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시 셀 수 없이 저장된 전화번호가 당신을 행복하게 하고 든든한 인맥이라고 생각이 든다면 과감하게 전화번호부를 청소하라고 말해주고 싶다. 직장생활을 하게 되면 각종 업무 관계자의 번호로 채워진다. 너무 많다 보니 이름만 입력하면 기억하기 힘들어서 자신만의 저장법으로 다양하게 구분해서 입력하기도 한다. 하지만 업무를 제외하면 사실 우리들의 전화번호부는 초라하다. 물론 젊을 때는 친구들도 알아서 계속 늘어나니 나중에 나이 들어 절대 외로울 일 없을 거라고 착각하기도 한다. 그중에 당신과 마음이 맞는 사람은 누구이고, 업무계통이 아니게 되어도 연락을 지속할 사람이 누군지 생각해 보면 지워야 할 사람들은 늘어난다. 언젠가 아쉬운 소리 하게 될지도 모르니 그냥 가지고 있는 게 좋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인생은 어떻게 될지 모르니 말이다. 그런데도 나는 전화번호부를 청소하라고 말해주고 싶다. 지금 별로인 사람이 나중에 좋아지기 힘들다.
그리고 만약 나랑 친하지 않던 사람의 우연한 성공 소식을 들었다고 해도 평범한 사람들은 예전에 알았다고 갑자기 그런 사람에게 연락해서 친한 척하기는 정말 힘들다.
얼마나 뻘쭘한가 말이다. 거의 십 년 가까이 연락도 없는 사람이 자신의 성공 소식을 듣고 연락이 온다면 그 사람도 당황하고 어이없어할 것이다.
어쩔 수 없이 업무를 하거나 같이 학업을 한다면 모를까 그런 관계가 마무리되면 지울 사람과 남길 사람을 정하는 시간을 가져야 한다. 쓰레기 한 번에 몰아서 분리해서 수거하려고 하면 계속 쌓이기만 한다. 그때그때 들고나서 처리하는 게 가장 깔끔하다는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그래서 나는 철저하게 번호를 지운다. 만약 어쩔 수 없이 직장이라는 울타리 때문에 가지고 있던 사람의 번호는 내가 떠날 때나 그 사람이 떠나면 바로 삭제한다. 냉정하다고 생각하는가? 아니다. 왜 이름만 봐도 기분이 별로인 사람의 번호를 보고 싶어서 안달하는가 말이다.
이제 그 사람 얼굴을 볼 필요도 없고 업무상 억지로 통화 필요도 없는 자유를 얻었는데 무엇이 문제인가?
물론 내가 번호를 지운 사람한테 가끔 연락이 오기도 한다. 나는 그 사람을 싫어했는데 그 사람은 내 마음을 몰랐다거나, 보통은 상사이거나 아쉬운 것이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번호 저장되어 있지 않으면 받을 때 아는 척하지 못한다.
그러니 첫마디가 ‘여보세요, 누구누구입니다.’ 이런 식으로 받게 된다.
그럼, 그 사람은 ‘나야’라고 말한다. 그런데 번호를 지우면 그 사람의 목소리를 기억하기 힘들다.
그건 지워보면 안다.
결국 그 사람은 ‘누구세요?’라는 대답에 당황한다. 몇 번 이런 일이 반복되면 더 이상 연락이 안 온다.
너무 잔인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고 반대로 비겁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뭐 싫다는 말을 대놓고 못 하니 쪼잔한 거 아니냐고 말이다. 하지만 이게 싫고 좋고 그런 문제가 아니다. 그냥 내 삶에서 불필요한 것들을 정리하는 것이다. 안 입는 옷을 버리는 것처럼 간단하게 연락하고 싶지 않은 사람은 인생에서 정리하는 것뿐이다. 이렇게 안 하면 관계 정리가 힘들어진다. 정말 싫어하는 사람이랑 관계를 의무적으로 가지지 않아도 되는데 계속 연락이 온다고 생각해 봐라. 근데 거절도 못 한다면. 이런 인생이 더 불쌍하다.
차라리 정말 마음을 나눌 수 있는 소중한 전화번호만 가지고 있는 게 인생을 사는 데 더 도움 된다. 살면서 아쉬운 소리를 할 생각 하며 사는 건 그만큼 최선을 다해서 살고 있지 않다는 소리랑 똑같다. 사람들이 나를 찾게 만들면 그만이다. 이런 경우에는 그 사람들의 번호를 저장하지 않아도 알아서 먼저 연락이 온다. 그리고 아무리 몇천 명의 번호를 가지고 있다고 해도 경조사에 도움이 된다는 보장이 없다. 오히려 실망감만 늘어난다.
보통 힘든 일을 경험하면 자기 주변 사람들의 가치를 다시 평가하게 된다.
다시 말하면 상처받게 된다는 말이다. 누군가를 잃어서 미친 듯이 힘든데 내 생각에 친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오지 않으면 얼마나 배신감이 드는지 경험한 사람은 알 것이다. 그런데 그건 순전히 우리들의 착각이다. 그 사람이 온다는 기준을 만든 것도 자신이고 그 사람을 오랜 시간 만약을 위해 관리했다고 생각하기에 실망감도 커지는 것이다. 정말 힘들 때 거절당한 걱정이 별로 안 되는 아니 거절당해도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몇 명의 사람들만 주변에 있어도 삶은 아름다워진다. 그러니 관계를 돌아보고 전화번호부를 정리해라.
누군가 갑작스러운 사고로 세상과 이별을 하였다. 남은 것은 무엇이겠는가?
바로 우리가 사용하는 스마트폰이다. 유가족은 슬픈 소식을 전화번호부에 있는 모든 사람에게 전했다. 왜냐하면 누구에게 보내야 한다는 유서나 그런 세부적인 속사정을 전혀 모르니까. 그냥 급하게 보낸 것이다.
받은 사람들 반응은 어땠을까?
그 속에는 관계가 엉망인 사람, 그 사람을 혐오하는 사람, 그냥 저장된 사람, 친한 사람, 스쳐 지나간 연인 등이 포함되어 있었다. 생각만 해도 민망하다.
전화번호부를 정리한다는 것은 관계를 깔끔하게 유지하고 관리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내 감정을 정확히 알고 있다는 것이 된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의 기준과 내가 싫어하는 사람의 기준이 명확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 그런데 그냥 좋은 척하고 사는 게 정답인 것처럼 사는 사람들이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