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층침대, 각방생활 그리고 공간

혼자 살 때도, 직장에서도, 결혼해서도 이층 침대

by 고용환

2층 침대와 나의 인연은 미친 듯이 질기다. 어린 시절 처음으로 단칸방으로 벗어나 초등학교 6학년 때 빌라로 이사를 했다. 내 방이 생겼다는 기쁨과 함께 단칸방보다는 넓어지고 내방이 생겼지만 침대를 둘 만큼 넓지 않았다. 5살 차이 나는 어린 동생은 안방에서 부모님과 잠을 잤다. 이블을 깔고 바닥에서 잤지만 그 시절이 유일하게 내가 2층 침대에서 생활하지 않았던 인생의 시간이었다는 것을 깨닫는데 38년이 걸렸다. 고등학교 1학년까지 이사한 빌라에서 살았다. 다행인 것은 사춘기 시절 나만의 공간이 있다는 것이다. 친구들을 집에 많이 초대해서 좁아도 같이 바닥에 누워서 자곤 했다. 내가 고등학교 1학년이 되자, 동생은 12살이 되었다. 너무 커버려서 안방에서 부모님과 같이 자는 것도 힘들 때 부모님은 빌라지만 방이 조금 더 큰 투룸으로 이사를 했다.


17살 그때부터 내 삶은 2층 침대 인생이 되어버렸다. 부모님은 작은방은 본인들이 사용하고 큰방을 나와 동생이 같이 사용하도록 했다. 큰방이라고 해도 침대 2개를 둘 곳이 없어서 아버지는 튼튼한 2층 침대를 샀다. 나와 동생은 처음 써보는 침대 생활에 기뻐서 날 뛰기까지 했다. 어린 동생은 1층에서 나는 2층에서 같이 잠을 자면서 나이 차이는 있지만 자기 전에 한 두 마디씩 천장을 보면 동생과 대화를 했다. 그리고 집안이 어려워져서 나는 그 해 겨울 고등학교를 자퇴하였다.

동생과 3년 조금 넘게 같이 방을 쓰는 순간에도 미성년자 신분에 불러주는 곳이 있으면 지방이라도 가서 일을 하느라고 나는 집에 들어가지 못하는 날들이 늘어났다. 어느덧 사춘기가 돼버린 동생은 형과 같이 방을 쓰는 것을 불편하게 생각하며 자기가 방 주인이라도 되느냐 눈치를 주곤 했다. 그런 생활을 얼마간 지속하다가 21살 2월 병사로 입대하면서 동생에게 처음으로 완벽한 자신만의 공간을 선물해주었다.


병사 생활을 하는 1년 동안에 침상에서 잠을 잤다. 오래된 건물이라서 침대가 없었다. 1년이 조금 지나서 군대에 말뚝을 박기로 결심을 하고 부사관에 지원해서 부사관학교에서 교육을 받고 육군 하사로 임관했다. 간부로서 자대를 배치받고 영내 생활(병사들과 생활관에서 일정기간 같이 지내는 시간) 마치고 설레는 마음으로 배정받은 간부숙소로 내려갔는데 눈앞이 깜깜했다.

좁은 방에 나까지 3명이 같이 자야 하는 것이었다. 지금은 시설이 많이 좋아져서 초급 간부들이 원룸에서 생활하는 경우도 많았으나 2005년도에는 정말 높은 부대를 제외하고는 그렇지 못했다. 다행인 것은 3명 중에 한 명은 나보다 후임이었다. 나는 생활을 하면서 너무도 불편하고 좁아서 짜증이 나기 시작했다. 열심히 일하면 퇴근해서 편하게 쉬기라도 해야 하는데 그것조차 당시에는 사치였다. 몇 달을 버티고 버티다가 엄마 집에 있는 2층 침대를 숙소로 가져와야겠다고 생각했다. 같이 방을 쓰는 선배에게 의견을 물으니 침대에서 자는 게 백 번, 천 번 좋다면서 침대만 가져오라고 했다. 나는 침대를 가져오면 2층에서 선배는 1층에서 그리고 후배는 바닥 전체를 사용하기로 합의를 보고 아버지에게 부탁해서 집에 있는 침대를 숙소로 가져왔다.


그렇게 해서 다시 2층 침대에서 직장생활을 하게 되었다. 방에서 셋이서 뒹굴다가 2층 침대가 생기니 너무나도 좋았다. 혼자만에 공간에서 누워서 책도 보고 이불도 관리하고 모든 삶이 업그레이드된 것만 같았다. 군 생활을 계속하면서 보직을 다른 곳으로 받고 조금 더 나은 환경에서 생활을 하게 되었다. 개인 공간이 보장되었기 때문에 2층 침대가 아닌 싱글 침대에서 생활을 했다. 그렇게 32살까지 생활을 하다가 결혼을 하게 되었다.


외국인과 결혼하였기에 혼수나 기본적인 절차는 모두 생략하였다. 나는 군 관사를 제공받았고 혼인 신고를 하고 상의해서 더블 침대를 구매했다. 너무 고가는 아니지만 그래도 편한 침대를 샀다. 그렇게 다문화 가정 직업군인의 결혼 생활을 시작하였다. 결혼을 준비할 당시 새로 보직을 받아서 어쩔 수 없이 낯선 지방에서 이사를 해야 했기 때문에 가족도 적응을 못하고 나 또한 적응하느라고 정신이 없었다. 연예시절과 다르게 매일 얼굴을 보며 살다 보니 문화적 차이에서 오는 사소한 말다툼이 우리 사이를 조금씩 멀어지게 만들었다.


어느 날 코를 곤다는 이유로 나는 거실로 쫓겨났고 이런 일이 반복되면서 우리는 각방을 사용하게 되었다. 다행히도 방이 세 개인 아파트였다. 태어나서 어린 딸이 자는 방, 우리가 쓰던 큰 방, 그리고 책상과 짐들이 가득했던 작은 방이 있었다. 나는 거실에서 계속 자다가 짐이 있던 방을 잘 정리 해서 나만의 공간을 꾸미기 시작했다. 버릴 것을 버리고 정리를 해도 공간 활용이 제한돼서 싱글 침대를 둘 수가 없었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2층 침대를 구입했다.

아래 공간에 책상과 책장 등 다른 물건을 둬서 공간을 활용하고 2층은 내가 잠을 잘 때 쓰게 되었다. 직장에서 2층 침대를 떠나면서 다시는 2층 침대에서 잘 거라는 상상을 해 본 적이 없었는데 결혼 6년 차 나는 아직도 2층 침대에서 손을 뻗으면 천장과 하이파이브를 할 수 있는 곳에서 잠을 잔다. 아침이면 딸이 내 침대로 사다리를 타고 올라온다. 아직 어린 딸에게 이런 삶의 모습은 그저 당연한 것처럼 받아들여지겠지만 내 딸은 높은 곳에서 잠을 자는 나를 부러워한다.

웃기면서도 슬프지만 그런 딸을 위해 주말 아침에는 2층 침대에서 같이 유튜브를 보면서 아침을 맞이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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