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이 내 삶을 바꾸기는 했지만, 엄마의 작은 어깨는 더 무거워졌다.
2018년은 정말 빨리 지나갔다. 2005년 하사로 임관해 13년이라는 시간을 한 직장에서 보냈다. 무엇을 하고 지냈는지보다 얼마나 가졌는지가 중요한 세상에서 버티며 사는 일이 얼마나 지치는지, 나는 매일매일 배우고 또 깨지고, 다시 일어서며 온몸으로 느끼고 있었다.
경력이 10년을 넘었어도 일할 때는 여전히 정신이 없었다. 그만큼 치열하게 살았다기보다는, 언제나 '조금이라도 뒤처지면 안 된다'는 강박이 나를 몰아붙였기 때문이었다. 매일 반복되는 일상과 끊임없는 긴장은 나를 조금씩 갉아먹었고, 어느 날 문득 거울을 보니 또래들보다 더 깊이 패인 주름살이 나를 응시하고 있었다.
나는 그 주름을 보며 스스로에게 말했다. ‘이게 내가 지나온 세월의 값이겠지.’ 그 말에는 위로와 체념이 반씩 섞여 있었다.
두 번째 아파트를 계약한 후에야 나는 비로소 자본주의의 규칙을 이해하기 시작했다.
‘돈이 돈을 만든다’는 말을 사람들은 가볍게 했지만, 나는 그 단순한 문장을 이해하는 데 30년이나 걸렸다.
은행과 세입자의 힘을 빌려 자산을 늘려가는 일은 마치 단단한 밧줄 위를 건너는 서커스 같았다. 언제 떨어질지 모르는데도 한 발 한 발 내디뎌야 했다. 그 위태로운 감각이 때로는 짜릿했고, 때로는 무서웠다. 나는 그 줄 위에서 늘 스스로에게 물었다.
‘나는 지금 현명한 선택을 하는 걸까, 아니면 그저 무모한 욕심을 부리는 걸까?’
하지만 묘한 건, 그 불안과 두려움을 넘었을 때 확실히 내 삶이 조금씩 나아지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이 확실함은 중독적이었다. 그래서 더 알고 싶었다. 더 잘하고 싶었다. 가난한 과거로 돌아가고 싶지 않았다.그 부족함을 채우기 위해 나는 틈만 나면 서점에 들렀다. 성공한 사람들이 쓴 책을 읽으면 마치 미래를 엿보는 느낌이었다. 그들의 이야기를 읽을 때면 내 심장은 이상하게 차분해지기도 하고, 또 한편으론 들끓기도 했다.
‘나도 이렇게 할 수 있을까?’
‘나도 이렇게 살고 싶다.’
그런 갈망이 배 속 깊은 곳에서 밀려 올라왔다. 서점의 풍경 또한 세월만큼 달라져 있었다.
2009년 첫 집을 살 때는 투자 관련 서적이 드물었는데, 2018년의 서점은 책장마다 투자 비법이 가득했다.
그리고 나는 깨달았다. 내가 헤매는 동안 누군가는 이미 '부'를 완성해 책으로 내고 있었다는 사실을.
‘가난하다면 목돈을 빨리 모아 과감하게 투자하라.’ 책들이 하는 말은 결국 동일했다. 방법만 조금 달랐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나는 왜 이렇게 늦게 깨달았을까? 왜 이렇게 늦게 배우기 시작했을까?’ 그리고 또 생각했다.
‘그래도 늦게라도 깨달은 게 다행 아닐까? 지금이라도.’
이런 생각을 하던 차에 어머니 건강검진 결과가 찾아왔다. 그 전화 한 통이 내 마음속 균형을 순식간에 무너뜨렸다. 동생의 떨리는 목소리가 귓가를 울렸다.
“형, 당장 집으로 와야 할 것 같아.” 심장이 불규칙하게 뛰기 시작했다. 나는 이유도 모른 채 단번에 직감했다.
‘아, 이번엔 정말 큰일이다.’
집으로 가는 길, 온갖 비극적인 장면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설마… 아니겠지… 그래도….’
하지만 긍정은 너무 미약했고, 불길한 예감이 짙게 드리웠다. 집 문을 열었을 때, 엄마의 꺼져가는 어깨와 동생의 초점 잃은 눈빛이 모든 것을 말해주고 있었다.
“형… 엄마 위암이래.” 그 순간 몸의 중심을 잃고 주저앉았다. 내 마음속 어디선가 오래전 아버지의 투병 시절이 돌덩이처럼 굴러 나왔다. 숨이 막혔다. 말이 나오지 않았다. 머릿속은 원망으로 가득차고 있었다.
‘왜 또…? 왜 하필…? 우리는 왜….’ 엄마는 늘 강한 사람이라고 믿었다.
희생을 당연하게 받아들이던 사람. 하지만 그 희생이 너무 오래 지속된 건 아닐까.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 엄마 얼굴을 보는데 감정이 쏟아져 나왔다. 그 사람은 평생을 두 아들에게 바쳤는데, 정작 우리가 그녀의 몸속에서 자라고 있던 병 하나를 알지도 막아내지도 못했다. 아빠도 떠난 이 세상에서, 부모에게 버림받았던 아픔을 간직한 그 사람에게 남은 건 우리 둘 뿐이었다.
‘엄마를 지켜줘야 하는 건 이제 우리인데… 우리는 도대체 뭘 하고 있었나.’ 그 죄책감은 가시처럼 마음에 박혔다. 암이라는 지독한 놈을 이미 경험했기에 희망은 가슴속에 피어날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수술 날, 중환자실의 희미한 불빛 아래 누워 있는 엄마를 보고 있자니 마음이 무너졌다.
‘엄마는 지금 얼마나 무서울까? 마취가 풀린 후의 고통은 얼마나 버거울까? 대신 아파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런 마음을 품고 엄마를 바라봤지만, 실제로는 아무것도 해줄 수 없었다. 그 무력감이 우리 형제를 작고 초라하게 만들었다. 수술은 생각보다는 길지 않았다. 하지만 마취에서 깨어난 엄마는 어금니를 물며 고통속에서 허우적 거리고 있었다. 위의 대부분을 절제했다. 절제에 대한 선택조차 엄마는 우리에게 의지했다. 그저 이 고통을 빨리 빠져나오고 싶다는 듯, 체념한 눈빛으로 우리의 말을 따랐다. 그래서 그런지 수술 후 엄마의 상태를 볼 때면 알 수 없는 후회가 밀려왔다. '만약'이라는 단어를 수 천번 말하면서 우리의 선택이 잘못된 것은 아니었는지 꿈속에서도 묻고 또 물었다.
회복 과정에서 엄마는 죽 몇 숟가락조차 넘기지 못했다. 그걸 바라보는 나와 동생은 밥을 먹을 수가 없었다. 엄마 한 숟가락은 우리의 마음을 조각 내는 칼날 같았다. 그런 엄마를 지켜보면서 깨달았다.
‘사람이 밥을 먹을 수 있다는 것은 얼마나 큰 축복인가.’ 그리고 ‘온전한 하루하루가 얼마나 소중한 시간인지.’
걱정하는 우리에게 의사는 언제나처럼 차가운 표정으로 시간이 지나면 괜찮아 질거라고 아주 성의없는 어조로 말하고 엄마를 퇴원시켰다. 돌봐줄 사람도 없는 연약한 여인을 그렇게 병원밖으로 밀어냈다.
엄마는 퇴원해서 집에 오자마자 서랍에서 보험 서류를 꺼내 내게 건넸다. 한 장 한 장 넘길수록 마음이 저려왔다. 아버지가 떠난 뒤, 엄마는 우리에게 짐이 될까 두려워 몰래 보험을 들어왔던 것이다.
‘우리 걱정 안 시키려고… 당신 혼자 어두운 미래를 상상하며.’
엄마는 내게 진단금이 얼마나 나올지 확인해 달라고 부탁했다. 아빠 때와는 다른게 보험은 생각보다 넉넉했다. 암 진단을 받기전에 가입한 보험이라서 모든 효력도 살아있었다. 내게 보험금이 1억 가까이 나온다는 사실을 듣자마자 엄마는 지금 살고 있는 엄마의 빌자 융자금을 모두 갚고 싶다고 했다.
이토록 슬픈 순간에도 나는 머릿속으로 ‘투자’라는 단어를 떠올렸다. 그리고 그 생각을 한 내 자신이 너무 부끄러워 얼굴이 화끈거렸다.
‘엄마의 목숨값도 나한테는 그냥 돈으로 보이는 건가…? 내가 언제 이렇게 속물이 되었지?’
마음속으로 스스로를 꾸짖었다. 그리고 조용히 말했다.
“엄마, 그렇게 해요. 다 갚아요.” 인생을 살면서 자기가 하고 싶은 것을 하고 산 적이 없는 그 인생이 안쓰러웠다. 내 머릿속에 굴러다니는 어떠한 생각도 말하기 싫었다. 그저 엄마가 원하는 것을 하게 도와주고 싶었다. 은행에서 담보액 전액 상환을 마치고 나오던 순간, 엄마의 표정은 잊을 수가 없다. 그 표정에는 두려움, 가난, 책임, 삶의 무게를 모두 내려놓은 사람만이 지을 수 있는 평화가 머물러 있었다.
그 얼굴을 보는 순간 나는 깨달았다. ‘돈보다 중요한 게 분명히 존재한다.’ 돈보다 중요한 것, 돈이 목적인 삶을 살아서는 안된다.
얼마 지나서 엄마는 우리 형제에게 선언하듯이 말을 했다. 다시 일을 하러 가겠다고. 그 이유를 아주 구체적으로 말하지 않았지만 무엇인지 알수 있었다. 바로 '국민연금 20만' 원 때문이었다.
나는 지금 이 순간에도 이런 것을 생각하는 엄마를 보며 울컥했지만, “집에 있으면 더 힘들다”는 말에 더는 반대할 수 없었다. 그 말 속에는 ‘나는 아직 살아 있고, 살아 있는 동안은 누군가에게 짐이 되고 싶지 않다’는 엄마의 마지막 자존심이 담겨 있었다.
동생은 한동안 방황했지만, 언젠나처럼 다시 일어섰다. 나는 동생을 보며 ‘우리 집안의 남자들은 왜 이렇게 아픔을 이기는 법을 스스로 배워야만 했을까.’라는 생각을 했다.
동생이 대학에 들어가고, 원무과에 취직하고, 각자의 자리에서 살아가는 동안… 나는 늘 마음속에서 이런 질문을 되뇌었다.
‘엄마를 더 잘 지킬 수는 없을까? 돈이 정말 이 모든 걸 해결해줄 수 있을까? 우리는 좋은 아들인가?’
하지만 결론은 늘 같았다. "아니, 아직 한참 부족했다." 더 많은 노력이 필요했다. 만약 내가 더 빨리 투자를 해서 돈을 더 많이 벌었다면 위를 절제한 엄마가 마트에서 일하게 두지는 않았을테니까.
그렇게 힘든 나날을 보내던 어느 날, 박 선배가 갑자기 찾아왔다. 한동안 서로에게 연락을 하지 못했다.
그는 나를 보자마자 욕을 섞어 말했다.
“미친놈.” 하지만 그의 목소리에는 애정이 섞여 있었다. 선배는 내 마음을 이미 다 알고 있었다.
그와 술잔을 앞에 두고 마주 앉자 여러 생각이 스쳐갔다. ‘여기 앉아 있는 나는 과연 잘 살고 있는 걸까?
선배는 지금 어떤 마음일까? 진짜 어른이 된다는 건 무엇일까?’
선배는 가족을 위해 다시 군복을 입었다고 했다. 계급이 낮아진 것을 아무렇지 않게 말했지만, 알고 있었다.
그 말 뒤에는 ‘가족만 행복하다면 나는 어떠한 희생을 해도 괜찮다’는 가장의 책임이 숨겨져 있었다.
그런 그를 보며 나는 깨달았다. 철없던 박선배는 어느새 어른이 되어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