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 괜찮다고 말하는 연습

살아남기 위해 아파트를 샀다.

by 고용환

“이거 뭐야? 집이 두 개야? 관사 말고 ‘자가’ 말하는 건데?”
“아…. 네. 제 이름으로 아파트 두 채 소유하고 있습니다.”
“뭐야, 뭐야. 뭐 무소유 부처님처럼 대화할 때 가만히 있더니 완전 투기꾼이었어?”
“아닙니다. 오래전에 산 거고 다 대출입니다.”
“그래. 그러니까 다주택자 투기꾼. 맞네.”


선배와의 악연은 그때부터 시작된 것 같다. 동그란 안경을 안으로 째려보는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며 나에 대한 색안경을 끼기 시작했다. 나에게 배신감이 든다며 공식적인 자리에서 집 이야기만 나오면 내 이야기를 끄집어냈다.


“고 상사 있잖아. 부자야. 부자! 차는 쓰러져 가는 거 타고 겉모습도 찌질하게 하고 다니는데 사실 아파트가 두 개나 있더라고. 둘 다 월세면 한 달에 추가 수입이 얼마야, 얼마?”


이런 말들을 내 앞에서도 계속했다. 조직 생활에서 큰 오점을 남긴 것만 같아 불편했다. 나중에 소주 한잔하면서 오해를 풀려고 했지만 이미 선배에게 나는 ‘가진 자’고 본인은 ‘갖지 못한 자’라는 프레임 속에 넣어 둔 상태였다. 공기를 타고 떠다니는 말은 사람들 귓속에 작은 문을 두드렸고, 그 말을 들은 사람들은 내게 찾아와 종종 부동산에 대해 물었다. 아는 것이 없다고 하면 겸손 떠는 거라고 하고, 어설프게 한마디 하면 잘난 척한다고 할 것이 뻔했다. 끝없는 말장난이 될 것을 알기에 입을 다물었다. 장난 삼아서 중대장이 던지는 말도 듣기 싫었다.


“한 주간 고생하셨습니다. 월요일에 뵙겠습니다.”
“고 상사, 다른 지역으로 휴가 안 내고 임장 하러 가면 안 되는 거 알지?”
“네? 어디 안 갑니다. 수고하셨습니다.”


이런 불편함은 몇 달 동안 계속되었다. 하지만 견딜 수 있었다. 조금만 버티면 딴 데로 간다는 것이 위안이었다. 군대의 인력 순환은 기본 2년 주기로 빠르게 움직였다. 좋은 사람을 만나면 헤어지는 것이 아쉬웠다. 반대로 쓰레기를 만나도 조금만 참으면 벗어날 수 있었다. 15년 차 군인답게 넘기고 아무 일도 아닌 거라고 시간이 지나면 잡음이 사라지고 사람들은 그래왔던 것처럼 잊을 거라고 생각하며 지냈다.


오해를 받으며 일하다 보니 시간이 더 빠르게 흘러갔다. 검사 결과 확인을 위해 다시 휴가를 내서 엄마와 함께 병원으로 갔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우리 가족들은 모두 숨죽여 대기 순번만 기다렸다. ‘딩동’ 소리와 함께 210번 빨간색 글자가 보였다. 동생과 함께 엄마의 작은 손을 양쪽에서 잡고 진료실로 향했다.


“앉으세요.”
“선생님, 괜찮은 거죠?”
“네, 괜찮아요. 식사 많이 하시고요. 좋은 곳 많이 다니시고요. 두 아들이 있어서 듬직하시겠어요.”
“감사합니다.” 엄마는 우리가 있어서 정말 든든하다는 듯 목소리에 힘을 주어 이야기했다.


“어머니 잠시 동생분이 모시고 나가시고 형님분이랑 잠시 이야기 좀 나눌 수 있을까요?” 선생님의 말에 나도 모르게 긴장을 했다. 좋은 이야기라면 엄마 앞에서 할 것이 뻔했다.
“형, 나가 있을게.” 동생의 목소리는 불안함에 떨고 있었다.

“혹시 어머니 가족분 중에….”


선생님은 말을 끝맺지 못하고 흐렸다. 이런 식의 대화는 끝이 언제나 좋지 않았다. 나는 무릎 위에 주먹을 말아 쥐었다.


“무슨 일 있나요?”
“그게요. 어머니 유전성 치매입니다.”
“치매요? 무슨 말씀을 하세요. 검사 결과 보러 왔는데….”
“이번에 다 했는데…. 이것 좀 보세요.”


의사가 아닌 내가 봐도, 아니 네 살짜리 어린아이가 봐도 한눈에 알 수 있을 정도로 정상이 아닌 MRI 사진이었다.


“보이시죠. 여기 전두엽 쪽이 검은색으로 된 거…. 자세한 것은 전공의 선생님께 들으셔야 하겠지만, 제가 미리 확인했는데 급성 전두엽 치매라고 합니다.”
“멀쩡한데…. 무슨 말씀을 그렇게 하나요? 오진 아닌가요? 아니면 사진이 다른 사람 것이라든가요.”
“저희도 너도 어머니가 연세도 젊으시고 해서 몇 번이나 확인했는데….”
“죄송한데…. 다른 병원 가봐야겠네요. 실례하겠습니다.”


예의 없게 문을 닫고 나오자마자 바로 주저앉아 버렸다. 상상도 하지 못했던 진단을 받으니 현실을 부정하고 싶었다. 하지만 의사의 눈빛에는 진심과 동정이 동시에 담겨 있었다. 주저앉아 있으니 뭔가 이상했는지 동생이 진료실 쪽으로 빠르게 다가왔다.


“형…. 뭐 해?”
“어…. 아니야…. 아니야….”
“뭔 일 있지? 뭐야? 뭐야!”
“일단 가자. 나중에 이야기해 줄게….” 입이 떨어지지 않아서 그래서 다급하게 묻는 동생에게 아무런 말을 할 수 없었다. 부정하고 있는 나 자신을 그리고 또 다른 고난의 그림자가 엄마에게 다가오는 것이 너무 짜증 나고 화가 났다.


눈물도 나지 않았다. 너무 당황스럽고 황당해서 그런지 아무런 감정도 느껴지지 않았다. 하지만 머릿속에는 온통 ‘치매’라는 단어만 맴돌았다. 이렇게 젊은데 치매라니…. 아무래도 오진이 맞다고 넘겨버리고 싶었다. 엄마에게 내색하지 않으려고 집에 오는 동안 쓸데없는 아파트와 주식 이야기를 하면서 스스로 감정을 억눌렀다. 뒷좌석에 앉은 엄마를 보면 핸들을 놓아버릴 것만 같았다. 저녁이 돼서 멍하게 연속극을 보는 엄마를 두고 동생과 함께 밖으로 나왔다.


“엄마, 맥주 한잔하고 올게.”
“어…. 어….”


동네에서 가장 조용하고 어두운 술집으로 향했다.


“왜? 쪼그리고 있었냐니까?”
“일단 술 먹자.”
“아, 답답하네. 의사가 뭐라는데?”


입술을 누군가 본드로 붙여놓은 것처럼 열리지 않았다. 답답해하는 동생을 앞에 두고 목구멍에 소주만 계속 처넣었다. 고통이 소주와 함께 내 몸속으로 흘러내려가는 것 같았다.


“준아…. 엄마 치매일지도…. 아니, 치매래….”


동생의 눈은 한순간에 초점을 잃어버렸다. 그리고 아무 말도, 아무 질문도 내게 하지 않았다. MRI 사진을 본 것부터 의사가 어떤 이야기를 했는지 차분히 설명했다. 부정하고 있었지만 사실 받아들이고 있었다. 이 모든 일이 현실이라는 것을 나는 동물적인 감각으로 받아들였다. 동생도 벗어날 수 없는 상황에서 도망치지 않는 듯했다. 잠시 시선을 피하고 경치라고 할 것도 없는 가게 앞 쓰레기 더미를 주시하며 조용히 눈물을 흘렸다.


“혹시 모르니까 더 큰 병원 가보자.”
“형이 봤다면서…. MRI. 형이 봐도 검은색 부분이 다른 곳이랑 비교될 정도로 달랐다면서….”


동생은 평정심을 유지하고 있었다. 오랜 시간 우리 가족이 겪어 온 일들이 어린 동생을 강하게 만든 것이 분명했다. 하지만 강해졌다고 슬픔이 사라지는 건 아니었다. 슬픔의 표현조차 사치가 되어버린, 그 시간조차 우리에게는 아까웠다.


“어…. 그렇더라. 그렇게 검게 나와 있더라.”

“여기도 대학병원인데 사람을 오진할 확률은 거의 없지…. 전화로도 몇 번이나 말했잖아 엄마가 이상하다고.... 엄마가 이상하다고..”


아빠를 보내고 말도 안 되는 암 수술로 위를 절제한 후 엄마는 정년이 되어 일까지 그만두었다. 그 후로 멍하게 텔레비전만 본다고 동생이 내게 걱정하며 말하곤 했다. 그냥 너무 힘든 일이 한 번에 몰려와서 그런 거라고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하지만 확실히 예전의 엄마가 아닌 듯했다. 손녀가 태어난 후 전화해도 내게 별 말이 말이 없었다. 흔하디 흔한 안부를 묻고 나면 더 이상의 대화는 이어지지 않았다. 그냥 피곤하고 지쳐서, 아니면 고생하는 아들을 배려해서 그러는 줄만 알았다. 그런데 모든 퍼즐 조각이 맞춰지고 나니 이해가 되었다.


동생은 몰라도 엄마와 나는 정말 많은 대화를 했다. 가끔 엄마와 통화를 하면 보통 한 시간 넘게 핸드폰이 뜨거워질 때까지 수다를 떨곤 했다. 아빠 이야기, 동생 이야기, 직장 이야기 그리고 사는 이야기 등 끝도 없이 수화기 너머로 이야기가 오고 갔다. 엄마와 통화하는 게 언제나 좋았다. 엄마도 다 큰 아들 녀석이랑 이렇게 통화를 오래 하는 것을 주변에 자랑하곤 했다. 그래서 나는 세상에서 엄마를 가장 잘 안다고 자부했었다. 하지만 전두엽의 뇌세포가 다 죽어 검은색이 되도록 눈치도 못 채고 있었다는 게 너무나 한심스러웠다. 뭐 그리 대단한 일을 하며 산다고 엄마를 위한 시간을 내지 못하고 살았을까….


아마 엄마는 내게, 그리고 동생에게 작고 큰 신호를 계속 보냈었는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아내에게 전화해서 말을 전하는데 그때가 돼서야 참았던 눈물이 뺨을 타고 흘렀다. 아내는 계속 아닐 거라고 위로했지만 아무런 위로가 되지 않았다. 그렇게 그날 밤 동생과 함께 울었다. 서울 구석, 어쩌면 경기도와 더 가까운 무늬만 서울인 연립주택으로 가득한 골목길 작은 술집 앞에서 우리는 그렇게 울고 또 울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동생과 유명한 병원도 찾았다. 엄마는 다시 검사하는 것에 불안해서 떨고 있었다. 애써 다른 말로 둘러대며 검사를 마쳤다. 기다리는 시간은 지옥과도 같았다. 속사정도 모르고 일터에서는 다주택자 소문을 포함해서 나를 괴롭혔고 일은 산더미처럼 늘어났다. 무언가 하나를 풀면 다시 꼬여 버리는 끝도 없이 엉켜 버린 인생이 원망스러웠다. 불행한 인생은 잠시의 여유조차 허락되지 않았다. 차라리 돈이라도 엄청나게 많아서 이런 상황에 다른 것은 하나도 신경 안 쓰고 살고 싶다는 생각이 온 머릿속을 지배했다.


아내는 어두운 표정으로 집을 나가서 더 어두운 표정으로 들어오는 나를 보며 어떠한 표현도 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 고통과 걱정은 내게 고스란히 전달되었다. 아내는 조용히 옆에서 나를 지켜봐 주었다. 아빠가 어떤 심정인지도 모른 채 앞으로 장밋빛 인생에 대한 확신의 미소를 짓는 딸을 보면서 나약해지고 초라해지는 내 모습이 무서웠다.


“여보….”
“응? 말해도 돼. 어떤 말이라도.”
“평택 있잖아….”
“아파트? 지금 아파트 이야기하는 거야?”
“어….”
“아니 어머니 이야기하려는 거 아니었어? 이 상황에 왜 그래?”
“어…. 엄마 이야기하는 거야. 당신한테….”
“평택이라며….”
“어…. 더 위험하게 살아야겠어. 부족해. 한참 부족해.”
“뭐가 부족해. 대체…. 무슨 말하는 거야!”
“지금 우리가 가진 걸로는 부족해. 앞으로 어떤 일이 벌어질지 무서워. 더 무서운 건 내가 생각하는 최악의 상황에 돈 때문에 우리가 모두 힘들어질 것 같다는 두려움이야.”
“아직 초기라면서…. 시간이 있잖아. 그리고 지금은 투자가 아니고 더 현실적인 걸 생각해야지…. 조금 실망이네…. 당신한테….”
“그래, 현실을 이야기하자는 거야…. 현실을….”


나는 그 말을 남기고 어이없어하는 아내를 뒤로한 채 말없이 현관문을 열고 밖으로 나왔다. 아내는 메시지를 보내다 읽씹을 당하자 전화를 걸기 시작했다. 하지만 받지 않았다. 그냥 걷고 또 걸었다. 얼마나 당황했을지 이해는 되었다. 이런 상황에 갭 투자 이야기를 하는 남편이 충격 때문에 미쳤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하지만 정신은 너무나 멀쩡했다. 그래서 그런 이야기를 했다.

아무리 열심히 저축하고 일해도 벗어나기 힘든 지옥의 굴레 속 삶을 살면서 감당하지 못할 일이 생기면 의지할 곳은 한 군데뿐이었다. 바로 돈이었다.


겸직도 안 되고 몸도 자유롭지 못한 군복 속의 삶에서 기댈 곳은 오로지 돈 뿐이었다. 그래서 투자 이야기를 했다. 엄마를 보니 시간이 얼마 안 남았다는 것을 직감적으로 알 수 있었다. 한참을 걷다가 집에 돌아오니 아내는 잠에서 깬 아이를 달래고 있었다. 나는 조용히 아내 옆으로 가서 딸아이와 아내를 껴안았다.


“미안해…. 근데 이 모든 걸 지키기 위해서야. 한 번만 이해해 줘.”


조용히 울고 있는 나를 보고 아내도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 울고 있는 아빠와 엄마를 보고 딸도 슬펐는지 갑자기 울음을 터뜨렸다. 한참을 그렇게 우리는 서로를 껴안고 울었다.


“자기야…. 우리 딸이 우리를 닮긴 닮았네. 그리고 효녀인가 봐. 아빠, 엄마 걱정돼서 같이 울어 주고. 하고 싶은 대로 해. 난 당신 믿으니까.”


얼마 지나지 않아 지제역에서 조금 더 가까운 곳에 분양한 아파트 중에서 그나마 역과 가깝고 BRT 노선을 이용할 수 있는 단지를 찾았다. 퇴근하고 주변 부동산 리스트를 뽑고 점심시간이 되면 부동산에 전화를 돌리기 시작했다.


“사장님, 분양권 찾고 있는데요. 프리미엄은 천만 원 정도 생각하는데 층은 10층 이상이고요. 연락 좀 주세요.”


이런 전화와 문자를 수십 개씩 돌리고 기다렸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 뒷좌석에 아내와 아이를 태우고 평택으로 향했다.


“이렇게까지 무리해서 가야 해?”
“드라이브하고 생각도 정리하고 좋잖아….”
“그래도 평일 퇴근 시간에 거길 왜 보려고 해. 그것도 어두운 저녁에.”
“집 사면서 실수했던 것들 말해 줬잖아. 이번에는 실수하고 싶지 않아. 생존이 걸린 문제야.”



현장을 가서 지어지고 있는 아파트 현장을 확인했다. 동별 위치를 확인하고 아직 올라가지도 않은 아파트를 머릿속으로 상상하며 노트에 그렸다. 어떤 아파트 분양권을 매수해야 할지 노트에 적으면서 분석했다. 유모차에 아이를 태운 아내는 아무 말 없이 나를 따라다녔다.


“자기…. 뭐 전문가 같아 보이네. 뭘 그리 적고 그래?”
“그냥 쓸데없는 건데, 그래도 불안해서….”


저녁 퇴근 시간이 되니 안쪽으로 퇴근하는 차들이 아직 엉망인 흙먼지 날리는 도로를 따라 끝도 없이 밀려 들어왔다. 유심히 차종도 살펴보고, 대형마트에서 나오는 사람들의 복장과 분위기도 살펴봤다. 한 번에 남들보다 많은 돈을 벌 수는 없지만, 남들만큼은 벌고 싶었다. 김포 신도시 아파트가 외곽에 입지도 안 좋다 보니 비슷한 연식의 아파트와 비교할 때 크게는 2억 정도 차이가 났다. 위안이라면 1억 정도 차익이 난 상태였지만, 역시나 배가 너무도 아팠다. 아무리 생각해도 몇 분 차이도 안 나는 작은 신도시인데 이렇게 소외당하는 게 억울했다. 하지만 작은 신도시라고 그 차이를 무시한 나를 원망해야만 했다. 그래서 그 작은 차이를 좁히기 위해서 그동안 많은 공부를 했다. 남들이 정말 살고 싶고 나도 정말 살고 싶은 집을 찾기 위해서 손품과 발품을 팔았다.


3시간가량 지칠 줄 모르고 돌아보는 나를 말없이 따라다니던 아내는 조용히 내게 한마디 던졌다.


“지금 출발해도 도착하면 12시가 넘어. 자기 내일 출근도 해야 하잖아….”
“벌써 시간이 그렇게 됐어? 가자. 미안해.”


차 안에서 아내와 딸은 교대로 코를 골아 가며 바로 잠이 들어버렸다. 괜히 미안한 마음이 몰려왔다. 이렇게까지 해야 하는지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졌다. 만약 엄마가 의사 말대로 몇 년 후 시설에 가야만 한다면 병원비를 포함해서 걱정할 것이 한두 개가 아니었다. 어느덧 서른 대가 돼 버린 동생도 앞으로 결혼해야 하고, 15년 직장 생활을 했지만 월급은 고작 200만 원 후반대에 아이가 크면 돈 나갈 일만 남아 있었다. 내 능력만으로는 앞으로의 상황을 절대 감당할 수 없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그리고 부동산 정책이 어디로 튈지 몰라서 불안했다. 지금이라도 잡아 둬야 뭐든 버틸 수 있을 것만 같았다. 불길한 예감이 두려워 떨게 했다.


엄마의 검사 결과가 나왔다는 연락을 받고 동생과 함께 병원에 갔다. 기대와 달리 결과는 똑같았다. 치매 관련 인지 검사를 받아보라고 하며 치매 환자로 분류될 테니 검사비는 감액된다고 했다. 하얀 가운을 입고 냉정하게 말하는 의사가 그냥 미울 뿐이었다. 유전성 전두엽 치매라서 급격하게 증상이 나빠진다고 말하며 약물 처방을 좀 세게 해 줄 테니 상태를 지켜보자고 했다.


한참 의사의 설명을 듣고 상담이 끝날 무렵 동생은 그동안 궁금했던 것들에 대해 질문을 했다. 그리고 치매 검사 일정을 잡고 진료실을 나가려고 하는데 의사가 작은 목소리로 우리에게 말했다.


“이건 바로 답변 안 주셔도 되는데요…. 혹시 뇌 기증도 한 번 고려해 봐 주셨으면 해서요. 연구….”
“미친 새끼야!”


동생은 이성을 잃어버렸다. 의사의 말에 나도 당황했지만, 동생은 듣자마자 욕을 퍼부었다. 예상이라도 했다는 듯 고개를 숙이고 욕설을 가만히 들으면서 아무런 대꾸나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결국 분노한 동생은 간호사와 나에 의해 끌려 나왔다.


“진정해…. 왜 그래.”
“형…. 들었잖아. 뭐? 기증? 미친 거 아니야….”
“의사도 직업이잖아…. 기증 안 하면 되는데 왜 화를 내. 그냥 참자….”
“아…. 아! 아! 정말 이 미친 인생. 짜증 나, 정말….”
“그래…. 그래…. 가자.”


병원에서 일하는 동생은 간호조무사를 거쳐 원무과에 취직해 적응했지만, 언제나 한참 위에서 내려다보듯 높은 위치에 있는 의사나 간호사를 부러워하고 때로는 미워했다. 조무사로 수술방에서 좋지 않은 경험을 하고 다시 시작한 원무과 일은 처음엔 깔끔했지만 몇 달이 지나니 현실이 다시 문을 두드렸다.


“왜? 일이 힘들어?”
“아니야…. 뭐 수술방에 비하면 깔끔하지.”
“근데 왜 표정이 그러냐? 도살장 가는 새끼처럼….”
“형 있잖아. 원무과에 가도 뭐 밑바닥은 밑바닥인가 봐.”
“당연한 거 아니야? 원무과 가면 네가 높아질 거라고 생각했어?”
“그래도 전문대 졸업이니까…. 좀 더 나을 줄 알았는데 잘 모르겠어.”
“우리 솔직해지자. 그냥 네가 노력 안 하고 게을러서 이렇게 산다고 인정하면 돼.”

위로받으려고 한 말에 형에게까지 한 소리를 듣자 기분이 상했다는 눈빛으로 나를 쳐다봤다. 하지만 언제나 달콤한 말만 해 줄 수는 없었다. 이런 채찍도 가슴 아프지만 내 역할이었다. 상처가 아물고 동생이 단단해지길 바라는 마음에 더 직설적으로 이야기했다.


“일도 별로 안 하는데 돈은 정말 많이 받고….”
“당연한 거 아니야? 학생 때 놀고 싶은 거 참아 가며 공부한 시간에 대한 보상이잖아. 그때 너는 뭐 했는데?”
“부모 잘 만났겠지. 난 집에 거의 혼자 있었어. 중고등학교 때.”
“누가 너한테 공부하지 말라고 했냐? 그 누구도 그런 말 안 했잖아. 형이 자퇴하고 개고생 하면서 친구들 부러워서 깡소주 마시던 거 기억나? 웃긴 게, 엄마 아빠는 공부하지 말고 일하라고 한 적이 없더라.”
“아 몰라. 가난했던 게 영향을 미친 건 사실이잖아. 듣고 싶지 않아.”
“너만 그런 줄 아냐. 형도 위에 장교 있어. 고졸과 대졸의 차이를 15년 넘게 매일 느끼며 살고 있다. 푸념할 시간에 버티는 거야.”


동생은 지쳐 있었다. 열심히 한다고 더 좋은 미래가 보장되지 않는다는 현실을 알아버린 어른이 된 것이었다.

병원에서 집으로 돌아오는 길, 차 안에서 우리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모든 게 막막했다. 3년 정도가 지나면 얼굴도 못 알아보고 완전히 심한 상태가 될 거라고 의사는 말했다. 지금은 말수가 줄고 텔레비전만 보지만 앞날은 상상조차 하기 싫었다. 아니, 믿고 싶지 않았다. 집에 거의 도착했을 무렵 동생에게 입을 열었다.


“형, 무리해서라도 갭 투자한다고 형수한테 말했다.”
“어? 지금 이 상황에?”
“지금 이 상황이라서 하는 거야.”
“어디? 평택?”
“응. 이번엔 실수 안 하고 한 번에 가려고.”
“너무 무리하지 마. 나도 돈 보탤 수 있으니까 혼자 다 짊어지지 마.”
“말이라도 고맙다.”


집에 도착하니 엄마는 웃으면서 OCN 영화를 보고 있었다. 벌써 일주일째 같은 영화를 보며 매번 웃고 있었다.


“엄마…. 오랜만에 극장 갈까? 셋이 같이?”


그날 저녁 우리는 엄마의 양손을 잡고 극장으로 향했다. 불안한 마음으로 영화를 봤고, 결국 집에 돌아와 엄마를 재우고 다시 밖으로 나왔다.


“형…. 엄마 생각보다 많이 아픈 것 같아.”
“마음 단단히 먹자. 시간 많지 않은 것 같다.”
“불쌍하다…. 정말. 우리 엄마.”
“괜찮아. 엄마한테는 우리가 있잖아. 괜찮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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