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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용환 Jan 04. 2021

집주인과 세입자의 현실

부동산 정책에 울고 있는 두 사람

주인님이라는 말을 들으면 어떤 느낌이 드는가?


2021년 시작하면서 욕조에서 곰곰이 한해를 되돌아보았다. 코로나 19를 포함해서 수많은 일들이 있었던 2020년 한 해였다. 그중에 나의 마음을 불편하게 했던 대화가 있었다.

처음에 나를 '주인님'이라고 호칭할 때 상당히 어색했다. 그리고 꼭 저렇게 불러야만 하나? 다른 호칭은 없을까? 스스로 생각에 잠기기도 했다. 하지만 마땅히 떠오르는 말이 없을 수도 있었겠다는 생각을 하였다.


어린 시절 행복한 가난 속에서 내가 본 세상은 그렇게 어둡거나 초라하지 않았다. 3층짜리 큰 주택 구석에 살았지만 항상 바빴고 재미있는 일들이 벌어졌다. 집의 1층은 상가들이 있었다.


작은 슈퍼가 있었고 그 옆에 쌀집과 계란 가게가 있었다. 아주머니들은 항상 친절했다. 지금은 어린이집이 있지만 생각해보면 그 상가들이 나의 어린이집이 었던 거 같다. 그리고 그 상가 앞에는 아버지의 석유 집이 있었다.  


  2층 구석에 우리가 사는 작은 단칸방이 있었다. 그 앞에는 또 작은 2개의 단칸방이 있었고 거기도 젊은 부부와 내 또래의 아이가 있는 부부가 살고 있었다. 2층의 작은 마당은 항상 나의 놀이터였고 동생 태어난 날 아버지와 옥상 캠핑을 했고 날씨가 맑으면 저 멀리 항상 63 빌딩이 보였다. 그리고 3층은 한번 올라가 봤는데 방이 3개나 있고 조금 한 야외 테라스가 있는 큰 집이었다. 부럽다는 생각을 할 만큼 마음이 더럽지 않았다. 그냥 조금 넓은 곳에 사는 3층 집 식구들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2층에 우리 집(방) 옆에 또 다른 큰 문이 있었고 방은 4개가 있었고 고등학생 1명의 자녀를 둔 집이 있었다.


바로 주인집이었다.


상가집 아주머니도 우리 집 앞에 사는 분들도 3층 식구들도 항상 주인에 라고 불렀다. 그리고 우리 부모님도 주인집 아줌마라고 그들을 호칭했다. 가끔 김장철이 되면 더러워진 마당을 보면서 눈치를 주곤 했던 주인집이었다. 모든 사람들이 주인집, 주인네라고 해서 어린 나이에 궁금증이 생겼다. 도대체 왜 주인집이라고 하는지 어머니에게 물었다.


"그건 이게 다 저 사람 들 거란다." 아주 심플한 답변이었다.


그런데 30대 중반에 나에게 대학생 자녀를 둔 어머니가 주인님이라고 부르면 카톡이 온 것이다.

물론 작년은 정부의 정책 때문에 부동산에 많은 변화가 있던 해였다. 개인적으로 20대 중반에 매수한 아파트 때문에 나는 새입자를 받으면서 집주인 역할을 해야 했다. 물론 다주택 규제와 여러 세금 문제로 나의 1호기 그 아파트는 매도를 해야 할 시기가 왔다. 그래서 그때 사시는 분들과 계약을 할 때 계약 연장은 힘들고 2년이 지나면 어쩔 수 없이 매도를 할 거라고 말했었고 당시에 어머님도 동의한 상태의 계약이었다.


하지만 갑작스러운 집값 상승에 서로 곤란한 상황이 발생한 것이었다. 아주머니는 계속 주인님 제발 좀 더 살면 안 될까요?라고 부담스러운 문자를 보내셨다. 개인적으로 가난 속에 살았어도 부모님께 도적적으로 가정교육을 잘 받았다고 자부하기에 정말 정중하게 말씀을 드렸다.

저도 그러고 싶은데 어쩔 수 없이 매도를 해야 하는 사정을 꼭 이해 부탁드린다고 말씀을 드렸고 조금 일찍 집이 구해져서 나가신다고 해도 괜찮다고 말씀을 드렸다. 그리고 나는 부동산에 집을 내놓았다.


  나 또한 일시적 2 주택으로 인해 세금에 대한 부담으로 집을 정리해야 해서 새 집주인을 애타게 기다리고 있었다. 주변 10곳이 넘는 부동산에 집을 내놓고 기다리고 기다려도 매수자가 나타나지 않았고 집값을 내려서 다시 광고를 했다.


그리고 얼마 지나서 부동산 사장님 한분에게 전화가 왔다. 사장님 사실은 지금 그 집을 보겠다는 사람은 좀 있는 거로 아는데 새입자분이 집을 안 보여줘서 계약이 성사가 안되네요. 개인적으로 충격을 받았다. 물론 부동산 투자를 통해 나 또한 가난의 탈출이나 경제적 자유를 위한 실천을 하고 있는 투자자가 맞다. 하지만 나는  재계약 시 항상 월세나 전세도 남들만큼 올려 받지도 못했다.  마음이 약해서

 이다. 투자자로서는 치명적인 약잠일것이다.


그런데 집을 안 보여준다는 말에 개인적인 서운함을 느꼈다. 그러면서 동시에 오죽하셨으면 그러셨을까 하는 공감의 감정도 느꼈다. 너무 혼란스러운 부동산 대책에 집주인 나 새입자나 모두 불안한 상태가 되어버린 우리나라 시장이 문제이고 그로 인해 서로 피해를 보는 것 같았다.


나는 정중하게 전화를 걸었다. 어머니 정말로 집을 제가 팔아야 해서요. 부탁드리는데 집 좀 보여주세요. 제가 그동안 서운하게 해 드린 거 없잖아요. 아시죠?

그렇게 말씀을 드리니 '미안합니다. 저희도 급해서요. 어쩔 수 없었어요 혹시 이러면 더 살수 있을까 해서요."라고 말씀하셨다.

참으로 안타까운 현실이다. 이런 현실 속에 더욱 나를 불편하게 하는 것이 있다. 여전히 나는 주택을 매수하면서 자본주의를 투자를 계속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아주머니는 근처에 조금 더 작은 평수의 아파트로 이사를 가셨다. 무엇을 자랑하는 것이 아니다. 하지만 둘 다 멈출 수 없는 것은 분명하다. 돈 맛을 본 투자자도 포기를 못하고 두려움을 느낀 아주머니도 용기를 내지 못한다.

(주택 재계약 시점은 계약갱신청구권에 대한 발표 전입니다. 참고 바랍니다)


어쩌면 내가 어릴 때 그 동네가 모두 가난했지만 더 정겨웠던 거 같다는 생각이 든다. 이마트도 없었고 동네 시장을 주말에 가면 동네 사람들을 쉽게 만나서 인사를 건네고 동네의 골목에는 팽이치기와 딱지치기로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들리며 24시간 편의점은 없었지만 밤에 아이가 열이 나면 옆집의 문을 두들겨서 약을 받아 오는 그런 정이 있던 그 시대가 그리워진다. 그때는 하루 벌어 하루 행복히 살고 남는 돈은 은행에 가서 저축했던 상당히 심플하고 단순했더같다.


2021년도 부동산에 많은 변화가 발생한다.  몇 가지 주요 제도를 보면

출처: 매일경제 양도세 종부세 청약 새해 다 바뀐다.


개인적으로 다주택자의 포지션에는 좋은 소식보다는 좋지 않은 소식이다. 하지만 우리는 모두는 알고 있다. 어떠한 정책을 내놓아도 정말 가진 것이 많은 태생이 금수저인 사람들은 아무런 피해도 받지 않는다는 것이다. 현금으로 사고 세금 더 내라고 하면 더 내면 그만이다.


중요한 것은 발버둥 치면서 좀 살아보겠다고 하는 어설픈 투자자들이나 열심히 살아도 집 한 채의 꿈에서 영원히 멀어지는 서민층일 것이다.


2021년에는 다급하게 나를 주인님이라고 부르시는 어르신들을 만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램이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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