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도 나랑 살아줘서 고마워.

by 고용환

이혼이라는 단어를 가슴 깊은 곳에 넣어 둔 이유는 내 삶이 하찮아서가 아니다. 물론 내가 그리던 결혼 생활은 결코 아니다. 모든 퍼즐은 지금까지 단 한 번도 맞춰진 적이 없다. 그럼에도 선택은 내가 했다는 책임감과 아이에 대한 무한한 사랑이 우리 부부에게 7년이라는 생활을 버티게 해 준 것은 사실이다.


서로 다름을 그리고 다양한 색채를 지닌 행동을 존중하며 살라는 말은 쉽다. 하지만 매 순간 화가 나는 것은 사실이다. 그 작은 태도와 행동이 힘들게 일하고 돌아온 집 현관문을 열자마자 열받게 만드는 것은 어제의 일상에서 반복되었다.


그런데 헤어짐을 선택하고 그저 부러운 단편의 달콤한 다른 한국 부부를 동경하는 것은 왠지 모를 씁쓸함과 불쌍한 인생의 마침표를 만들 것만 같다. 그래서 많은 부분은 그냥 넘기기로 했다.

이해한다는 것과 다소 다른 표현이고 대처지만 넘기는 것이 서로의 충돌을 최소화한다는 것을 비로써 깨닫는다.


아직 내가 부족해서 그런 거라고, 덜 성숙한 인간이기에, 하고 싶은 것과 이루고 싶은 게 너무 많은 거라고 나를 원망하기로 했다. 남을 원망하면 1초도 버티기 힘든 것도 나를 원망하면 용서가 되는 게 이기적인 우리 인간이다.


어찌 나를 미워하겠는가... 아무리 미숙하고 어리석은 선택을 했다고 하더라도 자신을 버리거나 미워할 수 없다.


딸아이가 7살이 되면서 틈만 나면서 분노와 격분으로 싸우는 우리에게 따끔한 중재를 한다.


"싸우지 마!"


이 네 글자는 고스란히 내 심장에 박혔다. 부끄럽고 미안해서 딸아이를 볼 수가 없는 현실을 지속하는 것은 내가 바랬던 아빠의 모습이 아니었다. 물론 언어의 장벽과 문화적 차이로 조금은 장애스러운 부부생활을 이어가지만 그럼에도 딸아이는 우리를 애정 어린 모습으로 바라봐 준다.


한때는 이렇게 불안정한 모습을 보여주는 게 딸아이에게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칠 것 같다고 확신해서 이혼을 문턱까지 끄집어낸 적이 있다. 그렇게 이혼이라는 단어를 혀 끝에 둔 날에 곤히 자고 있는 딸아이를 보면 한없이 눈물이 났다.


그래서 살아 보려고 한다. 누가 말하길 요즘 세상은 이혼은 아무런 흠집도 안 되는 그런 너무도 흔한 것이라고 나를 위로한다. 그런데 세상이 내게 흠을 내지 못한다고 해도 분명한 것은 사랑하는 내 딸에게는 지워지지 않는 상처를 남긴다는 것이다.


어쩔 때는 죽도록 미운 말고 행동으로 내 속을 뒤집어 놓고 지근지근 찌르는 아내지만 그래도 이 땅에 나 하나 보고 와서 살고 있는 것은 사실이기에 나는 가족에게 미안함을 품고 산다.

물론 체온이 부족하여 부화시키지 못하고 품고만 살지만 그래도 세월이 나를 더 성숙하게 말 들어주길 청원해본다.


이런 결혼 생활도 괜찮다고 나는 나를 위로한다.

위로는 꼭 남에게 받아야 하는 것은 아니다. 그리고 꼭 직접적으로 이야기해줘야 하는 건 아니다. 딸아이가 나를 바라보는 눈 빛, 그래도 쌀 밥 좋아한다고 일찍 퇴근하면 정체를 알 수 없는 찌개를 준비하는 아내, 말도 안 되는 나이에 치매라서 나를 미치게 하지만 나를 보고 웃어주는 엄마, 이 세상 누구보다 나는 존경해주는 동생이면 나는 충분히 위로받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행복하다고, 살만하다고, 버틸 힘이 남아 있다고 말할 수 있다.


그래서 조금 힘든 인생이 더 아름답다고 말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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