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늘 행동하는 사람이었다. 새로운 생각을 많이 하는 편이라, 내가 할 수 있을지를 고민하기보단 내가 원하고 필요하면 몸을 쓰는 방식으로 살아왔다. 특별히 운동을 꾸준하게 한 것도 아닌데 감사하게도 타고나길 건강한 편이라 문제가 없었다. 어릴 땐 못 할 일이 없다고 생각하며 살았지만 나이가 들면서 쉽지 않다. 현실과 이상의 괴리는 크다. 점점 몸이 생각을 따라가지 못하면서 많은 문제가 생겼다. 아이를 낳기 전에는 나 혼자만 잘 살면 됐었는데 이젠 육아, 일, 부모님.. 끝도 없이 해야 할 일들이 생겨났다.
문제는 내가 너무 잘하려고 한다는 것이다. 모든 일에 만족하지 않고 더 잘하기 위해, 더 나은 선택을 하기 위해 난 끊임없이 노력한다. 물론 덕분에 나는 늘 성장하고 발전하고 있다. 하지만 때로 지나치고, 불필요한 노력을 너무 많이 할 때가 있다. 노력만 하면 좋은데 내 이상만큼 채워지지 않는 현실에 점점 나 자신에 대한 불만족이 생겨났다. 매 순간 생기는 선택의 순간이 너무 힘들었다. 선택의 순간이 너무 힘들었고, 불안했다. 숨만 쉬고 닥치는 일만 처리해도 힘든데 새로운 일까지 자꾸만 만들어 내다보니 힘들 수밖에.
살면서 힘든 순간이 오면 난 상담을 받곤 했다. 친한 친구가 조언해 준 덕분이다. 상담을 받으면서 깨달은 게 있다. 선생님들은 늘 이렇게 말해줬다.
“어떤 선택을 하는지는 중요하지 않아요. 그것을 선택할 때 마음이 어땠어요?”
이 말을 들을 때만큼 답답할 때가 없다. 난 당장 선택을 해야 하고, 그것 때문에 잠도 못 자겠는데 이래도 되고 저래도 된다니.
‘장난하나! 자기 일 아니라고 이렇게 쉽게 말하는 건가?’
이런 생각이 치밀어 올라왔다. 화를 낸다고 답이 있는 것도 아니니 그분들이 말하는 대로 잠시 멈추어 숨을 고른다. 그 순간의 감정이 무엇인지를 생각해 본다. 처음부터 답이 나오진 않는다. 어떤 마음이 느껴지는지도 모를 때가 많다. 처음엔 좋다, 나쁘다 정도였는데 그런 순간을 반복해서 맞이하면서 조금 더 다양한 감정들을 마주한다. 외부적인 상황이나 나를 이렇게 만든 타인에 대해서 생각하지 않고 내 마음 자체에 집중한다. 그러다 보면 조금씩 내 마음을 알게 된다.
이렇게 하면서 내가 얻는 장점이 무수히 많지만 크게는 두 가지가 있다.
첫 번째로 내 마음을 알 수 있다.
이전에는 당황스럽거나 슬프거나 화가 나는 일을 겪으면 갑자기 화가 치밀거나 어찌해야 할지 몰랐다. 아무 잘못 없는 주변 사람들에게 화를 내거나 짜증을 부리는 경우가 많았다. 내 마음에 풀리지 않는 감정이나 불편함 때문인데 마치 당신 때문에 일어난 일인 것처럼 치부할 경우가 생긴다. 이런 불편한 상황을 덜 만들게 되고, 진짜 내 마음과 욕구가 무엇인지를 곰곰이 생각한다. 몇 시간이 걸릴 때도 있고, 며칠이 걸릴 때도 있다. 빨리 결정해야 할 것 같은 불안감에 떨지 않고, 스스로에게 괜찮다고 다독이면서 천천히 생각한다. 그러다 보면 내 마음이 어디로 향하는지를 알아차린다.
두 번째로 이렇게 마음을 읽고 나면 내가 무엇을 원하는지가 조금 더 명확해진다.
그때 차분하게 내 마음을 전달한다. 필요하면 도움을 요청한다. 말하지 않아도 알아줄 거란 기대는 하지 않는다. 내 마음을 설명하고 도움을 요청하면 내 가족은 대부분 흔쾌히 들어줬다.
한창 남편에게 짜증을 냈던 시기가 있었다. 육아, 일, 부모님에 대한 모든 일이 내 마음대로 되는 게 없었다. 벗어날 수도, 해내기도 어려웠던 그때, 내가 도움을 요청할 곳이 남편밖에 없었다. 사실 난 남편의 도움이 필요했다. 도움을 받지 못해도 어려움을 나누고 싶었다. 그런데 그때 남편은 회사에서 말도 안 되는 스케줄로 인생 최대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자기도 최선을 다해 일을 해내고 있는데 집에 있는 나는 짜증과 화에 휩싸여 있으니 도무지 이해가 가지도 않고, 가까이하는 것도 힘들었을 거다. 너만 힘드냐, 나도 힘들다. 이 무한궤도의 싸움에 휘말렸다.
답이 나오지 않는 그때, 차분히 내 마음을 들여다봤다. 어려움의 원인을 내 안에서 찾고, 내 마음을 읽으려고 노력했다. 나의 어려움을 차분하게 말하고, 도움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전했다.
“처음부터 이렇게 말했으면 내가 잘 들어줬을 텐데.”
“그게 그렇게 쉬웠으면 내가 그랬겠어?? 이거 진짜 어려운 일이야!!!”
“알았어 ㅎㅎ”
삶은 이어지고, 여전히 선택은 어렵다. 특히 아이들이나 가족들의 일은 더 어려웠다. 지금 이 선택이 아이의 미래를 바꿀 것 같은 수많은 이야기에 흔들리기 일쑤였다. 아이가 뭔가를 조금 못 하면 내가 그런 선택을 해서 그런가 하는 자괴감에 빠졌다. 내 선택으로 인해 모두가 크게 잘못된 미래를 가지게 될 것 같은 불안감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시간이 지속되고 고민이 깊어졌다. 친구에게 고민을 털어놓자, 아주 훌륭한 답을 해주었다.
“그럼 두 번째 선택을 해! 최선 말고 그다음 거.”
“응?”
“어차피 둘 중에 고민한다는 건 1번과 2번 모두 장단점이 있고, 둘 다 괜찮은 안이라는 거잖아. 그럼 일부러 두 번째를 선택하는 거야. 그래도 별 문제없을 거야.”
지혜롭고 현명한 솔로몬의 판결처럼 명쾌하게 들렸다. 그 이후 나는 일부러 두 번째 안을 선택하곤 한다. 그래도 큰 문제는 생기지 않는다. 여전히 후회를 하기도 하고, 아쉬워하기도 하지만 조금은 마음이 편안해졌다.
무엇을 하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그 안에 내 마음이 중요하다. 오늘도 멈추고 생각한다.
모든 답은 내 안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