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 아버지가 되기 전, 나는 아들이었다.

철없는 남자에서 가장이 되는 순간

by 고용환

아내의 예정일이 다가왔다. 긴장감이 맴돌았다. 살면서 아빠로 살아본 적이 없어서 두렵고 떨렸다. 내 몸 하나 챙기기도 힘든 세상을 겨우겨우 살아왔는데, 이제 누군가에게 든든한 방패와 안내자 역할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니 책임감이 나를 억눌렀다. 아내도 불안해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우리는 오랜 상의 끝에 딸이 태어나는 2018년 중순에 테슬라 주식을 샀다. 한 주에 30만 원이 조금 안 되었지만, 전기차가 대세가 될 때까지 꾸준히 모아 보기로 했다. 스마트폰이 시작될 때 애플을 떠올리며 새로운 세상에 배팅한 것이었다. 그렇게 미래를 꿈꾸며 아이가 세상으로 나오기를 기다리던 어느 날 아내에게 전화가 왔다.


“여보, 나….”


다급하게 아내를 데리고 병원에 갔고, 몇 시간에 걸친 진통이 이어졌다. 병원 복도는 유난히 길었다. 형광등 불빛은 차갑게 빛났고, 소독약 냄새가 코끝을 찔렀다. 시계 초침 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렸다. 그 소리는 시간을 알려 주기보다, 나를 재촉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아빠이자 남편으로서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그 사실이 나를 가장 괴롭혔다. 군복을 입고 있을 때는 늘 해야 할 일이 분명했는데, 이곳에서는 아무런 명령도, 역할도 없었다. 그저 침대 옆에 서서 아내의 손을 잡아 주는 것, 그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전부였다.


아내의 손은 축축하게 젖어 있었고, 힘이 들어갈 때마다 손가락이 내 손을 파고들었다. 그때마다 나는 더 세게 잡아 주었다. 놓치면 안 될 것 같았다. 손을 놓는 순간, 내가 이 자리에서 사라질 것만 같았다. 그때 문득, 아버지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버지는 이런 자리에서 어떤 얼굴을 하고 있었을까.'


아버지는 말이 많은 사람이 아니었다. 아픔을 설명하지도 않았고, 불안을 나누지도 않았다. 힘들다는 말을 입 밖으로 꺼내는 대신, 그저 묵묵히 하루를 버텨 내는 사람이었다. 어릴 적 내 기억 속 아버지는 늘 무언가를 참고 있는 사람이었다. 웃고 있어도, 그 웃음 뒤에 다른 무게가 있다는 걸 나중에서야 알았다.

그 시절의 아버지는 선택지가 많지 않았다. 먹고사는 일이 먼저였고, 가족을 먹여 살리는 것이 삶의 전부였다. 아버지에게 ‘꿈’은 사치였고, ‘불안’은 표현할 수 없는 감정이었다. 불안해할 시간에 몸을 더 써야 했고, 걱정할 여유가 있으면 일을 하나 더 해야 했다. 그런 아버지 앞에서 나는 철없이 자랐다.

아버지가 지켜 낸 안정 위에서, 아무것도 모른 채 컸다.


‘이 고통을 대신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아프지 말라고 말할 자격조차 나에게 있을까.’


아내는 숨을 몰아쉬며 고통을 견뎌 냈다. 얼굴은 점점 창백해졌고, 이마에는 땀이 맺혔다. 그 모습이 눈앞에 있는데도 아무것도 해 줄 수 없었다. 말로는 위로가 되지 않았고, 기도로도 시간이 줄어들지 않았다. 나는 그저 무력하게 서 있었다.


그 무력함 앞에서 다시 아버지가 떠올랐다. 아버지도 이런 순간들을 수없이 겪었을 것이다.

아무것도 해 줄 수 없는 자리에서, 책임만 커지는 순간들. 하지만 아버지는 그런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 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할 수 없었던 것에 가까웠다. 그 세대의 남자들은 약함을 말하는 법을 배우지 못했다. 참고 견디는 것이 미덕이었고, 무너지는 것은 책임을 저버리는 일처럼 여겨졌다. 하지만 나는 달랐다. 적어도 다르다고 믿고 싶었다.


나는 불안을 느꼈고, 그 불안을 인식하고 있었다. 아버지는 그저 견뎠고, 나는 계속 생각했다. 아버지는 침묵했고, 나는 모든 순간을 기록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 순간만큼은, 그 차이가 무의미해 보였다.

결국 같은 자리였다. 아무것도 할 수 없고, 그럼에도 반드시 버텨야 하는 자리.


시간은 느리게 흘렀다. 아니, 흐르지 않는 것 같았다. 초조한 10시간은 마치 하루처럼 길었다. 그 긴 시간 동안 나는 수없이 많은 생각을 했다. 지나온 시간들, 선택하지 못했던 길들, 지켜 주지 못했던 순간들. 그리고 아직 오지 않은 알 수 없는 미래.


‘내가 과연 이 아이를 지킬 수 있을까.’
‘나는 아빠가 될 자격이 있는 사람일까.’


아버지는 이런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졌을까. 아니면 질문조차 사치였을까. 어쩌면 아버지는 그저 아버지가 되었을 것이다. 묻지 않고, 따지지 않고, 선택의 여지없이.


마침내 적막 속에서 울음소리가 들렸다. 그 소리는 크지 않았지만, 병실 안의 공기를 단번에 바꾸어 놓았다. 세상이 잠깐 멈춘 것 같았다. 간호사의 손길이 분주해졌고, 누군가 “나왔어요”라고 말했다.


핏덩어리에 쪼글쪼글한 피부를 가진 작은 생명이 세상 밖으로 나왔다. 연약하고, 작고, 아직은 무엇 하나 스스로 할 수 없는 모습이었다. 그런데도 그 존재감은 압도적이었다. 그 순간, 이 병실 안에서 가장 약한 존재가 가장 강한 존재가 되었다.


간호사가 딸을 내 품에 안겨 주었다. 아이는 가벼웠다. 너무 가벼워서, 혹시 내가 잘못 안고 있는 건 아닐까 겁이 났다. 팔에 힘을 주는 것조차 조심스러웠다. 작은 숨결이 내 팔꿈치 근처에서 느껴졌다. 미세하게 오르내리는 가슴을 보자, 그제야 현실이라는 감각이 밀려왔다.


그 순간, 눈물이 쏟아졌다.

나는 처음으로, 아버지 세대가 왜 울지 않았는지 이해했다. 울면 무너질 것 같았을 것이다. 무너지면 다시 일어설 힘이 없을까 봐, 그 세대는 울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울 수 있었다. 울고도 다시 버텨야 하는 시대에 살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렇게 무거운 마음으로 평생을 사셨구나.’
‘이렇게 우리 아빠도 내가 태어났을 때 행복했겠구나.’
‘이렇게 연약한 나를 지키고 계셨구나.’
‘이렇게 철없는 아이를 어른으로 만들었구나.’


아이를 안고 있으니, 예행연습도 없이 바로 아버지가 되어 버렸다. 준비가 되었든 아니든 상관없이, 나는 이미 그 자리에 서 있었다. 아버지와 나는 다른 시대를 살았지만, 같은 자리를 건너고 있었다.


지켜야 할 사람이 생겼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삶의 무게는 충분히 설명되었다.


울고 있는 나를 보고 아내도 눈물을 흘렸다. 우리는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말이 필요 없는 순간이었다. 그저 서로를 바라보며, 같은 무게를 느끼고 있다는 것만으로 충분했다. 그렇게 한 아이의 아빠가 되었다.



하루하루가 지날수록 몰라보게 자라는 딸을 보면서 인생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구김 없이 밝고 희망으로 가득 찬 삶을 안겨 주고 싶은 마음이 나를 지배하기 시작했다.


‘무조건 가난이 아닌 희망을 주고 싶었다.’


돈이 없으면 얼마나 인생이 비참해지는지 충분히 알고 있었다. 지나간 시간을 추억이라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내게는 많은 부분이 흉터로 남았다. 그리고 다짐했다. 가난의 고리를 끊어 주겠다고. 매일 먹고 자고 울고 하는 딸을 앞에 두고 나는 아내에게 말했다.


“여보, 더 무리해서라도 투자를 해야 할 것 같아.”
“왜?”
“우리 딸이 너무 예뻐서. 그리고 고생하면서 살게 하고 싶지 않아서….”


아내는 슬픈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았지만 환하게 웃고 있었다. 신혼이고 아이가 태어나면서 소비 욕구가 절정에 달할 수 있었지만 우리는 그 유혹을 현명하게 뿌리쳤다. 어린 시절 아빠가 없는 형편에도 비싼 신발을 사 주었던 것처럼, 딸이 태어나고 처음에는 무조건 새것, 좋은 것, 비싼 것만 눈에 들어왔다. 심지어 평소 관심도 없던 유기농 식품까지 찾는 나를 보고 소름이 돋았다.


부모 마음은 다 똑같구나 싶었다. 이 세상 하나뿐인 내 분신에게 들어가는 그 어떤 것도 아깝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하지만 냉정해지기로 마음을 다잡았다. 지금보다 나중에 딸에게 더 든든한 방패가 되기 위해서 여전히 아끼고 아껴야 했다. 지금 딸에게 미안한 건 잠시지만, 나중에 가난으로 꿈조차 못 꾸게 되면 그건 평생 가슴에 한으로 남을 것만 같았다.


‘엄마 가슴에 내가 한으로 남은 것처럼….’


딸이 뒤집기를 하고 세상을 향해 힘차게 무릎으로 도약하며 기어 다니기 시작할 때부터 우리 부부는 담보대출 이자를 빼고 남는 돈에, 적금에 넣던 돈까지 모두 주식에 투자하기로 했다. 안전한 것을 선호하는 아내의 의견을 존중해 국내 우량주와 미국 ETF를 주로 매수했다. 그리고 매달 배당금을 주는 리얼티인컴도 일부 매수했다. 주식이라고 생각하지 말고 저축이라고 생각하자고 다짐했다. 폭락할 때 서로 마음을 잡아 주며 몇 달 동안 꾸준히 모으기 시작하니 상황은 긍정적으로 변하기 시작했다. 시간과 끈기로 승부하는 부동산 투자도 좋았지만 주식이라는 놈은 무엇인가 다른 매력이 있었다.


주식을 모으기 시작한 뒤로 우리 부부는 더 절약하기 시작했다. 예전에 주담대를 처음 받고 부담감 때문에 돈을 아꼈던 과거의 내 모습이 떠올랐다. 주식은 적은 금액으로도 매수가 가능해 조금만 돈이 모여도 한 주씩 모으는 재미가 있었다. 그나마 위안이 되었던 주식이 변동성이 심한 위험자산이라도 집이라는 안전 자산을 먼저 확보했기 때문이었다. 하루 아니 초 분 단위로 변하는 변동성에 정신을 붙잡기 위해서는 단단한 뿌리가 필요했다. 뿌리가 없으면 변동성이라는 태풍 속에서 흔들리다가 빈 몸으로 거지꼴이 되기 쉬운 무서운 곳이었다.

다행인 것은 주식 투자금을 늘리기 전에 매수해 둔 테슬라의 상승도 한몫을 했다. 엄청난 수익률을 보며 아내는 다른 주식이 떨어져도 마음을 안심할 수 있었다.


부동산 투자도 놓을 수가 없었다. 많은 거래 경험은 아니었지만 그동안 내 몸에 잔존하고 있는 습관들은 나를 움직이게 했다. 늦게 퇴근하는 밤에도 저가로 투자할 수 있는 지역이 있나 휴대폰으로 손품을 팔아가며 찾고 또 찾았다. 각종 부동산 규제의 물결이 다가오고 있었지만, 2009년과 비교하면 금리가 너무 낮아 매력적이라고 생각했다. 남들처럼 사고 싶은 거 사면서 살고 싶은 욕구를 억누르고 젊을 때 미래를 준비하자는 내 생각에 공감해 준 아내에게 그저 고마울 뿐이었다.


우리는 관사를 벗어날 돈이 없어서 남아 있는 것도 아니었고, 좋은 차를 살 돈이 없어서 안 산 것도 아니었다. 할 수 있는데 자유의지로 안 한 것이었다.


살면서 '못 하는 것'과 '안 하는 것'의 차이를 깨닫는 데 오래 걸리지는 않았다. 고등학교를 자퇴해서 사회생활을 할 때 못 하는 것들이 넘쳐났다. 그런데 나랏돈을 받으며 종잣돈을 모으다 보니 못 하는 것보다는 내 의지에 따라 안 하는 것들이 반대로 늘어나기 시작했다. 정말 필요할 때 해야 할 것들을 못 할 때 고통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이 컸다. 안타깝게도 나는 그것을 부모님을 통해서 배웠다. 나이 들고 나중에 병들어 자식들에게 신세가 될까 두려워하는 그 마음을 지켜보는 것은 부모님만큼이나 나에게도 지옥처럼 힘든 일이었다.


딸이 태어나면서 그동안 어려운 수학 문제처럼 풀리지 않았던 모든 문제의 정답이 보이기 시작했다. 왜 그토록 힘들게 자신의 모든 것을 포기해 가면서까지 버티고 미련하게 어른들이 사는지 이해가 되기 시작했다.

박 선배를 보면서도 느꼈지만 진정한 마음을 헤아릴 수 없었다. 하지만 딸을 보니 부모 마음이 어떤 마음인지 누가 알려 주지 않아도 깨닫게 되었다.


부대를 옮기기 전 인사과에서 근무하면서 사십 대를 넘긴 선배들이 근무 여건이 좋지 않은 곳으로 가지 않기 위해 비굴할 정도로 애쓰는 모습을 보면서 이해를 못 했다. 실무자로서 어떨 때는 매정하게 굴 때도 많았다.


“담당관, 어떻게 좀 더 남을 수 있을까요?”
“규정상 가셔야 합니다. 제가 어떻게 해 드릴 수 없습니다.”
“그래도…. 뭐가 없을까요?”
“왜 그러십니까? 무슨 일 있으십니까?”
“아니야. 우리 애들은…. 아니다…. 고생해… 담당관.” 철없던 나는 박 선배와 술을 먹으며 내게 찾아왔던 그 선배에 대해 뒷 이야기를 했다.


“선배, 때가 됐는데 왜 남으려고 하지? 난 이해가 안 가….”
“실무자가 그러면 되냐? 다 품어 줘야지….”
“아니, 내가 뭐 힘이 있는 것도 아니고 이건 정해진 룰이잖아.”
“그래 룰이지. 근데 그게 나도 첫째 태어나니까 느껴지더라…. 아직 말도 못 하는 애를 보면서 어떻게 하면 더 좋은 곳에 있게 해 줄까, 그 생각만 하면서 머리 굴리고 또 굴리고 그랬어. 강원도 산골짜기는 좀 그렇잖아.”
“뭐…. 선배는 떠나려면 한참 남았으면서….”
“그러니까. 그냥 한 번 알아봐 드리겠습니다. 힘내십시오! 이렇게 커피 타 드리면 말하면 얼마나 좋냐… 넌 차가워.”
“그렇게 말하면 기대할 것 아니야.”
“멍청이냐. 야, 군 생활 20년 넘게 하셨는데 끌려가는 거 모르겠냐. 그런데도 애들한테 미안하니까 안 되는 거 알면서도 존심 구겨 가며 한 번 물어보는 거 아니야.”
“아…. 모르겠어.”
“너도 참…. 그래서 결혼하고 새끼 낳아야 어른이 된다고 하는 거야. 나중에 너도 알 거다. 그 사람들 마음을. 아마 너는 아마 선배들보다 더 할 거다. ”


그렇게 매정했던 내가 지방에서 태어난 딸을 보며 어떻게 하면 더 좋은 곳에서 자라게 할 수 있을지 생각하게 되었다. 분수에 넘치는, 맞지도 않는 유학까지 떠나며 자기만족을 위해 나만을 위해 공부했던 이기적인 나는 아이의 탄생과 함께 죽어 버렸다. 내 인생의 우선순위가 딸이 되어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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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 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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