘다고 생각했었다. 언제나 주인에게 충성하고, 교육시키는 대로 말도 잘 듣는다. 사람을 좋아하고 함께 산책 다니는 것도 좋다. 내가 키울 생각을 하진 못 했지만 내가 강아지에 대해 생각하는 건 이 정도였다. 그런데 친구와 가족의 강아지를 한두 번 데리고 있어 보니 이건 보통 일이 아니었다. 견주들은 정말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즐거워 보였던 산책이 의무가 되니 힘들었고, 사람을 좋아하고 충성스러운 강아지는 내가 없으면 하루 종일 기다리며 문 앞에 하염없이 앉아있었다. 내 삶도 버거운 내게 강아지는 함께 살기에는 지나치게 버거운 존재였다. 사실 난 사람 좋아하는 ‘강아지과’ 인간이었는데.     


사촌언니의 강아지를 이틀인가 돌봐준 적이 있었다. 자주 보던 강아지였고, 아기 때는 사람이 오면 너무 좋아서 오줌을 지리면서 따라오던 푸들이다. 주인이 없어지면 내게 충성심을 보이는 강아지들. 물론 주인이 오면 뒤도 안 돌아보고 가지만. 이 녀석은 너무나 사람을 좋아하는 나머지, 내가 소파에 누웠더니 내 얼굴과 목 사이에 자기 몸을 착 붙이고 눕는 것이 아닌가. 그의 비릿한 냄새가 코를 찌르면서 ‘아, 강아지는 못 키우겠다.’ 싶었다. 조금만 내려가 줄래 하면서 밀었더니 동그란 눈으로 날 쳐다본다. 


'왜 그래? 우리 붙어 있어야지. 내가 좋지 않아?'




그러던 내가 고양이에 급 관심을 가지게 되면서 강아지와 또 다른 매력에 빠져들었다. 

그들의 가장 큰 매력은 ‘적당한 거리두기’. 잡힐 듯 잡히지 않는 그들의 매력.      


루미는 고양이 치고는 굉장히 사람을 좋아한다. 처음 우리 집에 왔을 때부터 루미는 늘 무릎 위에 앉아서 잤다. 오전에 내가 컴퓨터 앞에 앉으면 루미 때문에 꼼짝도 못 하는 경우가 많았다. 잠을 자도 사람이 있는 공간에 와서 자고 늘 곁에 있다. 하지만 그녀는 대부분 약간의 거리두기를 한다. 물론 바로 옆에 와서 철퍼덕 누울 때도 있지만 아우 예뻐하면서 쭈물떡 대다 보면 어슬렁거리며 걸어가 버린다. 

거리는, 내 손이 닿지 않을 만큼의 거리. 딱 그만큼의 위치에 앉아서 쳐다본다. 그러다 우리가 가까이 가면 조금 더 멀리 간다. 아니면 아예 높은 캣타워에서 내려다본다. 무릎냥이라고 좋아했지만 6개월이 가까이된 루미는 더 이상 무릎 위에서 자지 않는다. 


때로 언제나 곁에 붙어있지 않는 루미에게 살짝 서운해하다가도, 언제나 같이 있어줄 수 없는 우리의 상황에서 혼자서도 잘 있는 것이 얼마나 다행인가 싶다. 따로, 또 같이. 각자의 삶을 살면서 함께의 시간을 공유하는 삶. 가장 이상적인 가족의 형태가 아닐까. 네가 나고, 내가 네가 되면 뭔가 복잡해진다. 부모는 자식을 통해 꿈을 이루려고 하고, 자식은 부모가 원하는 삶을 살다 보면 서로 어긋나는 순간이 온다.      


어린 시절 나는 오빠처럼 태권도가 배우고 싶었다. 여성스럽고 늘 부모님 말씀을 잘 들으며 살아왔던 엄마는 나를 엄마처럼 그렇게 여성스럽게 키우고 싶었던 것 같다. 엄마는 여자애가 무슨 태권도냐며 피아노를 배우라고 했다. 난 7살 때부터 중1 때까지 피아노를 쳤다. 중간중간 그만하고 싶다고 했지만 어찌어찌 그렇게 이어왔다. 나는 지금 양손으로도 피아노를 치지 못한다. 복잡한 악보는 보지도 못한다. 다 잊어버렸다. 그 하기 싫은 걸 7년을 꾸역꾸역 쳤는데 다 잊었다. 그때 태권도를 다녔다면 운동이라도 했을 텐데.     


뒤늦게 알았다. 엄마가 어릴 적 피아노를 그렇게 배우고 싶었다고 했다. 돈을 벌면서 조금 배웠는데 그러다 말았다고 했다. 나 피아노 가르칠 돈으로 엄마가 피아노를 배웠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난 안 배워도 괜찮았는데. 진짜 괜찮았는데. 그랬으면 엄마가 노년에 피아노를 치면서 아름답게 시간을 보냈을 텐데. 우리 집에 아무도 치는 이가 없어도 언제나 피아노가 있었다. 가끔 오빠가 칠 줄 아는 딱 한곡. 월광 소나타를 쳐주면 그렇게 좋아하셨다. 내가 아이를 낳고 아이들이 피아노를 배울 수 있는 날이 되었을 때 엄마는 사촌언니에게 빌려줬던 피아노를 내게 주셨다. 결국 너무 오래돼서 나는 다시 중고 피아노를 샀지만 그 피아노가 엄마에겐 꽤나 중요한 것이었나 보다. 그 큰 피아노를 평생 가지고 있었으니.           




형님네 고양이 피노는 아기 때부터 자주 봐왔지만 그땐 나도 동물을 키우지 않아서 놀러 가면 살짝 쓰다듬어 주거나 장난감으로 놀아주곤 했다. 내가 루미를 키우게 되면서 안아도 주고 쪼물거리기도 하고 뽀뽀도 할 수 있게 되었다. 어느 날 피노에게 놀러 가서 나도 피노 한번 안아보자 하고 가까이 가서 안으려는 자세를 취했더니 뒷발로 쓱 밀어낸다. 한 번만 안아보자 했더니 동그란 눈으로 쳐다보면서 조금 더 세게 뒷발로 민다.   

  

‘왜 이래? 너랑 그 정도는 아니거든.’     

‘아 그래, 너랑 나랑 그 정도는 아니지. 우리 애들을 가끔 보는 어른이 갑자기 와서 안아보자! 하면 얼마나 싫겠어. 그래 우린 이 정도 거리를 유지하자.’     




사람 사이에도 적당한 거리가 필요하다. ‘가족 같은 회사’라는 말도 점점 이해받지 못하는 세상이 되어가고 있지 않나. 가족 같이라는 말로 얼마나 막 해대는지. 가족은 아무렇게나 해도 되는 존재가 아니다. 사랑하는 가족이지만 사랑하는 만큼 우리 사이에도 거리가 필요하다. 사랑하고 뭘 많이 해주는 것보다 그들의 삶을 존중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적당한 거리를 두고 필요할 땐 노크를 하고 상대방에 오케이 할 때 그 사람의 공간에 들어가야 하지 않을까. 그것이 존중이고 배려다.      

손이 닿지 않을 정도의 거리에서 바라봐야겠다. 상대방이 무엇을 원하는지. 무엇을 싫어하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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