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 살아남기 위해 아파트를 샀다.

가장을 무너지게 하는 것들

by 고용환

떨어지지 않는 발을 억지로 떼서 다시 집으로 내려왔다. 언제나 그러듯이 1층까지 내려와서 동생이랑 같이 손을 흔드는 엄마의 얼굴이 운전하는 동안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부동산 전화를 기다리며 일했는데 연락은 오지 않았다.


'프리미엄이 너무 적었나?'

'이러다 좋은 거 다 놓치는 건 아닐까?'


그 질문은 단순히 돈의 문제가 아니었다. 내가 늦어서, 내가 망설여서 또 한 번 가족을 지키지 못하는 건 아닐지 두려운 마음이었다. 기다리는 전화 한 통이 마치 생명줄처럼 느껴졌다. 2019년 집값은 조금씩 오르고 있었다. 하지만 김포는 뜨겁지 않았다. 그래서 마음이 아프고 더 조급했다. 앱으로 평택 아파트 시세를 조회하니 프리미엄 2천만 원이 넘는 매물들이 눈에 들어왔다.


'가격을 올려야 하나?' 고민하면서 며칠을 끙끙 앓았다. 같이 일하는 사람들이나 뉴스에서는 집으로 돈을 많이 번 사람들을 욕했다. '불로소득'이라면서 손가락질했다. 하지만 집 한 채를 사는 데 마음고생하고, 발품과 손품 그리고 막대한 시간을 투자하는 과정을 몇 번 경험한 나로서는 당연한 권리라고 느껴졌다.


오히려 회사에서 직급이 오르고 지위가 높아진 후 아랫사람에게 일을 떠넘기고 숨만 쉬는 사람들이 불로소득자처럼 느껴졌다. 일터나 투자나 자식 노릇이나 뭐 하나 쉬운 게 없었다. 투자는 겉보기에 더럽지도 않은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바싹바싹 피가 말랐다.


물론 너무 가진 게 너무 많아서 어떤 것을 사든 걱정 없고, 악재도 우습게 버티는 사람들에게는 쉬운 일이 맞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아니었다. 그들은 든든한 방패와 날이 선 칼을 가지고 자본주의 전쟁터에서 태어났다. 그런 이들에게는 맨몸으로 태어나 바둥거리는 누군가를 만난다고 해도 위협이 되지 않았다. 경쟁에서 승리하는 것은 숨 쉬는 것보다 쉬웠다.


방패도 변변한 갑옷도 없이 다 썩어가는 무기 하나 가지고 전쟁터에 나가는 사람들은 몇 번을 살아 돌아와도 여전히 두려움에 떨고 있었다. 마치 잠시 한눈팔면 다시는 사랑하는 가족의 품으로 가지 못하고 싸늘한 시체가 된다는 걸. 그 싸늘한 시체는 실패한 투자자가 아니라, 가족을 지키지 못한 가장의 모습이었다. 나의 두려움은 돈을 잃는 공포가 아니라, 사랑하는 사람들 앞에서 무력해지는 순간에 대한 공포였다.


우울하고 어두운 시간은 계속되었다. 결국 엄마는 치매 진단을 받았다. 엄마는 부정하고 있었지만, 행동의 변화는 너무나도 빨랐다. 그렇게 몇 주 간 고통의 시간 속에서 일을 하던 내게 전화가 한 통이 왔다.


“혹시 1천5백만 원은 가능하실까요?” 부동산 사장님의 목소리는 진지했다.


나는 한 번에 거절하기보다는 동과 호수를 받고 위치부터 확인했다. 임장을 몇 번 다녀온 터라 머릿속에 어딘지 그림이 그려졌다. 단지 내에 초등학교 바로 앞에 가장 가까운 동이었다. 16층으로 층도 나쁘지 않았다. 확정은 아니지만 예정된 BTR 정류장도 바로 앞에 있었다. 무엇보다 영구뷰라서 더 좋아 보였다. 단지 앞 공터는 단독주택 건물이 들어오기로 계획되어 있어서 저 끝까지 보이는 전망을 가질 수 있었다.


나는 장단점을 하나씩 빠르게 적고 다시 부동산에 전화했다. 그리고 계약금을 입금했다. 송금 버튼을 누르는 손끝이 묘하게 차가웠다. 완료 문자가 도착했을 때 안도감보다 먼저 밀려온 건 책임감이었다. 이제는 물러설 수 없다는 묵직한 현실이 가슴을 눌렀다.


“여보, 나 분양권 계약금 입금했어.” 아내에게 짧은 문자를 보내고 분양권 매수를 위한 약속 날짜를 잡았다. 평택은 비규제 지역으로 취득세나 거주의무에 대해 고민도 필요가 없었다. 프리미엄을 준다고 해도 2억 중반대 매수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가 분명했다. 미래 가치는 여전히 높아 보였다. 문제는 완공된 후 세입자를 구하는 부분인데 김포 경험을 바탕으로 어떻게든 구할 수 있을 거라는 확신이 들었다.


뭐든지 처음이 무섭고 두렵다. 하지만 익숙해지면 두려움은 점점 익숙해진다. 오히려 침착해진다. 들뜨거나 설레는 감정은 한순간에 느끼는 희열로 냉정함을 유지할 수 있었다. 계약금을 넣고 동생에게 전화해 시간을 비우라고 했다. 처음에는 옆에 데리고 다니다 보면 빨리 자본주의를 이해하지 않을까 해서 데리고 다녔다. 그런 노력과 관심을 아는지 다행히 지금은 나만큼이나 부동산에 관심이 가지게 되었다. 그 모습을 볼 때면 항상 흐뭇했다.

계약 당일 조금 서둘러서 아내와 아이를 데리고 평택으로 향했다. 동생은 우리보다 조금 먼저 도착한 듯했다. 여유 있게 도착한 우리는 커피 한 잔을 앞에 두고 자연스러운 대화를 시작했다.


“형, 이번에는 투자금 얼마야?”
“이거? 지금 분양권 받는 거니까 10퍼센트만 필요해. 분양가 2억 5천만 원이고 프리미엄까지 하면 뭐, 수수료 다 포함해도 4천만 원 미만이야.”
“이것도 중도금 무이자야?”
“그렇지. 사실 지금은 이 지역 인기가 없잖아.”
“근데 세입자 안 구해지면 어떻게? 난 그게 너무 걱정되더라.” 아내의 표정에서 불안감이 느껴졌다.
“자기야, 괜찮아. 시세보다 싸게 빼면 2년은 버틸 수 있어. 그리고 이 집은 초품아에 여러 가지로 입지가 좋아서 오히려 버티면 전세를 더 높게 뺄 수 있을 것 같아.”
“저출산 이야기에 인구 감소 이야기 계속하는데 이렇게 아파트를 많이 짓는 거 보면 난 아직도 신기해. 언제까지나 사람들이 들어올 수 있을지도 조금 걱정스럽고.”
“저출산 맞지…. 내 친구 놈들도 낼모레 마흔인데 아직 솔로인 놈들도 많고, 자기 친구들도 그렇고 먹고살기 힘드니까. 책임의 무게를 최소화하는 건 이해가 돼.”


우리는 저출산을 포함한 다양한 이야기를 했다. 인구가 줄어드는 이유와 젊은 사람들이 결혼을 미루는 이유를 집이라는 화제 하나에 묶어서 각자의 의견을 주고받았다.


“그래도 서울은 안 망하지 않을까요?”
“근데…. 여기 경기도잖아요.”
“걱정하지 마. 나만 믿어. 우리도 곧 서울로 갈 거야. 그리고 경기도까지는 아무리 인구 절벽이 와도 괜찮을 것 같아. 오히려 망하면 우리가 사는 지방 소도시가 사라지겠지….” 내가 한 말은 허세가 아니었다. 스스로에게도 주문처럼 되뇌는 다짐이었다. 흔들리면 끝이라는 생각이 나를 더 단단하게 만들고 있었다.


“맞아. 형 동네 가면 정말 놀랍다니까. 젊은 사람들이 없는 것 같더라고….”
“너 같으면 살겠냐? 다 똑같은 거지. 직장 가깝고 돈이 모이고 사람이 모이는 곳에 살고 싶은 건 다 똑같지. 어찌 될지 모르지만 나도 우리 딸 초등학교 들어가면 주말부부가 되더라도 제대로 된 곳에서 키우고 싶기도 하고.”
“주말부부? 뭔 소리야? 상의도 없이?”
“그냥 하는 말이지. 민감하기는. 그리고 아직 시간 좀 남아 있잖아. 천천히 이야기하자.”
“알았어. 아 맞다! ETF는 많이 모았어요?” 아내는 조금 상기된 표정으로 동생에게 주식에 대해서 물었다.
“아…. 형이랑 상의해서 전기차 ETF 월급 나오면 계속 적립식으로 사고 있는데 나쁘지 않아요. 가끔은 이렇게 오르기만 하는 게 맞나 싶기도 하고요.”
“오…. 잘됐네요. 축하해요. 나도 나쁘게만 생각했는데 그냥 저축한다고 생각하니까 오르든 떨어지든 별로 신경 안 쓰이더라고요.”


아내에게 주식을 하자고 권유할 때 동생에게도 해보라고 말했다. 한 달에 십만 원이라도 꾸준히 모아보라는 말을 듣고 1년 넘게 모으고 있었다. 가끔 질문이 너무 많아서 귀찮기는 했지만, 그 또한 넉넉하지 못한 형이 동생에게 해줄 수 있는 유일한 인생 수업이라고 생각하며 아는 범위 내에서 열심히 알려줬다.


동생은 점점 투자금을 늘려서 저축 10%, 주식 90%로 비율을 조절했다. 매달 적립식으로 매수해서 지금은 수익률이 40%가 넘는다고 했다. 뭐든지 내 돈이 들어가야 관심을 가진다. 그것은 진리였다. 내 것을 지킨다는 것은 진짜 전쟁터로 칼을 들고나가는 것과 똑같다. 나 또한 아파트를 매수한 후 더 많은 공부를 했다. 보유한 집이 늘어가면서 세금 공부도 하고 내 것을 지키기 위해서 더 많은 노력을 했다.


신기한 것 중 하나가 정치였다. 내게는 정말 남들 이야기였는데 내 돈이 섞이니 자연스럽게 관심이 생겼다. 어릴 때 어른들이 피 터지게 말하던 보수와 진보. 절대로 이해할 수 없는 영역이라고 생각했는데 이제는 조금 이해가 되었다. 모두 그렇게 피 터지게 싸운 이유가 자기 것을 지키기 위한 몸부림이었다는 것을 서른 후반에 깨달았다. 어느 순간부터는 세상을 이해하려고 애쓰기 시작했다.


이해해야만 버틸 수 있을 것 같았다.


“어? 저기 사장님 오시는 것 같은데?”
“일찍 오셨네요.”
“오시느라고 고생하셨어요. 매도자분들은 오고 계시나요?”
“네. 은행에서 만나기로 했어요. 이동하시죠.”
“네.”


엄마가 아프고 모든 것이 불안한 이 시점에 온 가족이 분양권을 사러 가는 것은 마치 슬픈 영화 속 한 장면 같았다. 무리해서 투자하는 것에 동생도 아내도 동의했지만, 혹시나 잘못되면 어쩌나 하는 생각에 내 몸은 미묘하게 떨렸다.


“오셨네요. 여기 앉으세요. 저희 쪽은 거의 다 오셨대요.”


시간이 지나도 오지 않는 매도자를 기다리며 나는 사장님을 불러서 조용히 물어봤다.

“잘 산 거겠죠?”
“그럼요. 이거 프리미엄도 싼 거예요. 위치도 좋고….” 사장님의 말투는 정직했다. 하지만 경험상 부동산 사장님도 장사꾼이었다. 먹기 좋은 떡은 본인부터 먹기 마련이다. 만약 배가 부르다면 자기가 아끼는 사람에게 준다. 투자도 마찬가지의 속성을 지니고 있었다.
“사장님도 혹시 가지고 계세요?”
“네. 있죠. 몇 개 했어요. 어머니도 해 드리고.”


그 말이 사실이든 거짓이든 안심은 되었다. 몇 번 거래하면서 같은 매물을 보유한 중개업자분을 만나면 나중에 도움이 된다는 걸 배웠다. 업계에서 일하면서 같은 매물을 보유하고 있으니, 조언 구하기도 쉽고 솔직하게 답변해 주는 분들이 많았다.


“저기 오시나 봐요.”


누가 봐도 필드에서 왔거나 골프장을 갈 사람들처럼 복장을 맞춘 중년 커플이 급하게 들어왔다. 남성분이 나이가 좀 더 있어 보였다.


“두 분 모두 앉으세요. 여기 대출 인계를 위한 서류에 서명하시고요.”
“이거 하면 돼?”
“그냥 서명해…. 뭘 물어봐.”
“다음에는 여기에 서명하시고요.”
“오빠? 이거 뭐가 이렇게 많아.”
“거래 끝나면 돈 나오니까 그냥 사장님 말 잘 듣고 하라는데 서명하고 도장 찍으면 돼. 빨리 시간 없다.”
“어…. 알았어….”


이렇게 아줌마는 불안 불안해하면서 자기 명의로 된 분양권을 내게 인계했다. 서류에 찍힌 도장을 보며 묘한 감정이 스쳤다. 누군가에게는 아무 생각 없는 종이 한 장이었지만, 나에게는 가족의 미래가 달린 계약서였다.

같은 종이를 두고도 무게가 다를 수 있다는 것이 이상했다.


잔금까지 모두 입금하니 두 사람은 우리 눈앞에서 한순간에 사라져 버렸다. 마치 이곳에 오래 있으면 안 되는 범죄자들처럼 다급하게 인사도 없이 자리를 떠났다.


“고생하셨어요. 사장님 복 받으셨네. 매물 정말 잘 잡은 거예요. 요즘 피가 계속 오르는데 이분들 빨리 처리하고 싶어 하셔서 어떻게 이렇게 딱 주인을 만났네요.”
“아…. 네. 감사합니다.”


사장님과 인사를 하고 우리는 식당으로 이동했다. 아빠가 뭐 하는지도 모르고 옆에서 조용히 따라다니던 딸은 계약이 끝난 것을 아는지 바로 보채기 시작했다.


“갈비탕 3개 주세요.”
“형…. 뭐야…. 저 사람들? 그 아줌마 특히….”
“왜??”
“맞아, 맞아. 정말 이상했어. 아무것도 모르는 것 같던데….”
“딱 봐도 뒤에 아저씨가 돈 줘서 산 것 같던데.”
“그럴 수도 있지. 정책이 복잡해지니까. 모두 자기 입장에서 조금이라도 세금을 아끼는 최선을 찾는 거지. 남이 보기에 멍청해 보여도 아마 그 사람들에게는 최선이었을 거야.”
“근데 아무리 그래도 자기 명의인데 너무 무관심한 거 아니야? 보는 내가 다 조마조마하더라.”
“그게 문제야. 아마 잘은 모르지만, 아줌마가 명의 빌려주고 얼마 받았겠지? 근데 평생 그렇게 남 좋은 일만 하는 거 같아 마음이 불편하더라.”
“그게 왜? 마음이 불편해?”
“그렇잖아. 본인이 공부해서 했으면 더 많이 벌 수 있을 텐데 남 꼭두각시 노릇만 해주는 거 아니야. 그러면 평생 못 배워. 무서워서 뒤에 숨어서 조금씩 번다고 해도…. 언젠가 사람 잘못 만나면 그동안 번 거 한 번에 다 날릴 거야. 그때가 되면 누구를 원망할 거야? 투자는 오로지 자기가 판단해야 해. 그래야 원망해도 자기 자신을 원망하지.”
“아…. 그래서 내가 종목 물어볼 때 안 가르쳐 준 거야?”
“하하…. 서운했냐?? 네가 공부해서 선택해야지. 그걸 왜 나한테 물어봐. 네가 피땀 흘려서 남들 놀 때 일해서 번 돈인데….”
“형…. 나도 여기 분양권 사볼까 봐. 오늘 하루 종일 그 생각했어.”
“너무 충동적인 거 아니에요?” 아내는 놀랐다는 듯 동생을 바라보며 말했다.
“네가 알아봐. 계약서 쓰는 날은 나도 시간 빼줄게.”
“같이 안 봐줘?” 동생은 서운한 듯 나를 보면 말했다.
“너 집이잖아. 아무리 투자용으로 매수한다고 해도 너 이름 세 글자 박힌 집문서가 생기는 거잖아.”
“이럴 때 보면 정말 냉정해…. 정말 차가워….”
“아이고. 아이고, 맛있어 보이는 갈비탕 왔다. 먹자. 먹자. 저번에 임장 때 여기서 먹었는데 맛있더라.”


아무리 피를 나눈 가족도 돈 앞에서는 처참히 무너진다. 오히려 가족이라서 더 처참히 무너진다. 아버지 형제들을 보면서 나는 돈 몇 푼에 얼마나 서로가 상처받고 서운해하는지 배웠다. 그리고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이모가 엄마와 나한테 화를 낼 때. 다시 한번 느꼈다. 피를 나눈 사이에서 돈거래는 더 조심해야 한다는 것을.



아버지 장례를 마치고 말도 탈도 많은 아버지 형제분들을 초대해서 밥을 대접했다. 엄마가 그렇게 하고 싶다고 했고 나도 그러고 싶었다. 뿔뿔이 흩어져 경조사 때나 한 번 얼굴 보고 사는 그런 남보다 못한 친척들이었지만, 어려운 일이 생기니 도움 된 건 사실이었다. 남 같은 사이라서 감사 표현을 더 하고 싶었다. 엄마는 이렇게 아빠 쪽 친척들한테 밥을 사드렸다고 아무 생각 없이 전화로 이모에게 말했다. 그 말에 이모가 상처받을 것을 전혀 모른 채 그냥 말했다. 그 후로 이모의 태도가 싸늘해졌다. 엄마는 이모가 화난 것 같다며 시간 내서 이모 집에 가자고 나를 재촉했다.


우리는 전화도 안 받는 이모 집으로 향했다. 과일 바구니를 사 초인종을 눌렀으나 대답이 없었다. 이모는 장례식 동안 꼬박 빈소를 지켰다. 아빠 쪽 친척들이 집이 가깝다는 이유를 핑계로 왔다 갔다를 반복할 때도 이모와 이모부는 우리 형제와 엄마를 챙겼다. 솔직히 가장 많이 마음을 써 준 것은 이모였다. 홀로 남은 동생을 걱정하는 마음에서 그렇게 이모는 못난 아빠 가는 길을 지켜줬다.


엄마는 이모가 친정부터 챙겼다고 서운하다고 말했다고 했다. 충분히 이해가 되었다. 하지만 이렇게 찾아왔는데 문을 안 열어주는 것은 마음의 상처가 되었다.


‘무슨 대역죄라도 지은 사람처럼….’ 그날 나는 돈이 사람을 빚쟁이로 만드는 게 아니라 죄인으로 만든다는 걸 알았다. 빚은 갚을 수 있지만, 서운함은 오래 남았다.


친척 누나들까지 동원해서 겨우겨우 닫힌 문을 열고 들어갔다. 이모를 달래기 위해 음식을 시키고 소주를 한 잔씩 기울이니 이모 마음속에 서운함이 입을 통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야…. 요한이는 그렇다 치고 내가 너한테 어떻게 했는데 너는 그러냐?”
“언니…. 내가 미안해. 생각이 짧았어. 화 풀어.”
“너 서방 돈 없다고 너희 집 보증금 없을 때 내가 이 집을 담보로 돈도 빌려주고 그랬는데….”
“언니…. 내가 정말 미안해….”
“그리고 내가 이자를 받았냐? 너희 어렵다고 해서 거의 10년 동안 겨우겨우 원금을 받고 그랬는데 어찌 친가 쪽에 더 고맙냐?”


사람을 잃은 아픔도 돈 앞에서는 아무것도 아닌 일이 된 것만 같았다. 언제나 따뜻하게 맞이해 주던 하나뿐인 이모가 이렇게 냉정해진 것이 결국 돈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 그 서운함이 돈이 가진 우월함에서 시작된 것만 같았다. 동생한테 돈 좀 빌려준 것인데, 조금 늦었지만 엄마가 밤낮으로 일해서 다 갚았는데 그 앙금과 우월감은 여전히 남아 있었다.


그날 수도 없이 사과하는 엄마를 보며 다짐했다. 어떤 일이 있어서 동생과 돈거래를 하지 않겠다고, 차라리 동생을 가르쳐서 나보다 더 잘 살게 만들겠다고…. 그리고 휴대폰에 동생 이름을 수정해서 저장했다.


‘형보다 더 부자 될 내 동생’ 그 이름을 저장하면서 웃었지만 마음 한쪽이 저렸다. 나는 부자가 되고 싶어서가 아니라, 다시는 가족이 돈 때문에 고개 숙이지 않게 하고 싶어서 이 길을 걷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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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 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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