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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용환 Sep 26. 2021

집없는 사람의 서러움 <1편>

당신은 꼭 그렇게 집주인 티를 내야만 했나요?

엄마의 치매가 심해지면서 엄마의 자존심이던 그 빌라는 처분하기로 했다. 나중에 매도가 더 힘들어질 것을 우려했기 때문이다. 우리 가족 모두가 그 집에서 살았었다. 부모님의 첫 번째 집이었고 없는 돈, 있는 돈 모두 털어서 내가 사자고 우겨서 샀다. 엄마는 빌라지만 신축이고 방 3칸짜리 집이 생기니 매일 닦고 또 닦으며 콧노래를 불렀다.


부동산 시장 과열되면서 빌라 가격도 올랐다. 시세차익으로 6천만 원 정도가 남는 선에서 적당히 매물을 올렸다. 며 칠이 자고 매수가가 나타났다. 갭 투자를 하는 매수자였다. 이어서 매물이 없던 전세 세입자도 나타났다. 깡통 주택이나 다름이 없는 높은 전셋가였다. 순간 매도를 하지 말고 계약을 취소할까? 고민을 했으나 밀어붙이기로 했다.


다행히 현재 어머니를 모시면서 고생하고 있는 동생이 살고 싶어 하는 한적한 경기도 지역에 저렴한 전셋집을 찾을 수 있었다. 시간을 내서 동생과 집을 보러 갔다. 1억 2천 가격에 방은 기존 집보다 훨씬 넓었다. 채광도 좋았고 특히나 앞에 막히는 것도 없었다. 신도시 지역에 빌라단지였는데 집 앞에 공원도 있고, 신축 도서관도 지어지고 있었다. 주변에 상권이 없는 것을 빼면 정말 저렴하고 좋은 집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혹시나 해서 주변 다른 빌라 매물도 둘러보았다.

하지만 그 집만큼 넓은 집은 없었다. 나는 동생에게 여기서 4년 살자고 권유했다. 그리고 계약금을 입금했다. 지방에 살고 일정을 맞출 수 없어서 계약서 쓰는 날 동생 혼자 가게 했다.


"잘하겠지? 친한 부동산 사장님도 같이 가고, 그동안 나를 따라서 임장과 계약도 많이 다녔으니 문제없을 거야."라고 생각하며 잠시 마음을 놓았다.


그리고 얼마 있다가 전화가 울렸다.


"형, 여기 관리비가 10만 원이라는데? 뭐, 지금 집주인 만났는데 자기는 지저분한 거 싫어서 청소를 주 3회씩 하고 인터넷과 TV는 건물에 계약한 거 봐야 한다네..."


순간 느낌이 좋지 않았다. 나는 동생에게 잠시 밖으로 나와보라고 했다.


"집주인이 느낌이 어떤데? 젊어? 뭐 다른 말하는 건 없어?"


질문이 길어졌다.


"뭐... 엄마랑 둘이 산다고 하니까.... 다행이라고 하면서 개념 없는 사람들이 들어와서 사는 걸 많이 봐서 싫었는데.. 마음이 놓인다고 하더라고"


나는 동생에게 인터넷이랑 TV는 이전이 가능한지 물어보라고 했다. 그리고 부동산 사장님에게 바로 전화를 걸었다.


"사장님... 집주인이 좀 까다로운 거 같은데요.. 그렇죠?"


나와 부동산 거래를 몇 번이나 하고 몇 년간 알고 지내왔던 사장님이라서 거짓 없이 말해주었다.


"솔직히 좀 그러네요... 근데 집은 좋잖아요.. 싸고... 어차피 잠시 살다가 나중에 다른 계획이 있으니 자나요.. 그렇죠?"


나는 저렴한 전세가를 생각하며 그냥 한숨을 쉬며 알겠다고 하고 전화를 끊었다.


어느덧 이삿날이 나가 왔다. 병원에 입원한 엄마를 뒤로하고 도둑 이사를 하는 것 같아서 마음이 불편했지만 한편으로 홀가분했다. 사실 집이 다른 빌라에 모두 둘러싸여 있어서 기운이 좋지 않았다. 그 점이 나를 항상 불편하게 했다. 가난했어도 아픈 사람은 없었는데......

그 집으로 이사하고 아버지 암으로 돌아가시고, 엄마는 위암에 지금 치매까지 걸리고, 동생도 일이 잘 풀리지 않았다. 물론 집터 때문이라고 원망하는 것은 유치하나 사람인지라 거슬렸던 것은 사실이다.


이삿짐을 모두 빼고 잔금을 받고 그동안 정든 동네에 눈인사를 하며 이사하는 집으로 이동했다. 동생은 먼저 도착해서 이삿짐 내리는 걸 봐주고 있었다.


"사장님 이거 에어컨 실외기는 어디에 설치할까요?" 기사분이 물어봤다. 나는 집 주변을 둘러보았다. 창밖에 실외기 거치대가 하나도 없었다. 이삿날 같이 보러 온 부동산 사장님과 함께 집주인을 찾아갔다.


"이거 에어컨 실외기 어디에 설치하죠?"


집주인을 처음 본 순간이었다. 40대 후반으로 보이는 딱 봐도 센 이미지와 명품으로 치장하고 딱봐도 사람 무시하게 생긴 중년 여성이였다.


 나를 보며 집주인이 말했다.

"그거 복도에 설치하세요." 나와 부동산 사장님은 눈이 마주쳤다.


"복도에 실외기를 설치해요?" 내가 묻어보니, 집주인 딱 잘라서 내 말을 가로챘다.


"동네 보시면 외부에 실외기가 없어요. 다른 집도 다들 그렇게 했으니 벽에 거치대 설치하지 마세요."


나는 표정관리가 안돼서 황급히 자리를 피했다. 신축 빌라촌이었다. 1층은 상가가 있고 2층과 3층은 임대를 주고 4층과 5층 2개 층을 집주인들이 사는 그런 구조였다. 계약한 집도 집주인이 4층에 살고 있었다. 4층을 보니 테라스가 크게 있었다. 다른 집들은 그 공간에 실외기를 두고 배관을 길게 빼서 연결해 있었다.

부동산 사장님은 왠지 씁쓸한 표정으로 내게 말을 걸어왔다.

"그냥 발코니에 둬야겠어요.. 아마도 복도가 집안에 발코니를 말하는 거 같아요."


나는 갑자기 후회가 밀려왔다. 내 이름으로 현재 아파트가 3개가 넘게 있고 아무리 투자를 10년 넘게 하고 있으면 뭐하나... 이렇게 동생과 어머니를 세입자 신세로 만들어버린 것에 대한 무한한 책임감이 나를 억눌렀다.


그리고 중요한 것이 기억났다.


바로 내 집 없는 서러움였다.

내가 크면서 이런 주인들에게 시달리는 아빠, 엄마의 모습을 정말 많이 봤는데 말이다. 그래서 그토록 아끼고 아껴서 투자를 하고 살았던 건데...

자가에 살면서 나도 우리 가족들도 모두 잠시 잊고 있었던 것이다. 다시 그 악몽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집이 없는 사람들의 서러움을 말이다.



<2편에서 계속 이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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