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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용환 Oct 02. 2021

집없는 사람의 서러움 <2편>

모든 이사를 마치고 집안 물건들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주인집이 마음에 안 들어도 집은 채광도 좋고 넓어서 좋았다. 내 집이 아니라는 것이 눈치 보였지만 시계랑 액자 때문에 벽에 못을 박을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동생은 까다로운 집주인인데 괜찮겠냐면서 문자를 보내보겠다고 했다.


'카톡'


"벽에 못 박지 마세요!. 도배랑 새로 한 거 보이시죠?"


나는 분했다. 동생은 잠시 살 거니까 그냥 아무 짓도 하지 말자고 하면서 나를 달랬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집을 다시 구석구석 보았다. 파손된 부분이나 흠이 있는 곳을 사진 찍어두었다. 나중에 계약이 만료되고 나갈 때 왠지 세입자에게 모두 보상하라고 할 것 만 같았다.


한참의 정리를 마치고 엄마방의 가구 배치랑 모든 것을 기존 집과 똑같이 만들었다. 혹시나 병원에서 퇴원했을 때 이사한 것에 대한 혼란을 조금이나마 줄이고 싶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TV를 연결했다.

치매 이후에 엄마는 마음에 드는 영화가 생기면 그것만 보고 싶어 했다. 최근에는 '신데렐라'였다. 무엇이 웃기는지 볼 때마다 큰 소리로 웃으면서 보는 엄마를 보면 항상 안쓰러웠다.


인터넷과 TV는 무조건 건물에 연결된 것을 사용해야 한다고 했기에 감수하고 들어왔는데 문제는 TV가 거스르오만 연결된 것이었다. 인터넷 업체에 전화를 하니 주인집 동의가 있어야 확장해서 안방으로 조정이 가능하다는 것이었다. 연락하기 싫었지만 어쩔 수 없이 연락을 했다. 사정 이야기를 하고 문자를 보냈다.


"그냥 거실에 보게 하시죠..."라고 답변이 왔다.


나는 상식적으로 이해가 되지 않았다. 마치 왕국에 '왕'처럼 행동하는 그 모습에 할 말을 잃어버렸다.

그럼에도 엄마 문제는 심각하기에 다시 사정을 했다. 혹시 추가 요금이 나오면 드리겠다고 말했다.

집주인이 전화해서 신청해야 한다는 부분도 다시 설명을 했다. 집주인은 큰일 해준다는 식으로 알겠다고 말하면서 일본으로 라운딩이 잡혀 있어서 다음 주에 연락하겠다고 차갑게 답글을 보냈다.


감수해야 하는 것들이 늘어났다. 나는 후회를 하고 또 하고 있었다. 이사에 대한 결정이 결국 내 선택이라는 것에 죄책감은 늘어만 갔다.


저녁이 돼서야 모든 정리를 마치고 동생과 마트에 갔다. 마트에서 장을 보고 집에 오니 빌라 주차장에 한가운데 주인집 외제차가 주차되어있었다. 차량 4대를 주차할 수 있는 다른 차는 주차가 불가능하게 가운데 주차를 했다. 다른 집들의 차를 보니 모두 건물 외벽이나 집 앞에 공용주차장에 주차를 한 모습을 확인했다.


조용히 있던 동생이 입을 열었다.

"형... 이게 월래 이런 거였어? 이거 참 너무 하네...."

나이 차이가 제법 나는 동생은 집 없는 서러움을 잘 모른다. 그래서 더 충격이 컸던 것 같다. 나 때문에 입을 열지 않았지만 이사 후에 며칠 동안 일을 생각하니 자신도 어이가 없다는 듯한 말투였다.


나는 조용히 말했다.

"동생아... 그냥 2년만 살고 이사 가자. 다음 집은 니 명의로 사서 가자. 형이 다 준비할게"


동생은 말없이 주차장을 바라보며 내 말을 듣고 있었다.


나는 이후에 엄머 퇴원일을 맞춰서 이사한 집에 일주일을 머물렀다. 동생이 출근을 하면 적응 못하는 엄마에게 동네 설명도 하고 적응시키면서 집에 머물렀다. 그리고 알게 된 사실은 빌라에 사는 그 누구도 집주인이 장기간 여행으로 집을 비워도 주차장에 차를 주차하지 않는 것이었다.


아마도 무엇인가 감정상 하는이야기를 들었던 거 같다. 참 안타까운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동네에 동일한 구조를 가진 다른 주택을 둘러봐도 이런 집은 우리 집뿐이었다.

아마도 전에 살던 세입자가 이렇게 괜찮은 집에 계약을 연장하지 않은 이유도 분명 집주인의 #갑질 때문일 것 같았다. 남의 집 살이가 이렇게 서러웠던가....


이런 사정을 아무것도 모르는 엄마이기에 조금은 덜 미안했다. 아마 경제적인 이유로 엄마 집을 정리했던 거였다면 아마도 나는 심하게 무너졌을지도 모른다. 그 비참함에 말이다.


집주인이 위에 사는 그런 집에 세입자로 들어가는 것은 가급적 피해야 하는 것을 다시 한번 실감했다. 예전에 엄마, 아빠가 주인집 옆에 단칸방에 살 때 그 시절이 떠올랐다. 마당에 뭐하나 가 떨어져 있거나, 내가 자전거를 타도 문을 열고 나와서 나를 말없이 쳐다보던 그 주인집 아줌마의 모습과 비슷했다.


이번 일을 경험하고 그동안 마음 따뜻한 집주인이 되기 위해서 세입자 분들에게 손해를 봐도 잘 해드렸던 것이 올바른 행동이라는 것을 새삼 느낄 수 있었다. 앞으로도 새로운 분들이 들어오면 최대한 많은 부분을 인간적인 차원에서 배려해려야겠다는 다짐을 했다.


내 집 마련이라는 소소한 꿈은 더 이상 소소하지 않게 된 현실에서 '있는 자'와 '없는 자'의 차이는 좁혀지지 않는다. 어쩌면 영끌이라도 해서 내 것을 가지려는 심리는 당연한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집주인 #집없는서러움 #내집마련 #갑질 #세입자 #부동산 #빌라전세 #세입자권리 #부동산투자 #인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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