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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작가 Sep 01. 2022

루미와 눈을 맞춘다.

고양이처럼 살 수 있다면 (6)

요즘 루미가 유난히 우리를 따라다니면서 야옹거린다. 조금 커서 그런지도 모르겠다. 말이 많아졌다. 때로 아이들 발에 매달려 이빨로 깨물 때도 있다. 너무 세게는 아니고 앙앙 문다. 놀고 싶은가 보다. 요즘 별로 안 놀아줬지.     


오랜만에 장난감을 흔들어줬는데 반응이 별로 없다. 그렇다면, 새 장난감을 꺼내 주지. 새 장난감이라 함은, 요즘 별로 안 놀아준 장난감이다. 고양이는 정말 아이들과 똑같다. 매일 보는 늘어져 있는 장난감에는 관심을 기울이지 않다가 새로운 게 생기면 눈을 반짝이며 다가온다. 요즘 많이 놀았던 쥐 장난감도 처음엔 정말 좋아했었는데 어느새 지겨워졌나 보다. 한참 전 놀아주다 방울이 떨어진 기다란 장난감을 꺼내 줬더니 신나게 따라다니면서 논다. 나도 덕분에 집안을 휘저으며 루미와 놀았다.    


그러고 나서 침대에 누웠다. 내가 누웠더니 루미가 걸어와서 내 앞에 누웠다. 꽤나 가까운 곳에서 루미와 눈을 마주치고 누웠다. 루미를 쓰다듬어주면서 말했다.     


“루미야, 네가 있어서 얼마나 좋은지 몰라. 널 데려올 때 왜 그렇게 걱정했는지 모르겠어. 이렇게 좋은데. 아이 예쁘다, 우리 루미.”     


루미도 좋은지 그르렁거리면서 나를 빤히 쳐다봤다. 짧지만 긴 시간 동안 우린 서로를 쳐다보면서 누워있었다. 적당히 하고 말았어야 했는데 계속 만졌더니 루미는 일어나서 손이 닿지 않을 정도의 위치에 다시 자리를 잡고 누워서 날 쳐다본다.      


‘아 맞다. 너 고양이지.’          





내 삶을 생각해봤다. 나는 실체를 알 수 없는 행복과 멋진 미래를 상상하며 내달렸다. 그 끝이 어디인지 무엇을 향하는지 잘 몰랐다. 좀 더 높은 세상을 꿈꾸긴 했는데 그것이 무조건 돈을 많이 벌거나 멋진 옷이나 가방을 드는 것도 아니었다.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 무언가를 좇았기 때문에 난 늘 허기졌다. 매번 현실이 만족스럽지 못한 건 덤이다.


아이들도 마찬가지다. 나름대로 열심히 공부는 하지만 1등을 하는 것도 아니다. 학원에서는 매번 제일 아랫반이다. 어릴 땐 공부보단 노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했던 엄마 탓일 거다. 공부보단 인성이 중요하다고. 그래 놓고 초등학교에 들어가서 현실을 마주하면서 아이를 잡기도 하고 공부하라고 혼을 내기도 했었다. 큰 아이가 초등 6학년이 된 지금, 나는 현실을 받아들여야 했다. 1등이 아닌 내 아이도 살아갈 방법을 찾아야 했다.      


한때 난 기왕 하는 공부, 그 안에서 재미를 느껴보라고 말하곤 했다. 조금이나마 즐거움을 느끼면 낫지 않겠냐고. 숙제하기 싫어 짜증을 내는 아이들 앞에게 남편이 한마디를 툭 던졌다.      


“공부는 원래 재미없고 힘들지.”     


‘그게 아이들 있는 데서 할 소리야?’라고 속으로 외치면서 남편을 쳐다봤다. 내 찌릿한 눈빛에 남편은 다시 말했다.     


“그렇잖아, 공부가 재미없는 건 맞지.”     


맞다. 재미없지. 재미없고 지루하고 조금 한다고 1등 하는 것도 아니니 성취감도 잘 안 느껴지고. 그 힘든 걸 재미있게 하라고 하는데 그럴 리가 있나. 아이는 억지로 꾸역꾸역 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 남편의 그 말 한마디에 우리의 암묵적인 긴장감이 확 풀렸다. 현실을 인정해야 한다. 내 아이가 언젠가 잘할 거란 믿음과 기대를 심어주는 것도 중요하지만 우리 그냥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 현실을 받아들여야 그다음을 볼 수 있었다.     


“100점 받지 않아도 넌 소중해.”

“재미없고 힘든 공부를 묵묵히 해내는 네가 훌륭해.”

“하다 보면 조금씩 나아질 거야. 우린 성장하는 게 중요해.”

“너무 괴로우면 꼭 말해. 공부는 그렇게 해서 잘하는 것도 아니야.”

“괜찮아. 지금 이대로 우린 다 괜찮아.”     


나는 별로 들어보지 못했던 말들. 이런 말을 듣고 자라면 얼마나 좋을까. 나도 쉽지 않지만 이런 말을 자주 해주기 위해 노력한다.     




또 한 가지 결심을 한다. 오늘의 행복을 미루지 않기로. 언젠가 행복한 그날을 위해 우린 매일 숨을 참는다. 하지만 새로운 장난감 하나에 눈빛이 바뀌며 뛰노는 고양이처럼, 매일 가는 동네 공원에서도 행복한 어린아이들처럼 살고 싶다. 하루 종일 숨을 참지 말고 매 순간 그날의 공기를 느끼며 충분히 숨을 쉬며 살고 싶다. 내 가족과는 가까이 누워 눈을 쳐다보며 서로를 매만져주고, 때로 신나게 뛰어노는 그런 사이가 되고 싶다.


그래서 난 어제보다 나은 오늘을 만들어보기로 했다. 오늘 조금 공부한 것이 더 나은 내일을 만든다. 남들과 비교하지 말고 어제의 나보다 조금 더 나아지도록 한다. 아이에게 말하긴 쉬운데 내 삶에 적용하긴 어렵다.

그래서 우리 같이 노력한다. 나도 너에게 배우고, 너도 나에게 배우고. 고양이에게도 배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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