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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작가 Aug 26. 2022

멍 때리기

고양이처럼 살 수 있다면 (4)

우리집은 루미에게  즐거움을 주는  같다. 1층인  앞에는 나무도 있고 새도 날아다닌다. 사람들이 지나가면서 떠드는 소리도 나고 사시사철 비가 오거나 눈이 내리는 것도 즐거운 일이다. 루미에게  밖은 티브이 같은  아닐까. 요즘은 창밖을 내다보는 루미에게 우리가  밖에서 인사를 하기도 한다. 우리는 루미야~!! 하면서 손을 흔들면서 야단법석을 떨지만 루미는 시크하게 쳐다본다. 귀여운 녀석.     


고양이는 창밖을 보는 걸 좋아한다. 창밖을 내다보는 고양이가 밖을 나가는 걸 좋아할 거라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고양이는 자기 영역을 지키는 행위라고 한다. 뭐랄까, 나름의 집을 지키는 행위인가 보다.

뿐만 아니라 무더운 여름에도 햇빛이 미치는 창가에 누워있는 걸 즐긴다. 따뜻한 햇살이 고양이에게도 꽤나 큰 행복인가 보다. 우리 아이가 어릴 때 같이 햇볕이 드는 곳에서 같이 누워있곤 했었는데. 1층이라 해가 길게 들어오지 않아 햇볕이 들어오는 오전 시간 우리는 종종 같이 누워있곤 했었다. 우리 엄마도 같이.




친구에게 오랜만에 전화를 했다. 아이들이 개학을 해서 시간이 생겼다.

     

“뭐해?”

“나 소파에 앉아서 멍 때리고 있어.”

“와 좋겠다. 난 멍 때리는 거 진짜 못 하는데.”

“너나 우리 남편 같은 사람은 멍 때리는 거 못 하지. 난 멍 때리는 거 잘해.”     


나는 생각이 많다. 굉장히 즉흥적이기도 하다. 머릿속에 계속 떠오르는 생각 때문에 힘든 날도 많다. 요즘 유튜브에서 나오는 이야기들을 보면서 내가 성인 ADHD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더랬다. 다양한 아이디어가 샘솟는 것이 디자이너에겐 꼭 필요한 덕목일지 모르지만 집안일을 하거나 아이들을 양육하는 데에는 어려움이 많다. 매일 반복되는 일은 정말 힘들다.


그러다 보니 당연히, 난 멍 때리는 걸 잘 못 한다. 어떤 일을 하다가도 갑자기 드는 생각에 다른 걸 찾아본다. 그걸 찾아보다가 그것과 연관된 것을 읽는다. 그러다 또 다른 걸 한다. 그래서 한 가지 일을 마지막까지 마무리해서 끝내지 못할 때가 많다. 때로 반복되는 회사일을 꼭 해야 할 때면 2-3개 하고 돌아다니면서 다른 거 하다가 또 2-3개를 한다. 회사에선 아주 효율이 낮은 인간 유형이다. 나에게 잘 맞는 일을 만났고, 재택근무라 다행이다.


그뿐만이 아니다. 물건을 쓰면 제자리에 잘 갖다 놓지 않는다. 그래서 늘 물건이 어디 있는지 찾지 못할 때가 많다. 회사에 있는 남편에게 전화해서 내 핸드폰이 어디 있냐 던 지 뭐가 어디 있냐고 물을 때도 많다. 남편은 차분하게 대답한다.     


“자기가 어디를 갔었는지 잘 생각해봐. 거기 한번 가봐.”     


어느 날은 차키가 보이지 않았다. 매번 남편한테 물어보는 것도 미안하고 좀 창피한 마음도 들어서 조용히 보조키를 들고 다녔다. 그러다가 너무 불편해서 결국 남편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자기야, 나 차키가 없어서 너무 불편한데 어디 있을까?”

“자기가 갔던 데를 잘 생각해봐.”     


스무고개 끝에 책상에 놓인 노트북 받침대 밑에서 차키를 찾아냈다.      


“어휴! 이런 데 있으니까 내가 못 찾지!! 내가 며칠 동안이나 차키가 없어서 진짜 불편했는데 자기한테 말을 못 하고 있었어.”     


그때 어이없어하는 남편의 눈빛이란. 그의 눈빛은 몹시 강하게 말하고 있었다.


‘네가 거기다 뒀잖아!!!’     


늘 잘 참고 말을 아끼는 남편과 결혼해서 참 다행이다. 그리고 우리 남편 나랑 결혼해서 너무 고생이 많다. 잘해줘야지.     




어떤 이에게는 아무 생각 없이 앉아 있는 것이 쉬운 일일지 모르지만 나 같은 사람에겐 노력을 필요로 하는 일이다. 사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의도적인 쉼은 나를 아끼는 일이다. 무언가를 함으로써 기쁨과 성취감을 느끼는 내게 아무것도 하지 않는 시간은 여전히 어려운 일이지만 아주 조금씩 노력한다. 산만한 사람들이나 아이들을 너무 비난하지 말고 도와줬으면 좋겠다. 우린 이해와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이다.      


걷기. 햇볕 쬐기. 하고 싶은 일을 멈추기. 갑자기 뭔가를 사고 움직이지 않고 하루를 기다려보기. 그런 것들이 나를 위하는 일이다. 원하는 것, 생산적인 일을 하는 것이 나를 위하는 것 같지만 사실 그것은 자꾸만 나를 갉아먹는다. 내 몸보다 내가 하고 싶은 일을 불나방처럼 달려들어하다 보니 체력이 많이 떨어졌다. 아이를 키우는 것도 최선을 다해 멋지게 키워내고 싶었다. 부모님도 잘 도와 안 힘들게 해드리고 싶었다. 최선을 다하다 보니 내 몸이 무너졌다. 나는 지금 쉬어야 한다.

  

쉬려고 노력한다고 하지만 이 천성이 어디 안 간다. 어제도 천도복숭아 철이 끝나기 전에 과일청을 담는다고 과일을 샀다. 철이 지나면 못 살까 봐 복숭아 3.5킬로, 자몽 5개, 참외 2개, 레몬 3개. 과일청이 6병 정도 나왔다. 예전에 비하면 많이 참았다. 과일청을 담고 잼이 다 떨어졌으니 조금 덜어 잼을 끓였다. 예전 같으면 이거 하고도 또 요리하고 뭘 많이 했을 텐데 지금은 이거 하고 나서 손끝이 저리고 팔이 아팠다. 내 몸이 아프고 체력이 떨어진 것은 내게 사실 축복이다. 쉬라고 온몸이 신호를 보낸다.


멍 때리고 앉고 누워야겠다. 루미 옆에서.

그런데 난 지금 또 글을 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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