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못된 선택이 내게 남긴 비싼 수업료
물가 상승률보다 오르지 않았지만 97년식 첫 번째 아파트는 내게 스승과도 같은 존재였다. 집주인은 나지만 세입자가 바뀔 때만 들어갈 수 있는 내 집은 마치 장거리 연애를 하는 것만 같았다. 계약 만료일이 되면 세입자를 구하느라 마음고생도 많이 하고 작고 큰 보수로 손이 많이 갔다. 첫 번째 구축 아파트는 내게 가난에서 탈출하는 작은 문을 열게 해 준 소중한 열쇠였다.
하지만 충동적이고 탐욕스럽게 매수한 34평 아파트 분양권은 마치 악당처럼 나를 힘들게 했다. 그 고통은 2년 동안 지속되었다. 미분양 신축 아파트 분양권을 사고 몇 주가 지나서 겨우 동생과 함께 공사 현장을 방문했다. 한 손에 아파트 배치도가 나온 홍보물을 들고 동수를 세면서 분양받은 아파트를 찾았다. 3층 정도 올라가고 있는 아파트들은 파란색 모자를 쓰고 "빨리 키가 크고 싶다”라고 큰소리로 내게 외치는 것 같았다. 나는 몇 채 안 남은 저층 중에서도 가장 전면동 3층을 선택했다. 길게 늘어선 천 세대가 넘는 세대 아파트 중에서 맨 앞줄에 있는 놈이었다. 모두 저층이라서 어디를 선택해도 큰 차이가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전면동 앞 향후 개발 호재를 기대하며 큰 고민 없이 골랐다.
현장에 도착해서 눈에 들어온 것은 바로 도로였다. 모델하우스에서 볼 때는 그냥 평지처럼 보였던 곳이 실제로 가보니 높은 고가도로였다. 저층이지만 밑에 필로티가 있고 지대가 높다는 말에 안심했는데, 현장에서 높이를 계산해 보니 고가도로의 높이와 아파트 3층 높이가 똑같아 보였다. 나는 동생이 옆에 있는 것도 잊은 채 분노를 누르지 못해 “젠장”이라고 큰 소리로 외쳤다. 평소와 다른 모습에 놀란 동생은 걱정스러운 얼굴로 나를 보며 물었다.
“왜? 형, 왜 그래?”
“아….”
“왜? 무슨 일인데?”
“이거 내가 큰 실수한 것 같다.”
“뭐가?”
“고가도로랑 3층이랑 높이가 같은 것 같아….”
동생은 처음에 이해를 못 하고 멍하니 나를 바라봤다. 말하는 것보다 실제로 보는 것이 빠를 것 같았다. 동생을 데리고 길도 없는 비탈길을 기어서 올라갔다. 고속화도로 위로는 자동차들이 큰 소음을 내며 달리고 있었다. 동생과 고가도로 끝에 올라서서 모자 쓴 내 아파트를 바라보았다. 예상과 같이 높이가 비슷해 보였다. 불행하게도 아파트와 도로는 아주 가깝게 붙어 있었다. 큰 일을 저질렀다는 것을 직감했는지 몸이 떨리기 시작했다. 내 눈에 별로인 아파트는 남에 눈에도 별로인 법인데, 앞으로의 일이 걱정되었다.
“아, 이거구나. 여기 고층은 한강뷰라던데 형은 완전 도로뷰네.”
“놀리지 마라. 이거 지나가는 자동차랑 눈 마주칠까 봐 거실 창문이나 열겠냐. 열받는다. 일단 밥이나 먹으러 가자.”
주변 맛집을 검색해서 짬뽕집으로 향했다. 식당에 도착해서 평소와 다르게 낮술로 소주를 시켰다. 이 답답한 마음을 진정시킬 수 있는 것은 술 밖에 없었다. 나는 소주를 한 입 털어놓고 동생에게 운전을 부탁한다고 말했다. 일그러진 내 표정을 보고 동생은 한심하다는 듯 지나간 일 때문에 왜 이러냐고 다그쳤다.
“그냥 잊어버려. 어쩔 수 없잖아.”
“그냥 정말 너무 바보 같아서…. 현장을 한 번이라도 온 후에 결정했다면 이런 멍청한 짓은 안 했을 텐데….”
“근데 뭐 아직 큰 문제는 없잖아. 아니야?”
“지금은 아니지. 근데 나중에 팔 때를 생각해야지. 그리고 세입자 구할 때도 이건 치명적인 약점이 될 텐데…. 아휴….”
내 입으로 말하는 사이에 심한 두통이 밀려왔다. 집을 보러 온 사람들이 내게 따지는 모습이 그려졌다. 결국 이런 흠은 가격 흥정으로 어어지기 마련이다. 사는 사람은 집요하게 깎을 것을 찾아 밀어붙이고, 파는 사람은 좋은 점만 말하며 가격을 올린다. 그 중간에서 누가 더 아쉬운지 간을 보고 급한 놈을 골라서 흥정하고 밀어붙이는 게 공인중개사들의 역할이다. 이 삼각 구도에서 절대적인 약자는 뭔가 부족한 집을 보유한 집주인이다. 돈이 넘쳐나는 현금부자라면 상관없겠지만 대출로 사서 갭으로 차익을 남기는 투자자에게는 치명적인 약점이 된다. 이런 약점을 관리하지 못하면 결국 빈손으로 이 사장에서 아웃당한다.
“듣고 보니 그러네. 형이 많이 불리하겠네. 그래도 우리 집에서 자기 이름으로 아파트 두 채 가진 건 형 밖에 없을걸?”
“모르지. 좋은 건 남이 달라고 할까 봐 다들 숨기고 사니까. 그리고 내 돈도 아니고 은행 돈으로 산 건데. 은행이 진짜 주인이지. 나도 잠시 빌린 거나 다름없어. 결국 은행 매출 올려주고, 국가에 세금만 더 내고 집주인은 빈손으로 비참하게 퇴장할 수도 있어. 바지사장이랑 다를 게 없지.”
기분 탓인지 매운 짬뽕이 곰탕처럼 느껴졌다. 표정 관리도 안되고 기분이 회복되지 않았다. 병원을 그만두고 힘들어하는 동생 앞에서 쪽팔린 모습만 보였다고 생각하니 더 한심스러웠다. 그래도 동생을 데리고 나온 것이 후회되지는 않았다. 이런저런 것을 옆에서 보고 것 자체가 돈으로 살 수 없는 경험이 될 거라고 믿었다. 아마 멍청한 실수를 한 형의 실수는 나중에 동생에게는 배움이 되었을 거라고 스스로 위안했다.
집에 도착하고도 한참 동안 분하고 억울해서 감정이 진정되지 않았다. 당장은 아무 일도 벌어지지 않겠지만 앞으로 벌어질 일들을 생각하니 끔찍했다. 입장 바꿔서 생각해도 그런 곳에 살고 싶지 않을 것 같았다. 게다가 신축이라 터지는 물량 앞에서 내 아파트는 철저히 외면받을 것이 뻔했다. 계속 진정하지 못하고 씩씩거리는 나를 보고 동생은 한마디 던졌다.
“형, 막상 준공돼서 안에서 밖을 보면 우리 생각처럼 최악이 아닐 수도 있어.”
“그래, 그래. 미안하다. 내가 좀 예민해졌나 봐. 마음이 급했어. 아빠가 떠나니 어깨가 더 무거워지더라고. 누가 뭐를 올려놓은 것도 아닌데 그냥 불편했어. 나중에 너 결혼도 시켜야 하고, 엄마 몸도 계속 늙어가는데 언제까지 계속 일하게 둘 수도 없고…. 어떻게든 젊을 때 돈을 더 벌어야겠다고 생각하며 욕심을 부렸더니. 큰 벌을 받았네…. 분수에 맞게 살라고.”
“별말을 다 하네. 17살부터 지금까지 일만 하면서 살았잖아. 충분해. 그 정도면 충분해. 그냥 자.”
항상 옆에서 든든하게 나를 믿고 따라주고 동생의 위안을 자장가 삼아 억지로 눈을 감고 밤을 청했다. 누구를 원망할 수도 없었다. 모든 선택은 나를 통해 이뤄졌다. 이게 어른이 짊어지고 가야 하는 자유에 대한 형벌이다.
그 후에도 나는 틈만 나면 공사 현장으로 차를 끌고 갔다. 달라질 것 하나도 없는 것을 알면서도 혹시나 하는 마음에 고가에 올라가서 아파트를 보고 또 봤다. 안 그래도 넘쳐나는 신축 아파트 물량 때문에 마음이 더 쓰였다. 내가 선택한 미분양 아파트는 누가 봐도 입지가 좋지 않았다. 처음부터 외면당했다는 것을 알았음에도 나는 욕심을 앞세웠다. 시간이 조금 지나자 마이너스 분양권 거래가 활발해졌다.
한강뷰 로열층도 거의 프리미엄이 없었다. 그걸 지켜보면서 나의 경솔함에 욕을 퍼부었다. 조금만 참고 천천히 생각했더라면, 가만히 앉아서 원하는 동 호수를 골라 한강이 내려다 보이는 곳을 선택할 수 있었을 텐데…. 할인 분양에 눈이 멀어 장님이 되었다. 조금만 참고 고개를 들어 앞을 봤어야 했다. 마이너스 가격에 거래되는 아파트를 보고 있자니 화병으로 쓰러질 것 같았다. 결국 참지 못하고 주변 부동산을 찾아 상담을 받기 시작했다.
“사장님….”
“네. 어떤 일로 오셨나요?”
“저기, 운양동 신축 아파트 저층 분양권 거래가 될까요?”
“파시게요? 동호수가?”
내가 말을 듣고 사장님은 고개를 좌우로 절레절레 흔들었다. 왜 이런 분양권을 들고 있냐고 한심하다는 듯한 눈빛으로 나를 쳐다봤다. 사장님은 현재 마이너스 천만 원에 내놔도 절대 거래가 안 될 거라고 단호하게 말했다. 어찌나 밉던지 처음 본 사이인데도 몇백 년 원수처럼 느껴졌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몇 군데를 더 돌아다녔지만 돌아오는 답변은 컨트롤 C + V였다.
‘KO, 완벽한 나의 패배였다.’
마음과 몸이 너덜너덜해진 상태로 동생과 함께 갔던 짬뽕집에 갔다. 분양권을 매수한 지 6개월이 넘었지만 여전히 후회를 떨쳐내지 못하고 있었다. 그때 마침 휴대폰이 울렸다.
“뭐 하냐?”
“아…. 병신 짓….”
“무슨 말이야? 어딘데?”
“김포야.”
“또 아파트 둘러보냐? 너도 징하다.”
“선배는 뭐 해?”
선배는 한동안 말이 없었다. 입 밖으로 뭔가를 꺼내기 힘든 사람처럼 어렵게 모음과 자음을 결합해서 소리를 만들어 내고 있었다.
“지원서 쓴다.”
“뭔 지원서? 다른 일 지원하게?”
“아니…. 너 후배 되려고. 네가 너무 잘나서 너한테 대놓고 배우게….”
“무슨 소리야? 설마…?”
“설마는 무슨 설마야. 재입대한다고 다시 하사로….”
부사관은 한 달 차이만 나도 하늘 같은 선임으로 모셨다. 선배는 계급을 신성스럽게 여겼다. 그래서 우리 부대는 위와 아래가 더 확실했다. 언제나 그렇게 군인답게 행동했다. 선배에게 서열은 절대로 지켜야 하는 최상위 법 그 자체였다. 그래서 자기 윗사람을 끔찍이 챙겼다. 반대로 후배들이 자기를 대접해 주기를 원하기도 했다.
가진 거라고는 몸이 전부인 우리가 말뚝을 박고 자존심을 지킬 수 있는 유일한 무기는 부사관 선배를 잘 모시는 일이었다. 하지만 선배는 이미 모든 것을 이미 내려놓은 것처럼 보였다. 후배들 밑으로 들어가서 굽신거리는 고통보다 불안하게 살게 될 두 딸이 더 걱정됐던 것이다.
누가 아빠 직업을 물으면 고민하며 대답하게 하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재입대 나이 제한이 있어서 그동안 선배는 고민하고 또 고민했던 것처럼 보였다. 마치 아빠가 나 때문에 친구 밑으로 들어가 월급쟁이로 세차장 일하며 자신의 존재를 지워갔던 것처럼…. 가족을 지키기 위해 가장은 언제나 더러운 걸레가 될 수 있었다. 자존심이 땅에 떨어져 보이지도 않는 더러운 흙탕물 속으로 들어가고 언제나 가족을 1순위로 생각해야만 했다.
“역시 내가 좋아하는 사람답다.”
“미친놈. 나 끌어주려면 네가 더 잘 나가야 해.”
쿨한 척했지만 나는 선배의 마음을 충분히 읽을 수 있었다. 나중에 다른 사람들에게 전해 듣게 하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그것이 마지막 자존심을 지키는 유일한 방법이라는 것을 선배는 알고 있었다.
선배와 통화를 마치고 분양권 하나 때문에 몇 달 밤잠을 설친 내가 한심하게 느껴졌다. 이렇게 돈을 두고 저울질하고 있을 때, 누군가는 인생을 두고 저울질을 했다고 생각하니 속물처럼 느껴졌다. 하지만 지금 하는 부동산 투자를 절대 멈추지 말아야겠다고 다짐하기도 했다. 정말 선배가 전역하고 돈 많이 받고 불러주는 곳이 많았다면, 그리고 사회에서 부사관 경력을 충분히 인정해 줬다면 다시 간부로 지원했을까?
그렇지 않을 것이었다. 선배는 더 넓고 깨끗한 밖이라는 우물에 머물렀을 것이다.
밀어주는 부모가 있었다면, 사회에서 써먹을 능력이 있었다면, 모아둔 돈이 많아서 다른 준비를 할 수 있는 시간적 여유가 있었다면, 한 집안에 가장이 아니었다면, 분명 다른 대안을 찾았을 것이다.
결국 돈이 없으면 우리는 삶에서 선택을 빼앗긴다. 선택의 권리를 박탈당하고 주어진 현실에 자신을 맞추게 된다. 우리가 우리답게 살 권리를 지배하는 진짜 주인은 돈이라는 것을 부정할 수 없었다.
돈을 벌려고 하면 돈에 끌려다니게 되는 것 같았다. 사람답게 살려고 돈 벌고 일하는 건데, 이제는 돈이 없으면 죽기 때문에 살기 위해 억지로 일하는 세상이 되어버렸다. 충분함의 기준도 사라지고 남과 자신을 비교하며 평생 멈추지 못하게 돈을 따라다닐까 봐 두렵기도 했다.
한 달 넘도록 기다리고 기다렸지만 부동산에서는 어떤 전화도 오지 않았다. 네이버 부동산에 들어가 보니 내 매물은 올라와 있지도 않았다. 물량이 넘쳐나니 좋은 것만 올리고 내 것은 뒷전이구나 싶었다.
이대로는 안 될 것 같아 주변 부동산을 다시 찾아가 추가로 수수료를 더 드리겠다고 제안까지 했다.
이런 말을 먼저 꺼내는 게 독이 될 수도 있다고 생각했지만 절박했다. 다른 방법이 없었다. 이 걱정에서 해방되고 싶었다. 일도 손에 안 잡히고, 마음은 온통 아파트 3층 앞에 있는 도로와 소음으로 가득했다. 이 악몽에 탈출하는 방법은 누군가에게 이 악몽을 줘버리는 것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