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과 나를 남겨두고 아내가 떠났다.

by 고용환

아침 7시, 아내가 현관문을 열고 나갔다.


"여행 가고 싶으면 언제든 가도 돼."


6살이 된 딸도 우려했던 상황과 달리 딸도 엄마의 여행을 승낙했다. 그리고 그것은 엄마 없이 나와 딸이 잠을 자는 최초의 밤을 의미하는 것이기도 했다.


못난 남편 덕에 캐나다에서 서울이라는 곳에서 정착했던 아내는 서울에서 지방으로 나를 따라 삶의 터전을 다시 만들어야 했다. 특히, 지방의 사교육의 수요가 수도권에 비해서 적기 때문에 원어민 강사의 인구 비율도 현저하게 낮았다. 불행 중 다행은 초반에 알게 된 미국인 커플 강사와 캐나다 남성과 결혼한 한국 여성을 알게 돼서 종종 아내의 외로움과 고향에 대한 그리움을 달래줬다.


하지만 일 년이 지나고 그들은 한국의 삶을 정리하고 미국과 캐나다로 떠났다. 이후에 가족은 먼 나라 대한민국에서 독방 육아를 하며 홀로 외로움과 싸우고 있었다. 그리고 아내는 악착 같이 외국인을 찾아다녔다.

개인적으로 몇 년의 해외 경험을 떠올려 볼 때 나도 그랬던 거 같다. 영국에서도 필리핀에서도 현지인과 어울리려고 노력했지만 힘들 때는 한국사람들과 비싼 소주를 공수해서 타국에서의 작은 한국을 만들곤 했다. 외로움과 낯선 땅에서의 서러움, 이방인이라는 딱지가 그렇게 만든 것 같았다.


사실 아이가 태어나고, 한국 엄마와 비교해서 조금은 더 냉정하게 육아를 한다고 불만을 품고 있던 것은 나였다. 살아온 방식이 다르다는 것은 사랑의 표현법에도 차이를 보인다. 아이가 태어나고 며 칠이 지나서 보통이라면 산후조리원에서 몸조리를 하고 있을 시간이지만 조리원 패스하고 집에서 육아를 했다. 그때도 오랜 시간은 아니지만 딸과 나를 잠시 남겨두고 친구를 만나서 잠시 나가곤 했다.


"미쳤다.... 외국인도 엄마인데..... 이건 아니다.."


내 머릿속에 불신과 미움의 싹은 그렇게 시작되긴 했다. 그리고 수많은 문화 차이로 우리 부부는 힘든 시간을 보냈다. 물론 한쪽이 일방적으로 잘못했다는 것은 아니다. 작은 구멍으로만 세상을 바라보면서 넓은 세상에 대한 준비도 없이 발을 담근 나의 오만함도 큰 이유일 것이다. 가끔은 힘들어하는 아내에게 출산 이후에 입버릇처럼 말을 했다.

"여행이나 친구집에서 외박하고 싶으면 언제든 말해"


아내도 언젠가 1박 2일로 친구와 여행을 가고 싶다고 했다. 언제나 나는 쿨하게 다녀오라고 했다. 하지만 6년 동안 여러 사정과 이유인지 여행을 간다는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


그런데 갑자기 저번 주에 한국인과 결혼 외국인 친구와 시간이 맞는다며 공주로 여행으로 간다고 통보했다. 나는 걱정 말고 다녀오라고 했다. 걱정을 할 성격도 아닌 아내지만 그래도 내심 미안한 듯한 표정이었다.


♡♡저자의 감성 에세이 <보잘것없는사람>♡♡


나는 오히려 어떤 좋은 추억을 딸과 함께 만들까 설레기도 했다. 그리고 아내가 떠나자 나도 한 시간 거리에 있는 친한 선배 집에 딸을 데리고 놀러 가기로 약속을 했다. 아침부터 딸을 씻기고 먹이고 준비시켜서 부산하게 움직였다. 모든 것은 너무도 순조로웠다.


가끔 스스로 생각했던 질문에 갑자기 자신감도 생겼다.

"아내 없이 딸을 내가 잘 키울 수 있을까?"


이런 생각을 하게 된 이유는 문화 차이로 부부싸움을 하면 어쩔 수 없이 이혼 생각으로 이어졌다. 하지만 답은 언제나 한 가지 결론으로 종결되었다. "딸을 생각하면 참고, 참아야지..... 안돼.."


그런데 운전을 하며 선배 집으로 가는 동안에 '어쩌면 할 수 있을지도 몰라'라는 생각을 하였다.

참 못 된 남편이기도 하다. 쿨한 척하는 옹졸한 남자의 모습이었다. 선배 집에 도착해서 우리는 음식을 시켜먹고 딸도 엄마 없이 내 말을 잘 들으며 행복한 추억을 만들었다. 신기하게도 몇 시간이 지나도 엄마를 찾지도 않았다.


정신없이 놀고 나서 저녁이 밥을 먹을 시간이 되었을 때 딸이 말했다.


"아빠, 엄마랑 전화하고 싶어."


나는 전화를 연결해줬다. 딸은 나랑 무엇을 했는지 엄마에게 보고 하기 시작했다. 감시당하고 있는 느낌이 들 정도로 군인들이 하는 보고보다 세부적인 완벽한 보고 내용였다. 그리고 너무도 보고 싶다고 말을 하고 전화를 끊었다. 딸은 울지 않았다. 씩씩했다.


시간이 흘러 저녁이 되었다. 평소라면 항상 저녁 8시 이전에 취침인데 나는 그 룰을 깨고 싶었다. 저녁을 먹이고 선배 집에서 더 시간을 보내기로 했다. 지칠 줄도 모르고 9시까지 딸은 놀고 또 놀았다. 왠지 그 모습은 내가 그리던 육아의 모습이라서 씁쓸했다. 오늘이 마지막이다. 딸아 자유를 즐겨라.


엄마의 여행은 짜릿한 하루의 일탈인 셈이었다.


나 또한 오랜만에 친한 선배를 만나서 떠날 시간 눈치 볼 거 없이, 수다를 떨고 밀린 직장 이야기를 하니 속이 다 시원했다. 늦은 밤이 되서 저녁 우리는 집으로 향했다. 장난감 선물까지 잔뜩 받은 딸은 행복하게 작별인사를 했다. 자동차가 출발하자 몇 분이 지나지 않아서 딸은 코를 골며 잠이 들었다. 오히려 너무 순조로워서 아내의 여행이 더 길어도 좋을 것 같다는 생각까지 했다. 한 시간 동안 오디오 북을 들으며 운전을 해서 집으로 오니 왠지 모를 해방감과 함께 집에 도착했다.


그리고 자고 있는 딸을 카시트에서 꺼내서 안고 집까지 올라왔다. 잠이 덜 깬 딸의 모습은 귀여움 그 자체였다. 도착해서 이빨을 닦고 약속대로 아빠랑 같이 자기 위해서 딸의 침대에 같이 누웠다.

그런데 딸은 갑자기 엄마방에 가서 자자고 제안을 했다. 각방 생활 이후 누워본 적도 없는 안방 침대에 딸과 나란히 누었다. 집안은 고요했다. 오히려 큰 침대가 어색하기까지ㅟ 했다. 이대로 잠이 들면 완벽한 하루가 마무리될 것만 같았다.


딸도 누워서 자리를 잡고 잠을 청하려고 노력하는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5분이 지나고 갑자기 울기 시작했다.

"엄마...... 엄마........ 엄마........."


갑자기 보고 싶어 졌던 것이다. 달래고 달래도 아무런 효과가 없었다. 한 시간이 넘도록 통곡은 이어졌다. 난 아빤데 엄마가 아니라서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그저 옆에서 눈물을 닦아주는 것이 유일하게 할 수 있는 일이었다.

2시간이 지나서 딸은 잠이 들었다. 나는 숨죽여 딸 옆에 누워서 자는 천사 같은 딸의 모습을 바라보았다.


'만약에 엄마와 아빠 둘 중에 한 명이 딸 근처에 남아야 한다면 부정하고 싶지만 '엄마'가 더 필요하겠구나 생각했다.' 웬만한 집안 일과 요리도 하는 나에게 엄마란 존재감을 내가 채워줄 수 있다고 자만했는데 착각일 수도 있다는 생각을 했다.


완벽하게 시작한 딸과 보낸 둘만의 하루는 왠지 모를 공허함과 어색함으로 마무리되었다.


어쩌면 엄마의 빈자리 때문에 우리는 허전했던 거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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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출처: 구글 검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