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이처럼 살 수 있다면 (3)
고양이를 대할 때 아주 중요한 부분이 있다. 고양이가 싫어할 짓을 함부로 하지 않는 거다. 갑자기 큰 소리를 낸다던지, 마구 다가가 만진다던지, 내 마음대로 움직이려고 한다던지. 이런 짓을 계속하다가는 고양이는 앞으로 내게 오지 않을지도 모른다. 심지어는 사랑을 표현하는 것도 지나치면 안 된다. 루미는 이마를 손가락으로 살살 쓸어 올려주면 눈을 살짝 감으면서 만족스러워한다. 몸을 쓰다듬어 주는 것도 좋아한다. 기분이 좋을 땐 발가락을 만지는 것도 놔둔다. 아주 가끔 정말 좋을 땐 배도 쭈욱 내밀어 만져도 가만히 있는다.
이 모든 것은 고양이가 허락할 때까지만 가능하다.
고양이는 자기가 좋은 만큼만 즐기고 그만!이라고 표시한다. 거리를 조금 더 둔다던지 살짝 앙 물거나 손으로 툭 친다. 그랬는데도 계속하면 아예 자리를 뜨고 다른 곳으로 가거나 조금 더 세게 물어버린다. 그래서 고양이와 놀아줄 때는 고양님의 기분을 잘 살펴야 한다.
“아니 내가 동물을 키우는데 동물을 모셔야 하나? 동물 눈치까지 봐야 해?”
“어떻게 주인을 물 수가 있어? 난 역시 고양이는 별로야.”
나도 그렇게 생각했었고, 이렇게 말하는 지인도 많다. 그런데 잘 생각해보면 사실 당연한 거다. 고양이뿐만 아니라 강아지도 마찬가지다. 이건 너무 당연한 배려다. 살아있는 생명에게는 누구나.
내가 원한다고 동물에게 내 마음대로 하는 것이 자연스러운 일일까? 내가 좋아한다고 상대방을 살피지 않고 내가 원하는 대로 하는 것이 당연한 걸까?
안타깝게도 현실에서 이런 일은 너무나 많이 일어난다. 사랑한다는 이유로.
나는 남편과 정말 반대 성향의 사람이다. 대충 알고 결혼해서 참 다행이긴 했으나, 결혼하고 나서도 서로 이 정도로 다를까 싶을 때가 많다. 한 예로, 연애할 때 우린 둘 다 부모님과 함께 살았기 때문에 만나려면 늘 밖에서 만날 수밖에 없었다. 또 남편은 운동도 꽤나 좋아하는 사람이다. 그래서 난 남편이 여행도 좋아하고 꽤나 외향적인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남편은 요리하는 것을 좋아하는 날 보며 여성스럽고 집에 있는 걸 좋아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고 했다.
결혼해서 보니 남편은 여행 갈 생각을 안 했다. 집에서 티브이를 보면서 쉬는 게 제일 행복한 사람이었다. 난 요리가 취미일 뿐 여성스럽진 않다. 결혼 전엔 하루에 한 번이라도 나가지 않으면 두통이 올 정도로 나가는 걸 좋아하는 사람이었다. 게다가 남편은 먹는 것에 큰 취미가 없다. 배부르면 괴로운 스타일이다.
결혼 초 요리를 좋아하는 나는 남편에게 맛있는 걸 많이 해줬다. 특히 아침엔 브런치 스타일로 빵을 만들어주곤 했다. 아침마다 빵을 먹던 남편은 몇 달이 지나서야 실토했다.
“나 원래 아침을 잘 안 먹었어. 그런데 이렇게 매일 아침을 차려줄 거면, 밥을 주면 안 될까?”
빵순이인 나에겐 약간 문화충격이었다. 아침을 안 먹으면 속이 쓰려서 생활할 수 없는 나는 그 후로도 아주 오랫동안 생각했다. 정말로 아침을 안 먹어도 괜찮은 건 아닐 거라고 생각했는데, 남편은 진심이었다. 짜증도 내지 않고 말 한마디 없이 몇 달을 먹어준 남편에게 고마울 정도였다.
생일이 되면 남편에게 맛있는 음식을 만들어주고, 심지어 연예인 도시락처럼 회사에 나눠주는 걸 마련해주기도 했다. 그런데 어느 순간 깨달았다. 남편에게 음식을 마련해주는 건 내가 원하는 거지 그가 원하는 게 아니라는 것을. 난 잘 챙겨주는 멋진 아내가 되고 싶었던 것 같다.
요리 좋아하는 내게 먹을 걸 별로 좋아하지 않는 남편은 좀 싱겁고 재미가 없다. 그리고 남편만 그런가. 안타깝게도 아들도 딸도 그렇다. 다들 기억하시길. 결혼할 남자를 선택할 때 그와 똑 닮은 아들딸을 낳을 수도 있다는 것을. 하지만 먹을 것에 집착하지 않게 되어 오히려 홀가분할 때도 많다. 좋아하는 일도 무거운 의무가 되면 힘들어지니까. 나 혼자 무거운 거지 남편이 강요한 것이 아니니까.
몇 년 전, 남편에게 생일날 뭘 하고 싶은지 물어봤다. 이전까지 뭘 하고 싶은지 묻지도 않고 내가 좋아할 것 같은 걸 해줬더랬다. 뭐하는 게 좋을까 고민하는 남편 옆에서 둘째가 말했다.
“아빠도 친구들이랑 놀러 가!”
생일날이 되면 친구들을 초대해서 생일파티를 하거나 친구들과 키즈카페에 가서 놀던 아이들에게 생일은 그런 날이었다.
“그래! 너무 좋다. 생일날 자기 친구들 만나서 하고 싶은 거 하고 놀다 와!!”
남편은 너무 좋아하면서 생일날 저녁 친구들을 만나러 나갔다. 술도 많이 마시지 않는 친구들과 영화도 보고 게임도 하고 새벽에 들어왔다. 내 생일에도 난 친구들을 만나러 나갔다. 세상 좋았다. 주변 지인들은 생소하게 생각했다.
“그래도 생일인데 가족과 함께 보내야 하는 거 아니야?”
“와 너네 남편 간 크다!”
내 생일도 아니고 남편 생일을 남편 마음대로 보내는데 뭐가 어떤가? 가족들끼리 따로 생일파티는 했다. 매일 먹는 밥, 뭐 그리 특별하다고, 대충 먹으면 되지. 나도 많이 변해가나 보다.
또 한 가지 생각나는 사건이 있다. 나는 감정적인 사람이다. 아이들을 대하다가 화가 나면 훈계로 시작해서 잔소리로 이어지나 혼자 폭발하면서 지나치게 길어질 때가 있다. 아이들은 힘들어했고 나도 그 시간이 지나고 나면 할 말만 하면 될 것을 너무 길고 구질하게 말이 많았다고 후회할 때가 있었다. 그래서 아이들에게 제안했다.
“엄마가 너희가 잘못한 것은 가르쳐줘야 해. 그건 엄마의 의무라고 생각해. 그런데 너무 길어지면 너희가 힘들 때가 있는 것 같아. 지나치게 엄마가 화를 내는 건 너희 때문이라기보단 엄마가 화를 조절하지 못해서 그런 거거든. 그러니 엄마가 하는 말을 잘 듣다가 너무 길어지면 손을 들고 엄마 이제 그만.이라고 말해줘. 아무리 엄마가 화를 내다가도 네가 손 들고 그만이라고 말하면 일단 멈출게.”
이렇게 선언을 하긴 했지만 아이는 처음에 그만이라고 쉽게 입을 떼지 못했다. 한두 번 성공하더니 어느 순간에는 잔소리가 시작될 것 같으면 얼마 말을 하지도 않았는데 "엄마 그만!"이라고 외치는 게 아닌가. 듣기 싫다고 그만이라고 하면 안 된다고 그걸로 혼나기도 했다. 참 아이 키우는 게 쉽지 않다. 시간이 지나며 우린 조금씩 조절했다. 이젠 나도 짧게 말하려고 애쓰고 아이들도 내 말에 귀 기울이려고 노력한다.
사랑할수록 서로를 살피고 상대가 싫어하는 걸 멈추는 것이 진짜 사랑이다. 대부분의 주는 사람의 의도는 선하다. 상대방을 위해 선물을 주는 그 마음이 어찌 선하지 않을 수가 있을까. 하지만 선하다고 해서 우리는 그 모든 것을 그대로 받아야 하는 것은 아니다. 우리가 서로에 대한 오해와 편견 없이 이런 대화를 많이 나눴으면 좋겠다. 그리고 내 마음을 불쾌하지 않게 말하는 연습도 필요하다. 처음부터 왕 세게 물어버리지 말고 뒷발로 살짝 미는 정도로 싫다는 표현을 하는 거다. 내가 괜찮은 만큼만. "이제 그만!"이라고 말하지 않았는데 알아줄 사람은 아무도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