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하지 않아도
고양이를 키울 때 가장 고민이 되었던 것은 '힘들까 봐'였다. 아이들을 챙기고 내 일을 하고 집안일을 하는 것도 버거운데 고양이까지 케어하는 건 너무 힘들 것 같았다. 그때 아이는 자기가 다 하겠다고 말했다. 10살 아이가 고양이를 키우는 건 자기가 다 하겠다는 말은 쉽게 믿을 수 없었다. 가끔 도와주겠지. 그래도 결국 내 일이겠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양이를 키우고 싶어 마음을 먹었다. 너의 마지막까지 함께할 거라고.
고양이가 집에 오고 아이는 너무나 좋아했다. 고양이 없이 어찌 살까 싶을 정도로 우리에게 큰 기쁨이 되었다. 루미도 우리 집을 좋아할 거라 믿는다. 아이는 고양이가 집에 온 그날부터 고양이 밥을 챙겨준다. 그냥 아무렇게나 주는 게 아니고 언제 얼마큼 먹어야 하는지를 생각하고 루미가 어떤 종류의 캔을 좋아하는지도 다 알고 있다. 캔이 떨어져 가면 내게 알려준다.
“엄마, 루미 밥을 다 먹어가. 캔 좀 주문해줘.”
“그래 엄마가 지금 주문할게. 근데 루미가 이런 거 좋아하나?”
“이건 예전엔 잘 먹었는데 요즘은 안 먹어. 루미는 살코기가 있는 걸 좋아해.”
고양이 밥 쇼핑은 언제나 아이와 함께 한다. 밥만 챙기는 게 아니다. 루미의 응가도 치워준다. 가끔 못 치울 땐 내게 알려준다.
“엄마 루미 응가했으니까 치워줘요!”
“오늘은 루미 응가가 너무 묽은데?”
"루미 응가에서 머리카락이 나왔어. 우리 머리카락을 잘 치워야겠어."
“엄마 모래 갈 때가 됐다. 갈아주자.”
이렇게 루미를 챙기고 예뻐해 주니 루미는 아이를 정말 잘 따른다. 언젠가 루미 몸무게가 안 늘어 걱정했을 때, 병원에 가기 전 루미 상태를 체크하는데 아이는 나보다 더 상세하게 루미에 대해서 잘 알고 있었다. 뭘 줬는데 언제부터 안 먹었는지, 응가가 어땠는지 아주 상세하게 나에게 말해줬다. 그때 알았다. 우리 딸이 그냥 좋아하는 게 아니고 진짜로 루미를 키우고 있다는 것을. 고양이를 키우기 전 내가 마지막에 포기하려고 할 때 아이는 이렇게 말했었다.
“엄마가 너무 힘들 것 같으면 안 키워도 괜찮아. 나중에 내가 어른이 돼서 혼자 살 때 키우면 돼.”
이 말을 듣고 아이의 마음에 확신이 얼마나 큰지 느꼈고, 우린 루미를 데려오기로 결정했다.
어제는 심장사상충 약을 바르러 병원에 갔다. 아이는 할아버지 댁에 있다가 병원으로 걸어오기로 했다. 남편과 큰 아이와 함께 먼저 병원에 가서 진료를 보고 있었다. 고양이를 전문으로 봐주시는 선생님은 고양이를 처음부터 함부로 만지지 않고 지켜보신다. 그분의 태도를 보면 얼마나 고양이를 사랑하는지 알 수 있다. 이동장 안에서 츄르를 먹여 마음을 조금 편안하게 하고 나서야 몸을 이리저리 만지며 진료를 보셨다. 진료가 거의 끝나갈 즈음 아이가 들어왔다. 선생님이 루미를 안고 츄르를 먹이고 있었는데 아이가 들어오자마자 말씀하셨다.
“루미가 너를 정말 좋아하나 보다. 눈빛이 바로 달라지는데?”
“와 그게 느껴져요?”
“네. 완전히 달라요.”
“얘가 루미 밥을 다 챙겨주거든요. 아침에도 저희가 일어나면 어슬렁거리는데, 얘가 일어나면 벌떡 일어나서 총총 따라가요. 학교 갔다 오면 언제나 뛰어가서 반기고요.”
“너 정말 루미를 사랑하는구나. 선생님은 다 느낄 수 있어. 고양이가 널 정말 좋아해.”
아이는 수줍게 웃었다. 루미가 아이를 사랑하는 걸 너무나 잘 알고 있었지만 의사 선생님이 그렇게 확연히 느낄 정도라는 게 정말 신기했다. 집에 와서도 몇 번을 더 얘기했다.
“루미가 너를 좋아하는 걸 의사 선생님이 느낄 정도라는 게 정말 신기하다. 어떻게 선생님은 그걸 알지?”
“내가 루미를 사랑하는 걸 말하지 않아도 루미가 느끼는 거야.”
“그렇구나.”
“엄마가 날 사랑하는 걸 말하지 않아도 내가 느끼는 것처럼.”
가슴이 뭉클해졌다. 아이를 꼬옥 끌어안았다. 예민한 마음을 가지고 태어난 아이는 시끄럽고 복잡한 세상을 살아가는 게 많이 힘들었다. 자연스레 분리불안을 가지고 살아왔다. 남들 다 가는 유치원 가는 게 왜 그렇게 힘든지 이해가 가지 않았고, 언제까지 이렇게 붙어 있어야 하는지를 알 수 없어 너무 힘들었다. 밀어내는 엄마 때문에 아이는 더 불안해졌다. 어느 날 다짐했다.
‘네가 원할 때까지 내가 너와 붙어 있어 줄게.’
그날부터 난 어디를 가든지 아이를 데리고 다녔다. 아이 없는 외출도 거의 하지 않았다. 아주 짧게 가도 아이에게 반드시 말을 하고 갔고 잠시 쓰레기 버리러 갈 때도 같이 갔다. 어느 날 궁금해서 물어봤다.
“엄마랑 떨어질 때 어떤 마음이 들어?”
“엄마랑 영원히 헤어지는 것 같아. 다시는 못 볼 것 같아.”
“세상에, 그건 너무 슬프잖아.”
내가 아이의 마음을 헤어리지 못 했다. 그저 유난스럽다고만 생각했지 아이의 불안이 이토록 깊은지 몰랐다. 얼마나 무서울까. 아이에게 엄마는 우주인데, 엄마가 사라진다면 세상이 사라지는 것 같겠지. 다시 한번 다짐했다. 네가 원하는 그날까지 엄마는 너와 함께 있을 거라고. 아이와 붙어 있는 것이 당연한 일이 되자 불안은 한층 줄었다. 같이 있어달라고 간구하지 않아도 되니까. 엄마와 잠시 헤어질 때는 명확한 시간과 이유를 설명했다. 그 순간 잠시 울어도 이상한 아이 취급을 하지 않았다. 어느 누구와도 비교하지 않았다.
“엄마와 헤어지는 건 당연히 슬프고 어려운 일이야. 하지만 지금은 엄마가 잠시 다녀와야 해. 아빠랑 같이 있으니까 괜찮아. 언제든지 전화해도 괜찮아. 백번이라도 전화해. 엄마는 곧 돌아올 거야.”
아이의 울음은 점점 짧아졌다. 지금도 여전히 아주 가끔 눈물을 보일 때도 있지만 아이는 스스로 눈물을 거둔다. 그리고 마음을 추스른다. 날마다 사랑한다고 말하고 안아준다. 이유 없이 너의 모든 모습을 사랑 한다고 말한다. 그리고 그건 아이를 위해서 하는 말이 아니라 진짜 내 마음이다. 이런 사랑을 먹고 아이는 마음이 단단해졌나 보다.
툭 튀어나온 아이의 말을 듣고 난 오늘 너무나 행복해졌다. 앞으로도 이렇게 계속 사랑해줘야지. 너의 삶이 평안하길 바란다. 사랑하는 아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