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저녁 8시 다시 솔로가 된다.

by 고용환

결혼을 하면 '각자'에서 '우리'로 모든 것이 변한다고 생각했다. 어린 시절에는 '우리'가 되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하며 데이트를 했다. 서로에게 여유와 각자 삶을 존중하기보다는 커플이라는 이름 아래 같은 생각, 행동, 시간을 보내는 것에 초첨을 맞추었던 시절이 생각난다. 물론 초반에는 언제나 행복했다. 하지만 시간이 흘러가면서 '우리'에서 '나'로 자연스럽게 다시 돌아가는 현상은 반복되었다. 사랑의 유통기간에 대해서 3개월 또는 사람마다 다르게 이야기를 한다. 나는 끌림에 유통기간은 존재한다고 생각하지만 사랑이 변한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다만 다시 온전한 나를 찾는 과정에서 충돌이 발생하고 나를 잃어버리는 것에 대한 자연스러운 거부반응이 아닐까 싶다.


외국인과 결혼하면서 초반에는 '우리'를 너무도 그리워했다. 무엇인가 확실한 경계선이 존재하는 생각의 차이는 우리를 벼랑으로 몰고 갔다. 물론 안전장치가 있었다. 우습게도 들리겠지만 딸이었다. 그 안전장치가 우리를 벼랑 끝에서 떨어지지 않게 지탱해주었다.


부부라는 이름으로 살아가고 있는 6년이라는 시간 동안 아직도 나는 '우리'를 우리 사이에서 찾지 못했다. 주변에 흔한 커플들이 하소연하며 내 시간이 필요하다고 할 때, 그들을 넌지시 바라보며 속으로 부러웠다.

같이 TV를 보고, 같이 야식을 시켜먹고, 같이 피곤해지고, 같이 걱정을 하고, 같이 미래를 두려워하고 , 같이 정치 이야기를 하고, 같이 취미생활을 하는 이런 삶들이 평범한 것이 내게는 아니었다. 단지 사람은 적응의 동물이라고 했던가... 이런 삶 속에도 결국 적응을 해낸다. 정말이지 무서운 동물이 사람인 거 같다.


아이가 잠자리에 들고 나면 각자의 삶으로 돌아간다. 공유라는 것이 없이 너무도 자연스럽게 하고 싶은 일을 따로 한다. 한 공간에 있지만 다른 집에 사는 그런 미묘함이 존재한다. 그런데 이제는 나도 익숙해졌다. 8시가 되면 혼자 밖으로 나와서 커피숍을 가서 책을 보거나, 논물을 쓰거나, 책을 집필하는 등 혼자만의 시간을 보낸다. 아내는 소파에 가장 편한 자세로 앉아 자신만의 시간을 보낸다. 몇 시간쯤 혼자 시간을 보내고 집에 들어오면 다시 각자의 방으로 들어간다.

누가 보면 엉망이라고 할 것이다. 안전장치 핑계 그만하고 고통에서 벗어나라고 조언하려고 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내 방에 들어와서도 저녁 11시가 되면 발자국 소리도 크게 들리는 고요한 집이라도 나는 이제 그 시간을 즐긴다. 조용히 방에 들어가서 나만의 하루를 정리한다.


어쩌면 이런 삶은 노년이 돼서 누구나 경험하는 결혼의 일부일지도 모른다고 생각이 든다. 아니 그런 모습을 많이 보았다. 단지 조금 일찍 경험할 뿐이다. 우리가 서로에게 종속되고 복잡해지는 것을 거부했던 것은 누구의 잘못도 아니다. 그저 살아온 발자취와 문화 그리고 언어까지 다른 전혀 다른 두 사람이 사는 또 다른 평범이다.


만약 내가 한국 여성과 결혼했다면 모른다. 나는 지금 나같이 어쩌면 자유로운 삶을 사는 다른 누군가를 부러워할지도 모를 일이기 때문이다. 그래도 저녁 8시까지는 우리 부부는 정말 충실히 딸을 위해 시간을 같이 보낸다. 그거면 충분하다. 적어도 그 시간들 속에 우리 부부는 가식이 없다. 식탁 앞에서 딸의 애교를 보고 웃고, 미운 6살 말썽 속에 속상해하고, 딸아이 몸에 작은 상처에도 열 받아하는 아주 평범한 부부의 모습이기 때문이다.


살아가다 보니 인생이라는 것은 참 뜻대로 되지 않았고 그럼에도 가끔 웃을 일도 생기고 하루하루를 살아가게 되는 것을 느끼게 된 어설픈 어른이기에 앞으로도 견딜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저 조금 다를 뿐이다. 그것은 다른 형태의 사랑일지도 모른다. 아직 무지하고 어리석은 젊은 나이이게 깨닫지 못한 것이라고 생각해본다.


내일도 나는 저녁 8시까지 아빠의 의무를 다하고 잠든 딸을 보고 집 밖으로 홀로 나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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