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 돈을 대하는 두 가지 방식

돈은 사람을 바꾸지 않는다.

by 고용환

출근하기 전 소파에서 앉아 잠시 경제신문을 읽고 있는 내게 커피를 건네주며 아내가 말을 걸었다.


“도련님도 정말 대단해. 자기를 닮았나 봐.”

“하하. 내가 뭐 부모도 아니고 엄마, 아빠 닮았나 보지.”

“시어머니는 그런 배짱 없으시잖아. 시아버지는 뭐...” 나는 아내가 말을 곱씹으며 부모님을 잠시 떠올렸다.

“그건 모르지. 그런 배짱을 가진 DNA는 있었는데 기회를 박탈당해서 그렇게 살았던 건 아닌까 싶기도 하고. 그래도 가끔 나름 대담한 부분이 있기는 했어.”

“맞다. 맞다. 우리 주식 플러스로 돌아선 거 알아?” 아내는 어색했는지 주식 이야기로 주제를 빠르게 전환했다.

“어. 계좌 봤어. 이제 좀 안심돼?”

“뭐. 떨어지기 전 수익률을 조금 넘겼는데 투자금 늘린 덕분에 다행히 수익이 늘었네. 조금 안심되긴 하면서도 또 떨어질까 봐 두렵기도 하고... 무섭기는 해”

“불편하면 보지 마. 한 5천만 원 이상 수익이 생기면 일부 정리해서 이번에는 공동명의로 아파트 한 채 더 알아보자.”

“또?? 지금 3 주택이잖아.”

“김포 구축 정리해야 할 거 같아. 뭐 급한 건 아니고 그렇다고 너무 깊이 생각 말고.”

“좀 쉬었으며 좋겠어. 요즘 졸업 논문도 그렇고 고생하는 거 보면..... 뭐 철인도 아니고 몸 생각도 하고 안색이 많이 좋지 않아.”

[요한] “네. 네. 알겠습니다. 마누님! 걱정하지 마. 괜찮아. 멀쩡한데.."?



2020년 6월 금리의 힘과 비조정지역 덕분에 김포 아파트는 나날이 반등하고 있었다. KCC2차는 오랜 시간 동안 분양가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했다. 그러다가 4억 8천만 원 신고가를 기록하며 매매가 활발해졌다. 길훈 4차도 2억이 넘는 가격에 거래가 되었다. 부동산 시장이 뜨거워지면서 보유했던 현금과 주식을 포함해서 순자산은 4억이 넘어가고 있었다. 세금이나 여러 가지 지출 사항을 고려해도 순자산 4억이 맞았다. 20년 전에 자퇴생으로 사회인 신분이 되어 버티고 버티며 살아온 것에 대한 나름의 보상이었다. 사실 작고 보잘것없는 돈이다. 어디 가서 수도권에 전셋집 하나 못 구하는 적은 돈이었지만 내게는 자부심 그 자체였다. 아끼고 공부하며 하나씩 쌓아 올렸다. 위기가 찾아오고 힘든 일이 생겨도 포기하지 않았다. 어둠이 조금씩 사라지는 느낌이었다.


아직 삼십 대 중반이니 지금까지의 경험을 바탕으로 더 많은 노력을 하면 10억 도 금방 만들 수 있을 것만 같았다. 만약 예측한 대로 평택 아파트가 6억까지 올려준다면 10억은 불가능한 꿈은 아니었다. 돈이 돈을 만든다는 그 흔하디흔해서 자극도 안 되는 말. 하지만 그 의미를 이해하기 위한 가장 빠른 지름길은 바로 행동이었다. 아무리 좋은 정보를 많이 알아도 실천하지 않으면 결과는 없다.


집값은 끝없이 상승하고 있었다. 정부 정책을 비웃듯이 오르는 지역이 늘어나면서 직장에서 집 없는 사람들은 불안감을 호소했다. 아니 그들은 내 집을 갖는 것을 포기했다. 더 이상 생각하지도 행동하지도 않았다. 대신 차선책으로 소액 투자가 가능한 주식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마치 학교 다닐 때 유행했던 브랜드 재킷과 운동화를 따라 사는 것처럼, 공부도 안 하고 경험도 없는 상태에서 돈을 던지고 있었다.


사무실에서 후배가 아주 거만한 태도로 나에게 다가와 핸드폰을 들이밀었다.


“선배님. 이것 보십시오.”

“뭐야? 주식 계좌네.”

“저 대출받아서 샀습니다.”

“아…. 근데 왜 이걸 나한테 보여줘?”

“에이…. 선배님 부동산도 하고 투자에 있어서는 능력자라고 해서 조언 좀 구하려고 합니다.”

“난 그런 능력 없는데…. 그리고 이런 거 막 보여주지 마. 괜히 오해받는다.”

“그래도 좀 알려주면 안 됩니까?” 자꾸 옆에서 나를 자극하는 후배가 사실은 조금 거슬렸다. 아니 걱정되었다. 그래서 조금의 자극을 줘야겠다고 생각했다.

“PER가 뭔지 알아? 혹시 재무제표 보는 법은? 네가 산 회사 최근 영업이익과 매출은?”

“주워듣기는 들었는데 솔직히 잘 모르겠습니다.”

“그럼 왜 그 회사 주식을 산 거야?”

“요즘 뜬다고 해서 샀는데 수익률이 벌써 15퍼센트입니다. 그래서 배웠습니다. 그동안 제가 멍청하게 적금만 들었다는 걸.” 후배는 이미 중독되어 있었다. 그 강렬한 단맛에 빠져있었다. 처방전은 없었다. 스스로 깨닫고 배워야 한다. 그래서 더 이상 말을 깊게 하지 않았다.


“난 알려줄 수 있는 게 없어. 근데 책 좀 보고 공부 좀 한 후에 소액으로 다시 천천히 시작하는 게 좋을 거 같아. 그리고 사람들한테 막 이런 거 물어보지 말고 주식 계좌도 보여주지도 말고….”

“네….”


후배는 무척이나 실망한 눈치였다. 내게 물어보면 다른 사람들처럼 내 계좌를 오픈하면서 ‘짠’하고 수익률 높은 종목의 스토리 보따리를 풀 거라고 착각했던 것이다. 하지만 보수적인 이 조직에서 그리고 투자의 세계에서 훈수는 언제나 좋은 결말로 이어지지 않았다. 잘되면 자기 실력, 안되면 남의 탓. 내가 선택한 결과 배움도 없었다.


하지만 후배가 걱정되었다. 성실하고 책임감이 강한 착한 후배였다. 나이를 떠나서 보고 배울 게 많은 친구였다. 그래서 맘이 더 쓰였다. 아끼는 마음에 업무 하면서 쓴소리도 많이 하곤 했는데 아마 그런 것 때문에 내게 투자 조언을 구하고 싶었을 것이다. 일 할 때처럼 잘 알려줄 거로 생각했던 거 같다.





1년 전 이맘때, 부서 이동을 하면서 후배를 처음 알게 되었다. 소문대로 착실하고 부지런했다. 게다가 군인에 대한 소신까지 있는 친구였다. 나름 연식이 있는 나는 열정이 식어가고 있었다. 기계처럼 효율성을 따지며 일을 처리하고 있었다. 가족이라는 울타리가 삶의 1순위가 되면서 자연스럽게 일터에서 열정과 힘을 아끼게 되었다. 그래서 그런지 열정적인 후배를 만나니 부끄럽고 반성까지 하게 되었다.


후배의 모든 것이 좋아 보였지만 눈에 거슬리는 것이 있었다. 그는 유난히 겉으로 보이는 것에 민감했다. 딱 봐도 자신에게 맞지 않는 넘치는 소비를 하고 있었다. 스마트폰이 새로 나오면 계속 갈아타기를 했고, 운동화부터 운동복까지 고급 브랜드만 고집했다. 쥐꼬리 만 한 군인 월급을 받으면서 겉모습에 치중하는 게 안쓰러웠다. 저축한 돈은 있는지 걱정스러웠다. 부사관이 돈까지 없으면 말년에 얼마나 비참한지 많이 봤기에. 결국 참지 못하고 후배에게 말을 했다.


“너무 뭐를 자주 바꾸는 거 아니야?”

“선배님. 유행 뒤처지면 안 될 거 같아서 샀습니다. 그리고 할부라서 뭐 큰 타격이 없습니다.”

“아…. 그래. 근데 신발도 바꿨네?”

“이거 50만 원짜리 러닝화인데 인체공학적으로 만들어서 정말 기가 막힙니다.”

“하하. 누가 보면 장거리 마라톤 선수인 줄 알겠다. 좀 아껴서 써. 젊을 때 모으는 돈이 정말 중요해. 결혼하고 아이 태어나면 우리 월급으로 마통 없이는 사는 것도 힘들다.”

“이런 걱정도 해주시고 감사합니다. 역시 부자라고 들었는데 확실히 다르신 거 같습니다.”

“부자는 무슨 그래봐야 평균 저 밑이야. 보이지도 않아. 소문이 잘못 난거지. 아직도 편의점에서 1+1만 산다.”

“아. 그럼 제가 오늘 시원한 카페에서 아아 쏘겠습니다.”

“뭔 말을 못 한다. 그냥 일이나 하자. 커피 사무실에 많잖아.”


반장님이 내게 해줬던 것들을 떠올랐다.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는 선배이고 싶어 이런저런 말을 해주곤 했다. 하지만 소용없는 짓이었다. 습관은 특히나 소비 습관은 절대로 쉽게 변하지 않는다. 스스로 깨닫고 노력하지 않으면 돈을 쓰던 습관은 우리 몸에서 떠나지 않는다.



시간이 흐르고 후배가 장기간 휴가 갔다가 복귀했다. 주차장에 처음 보는 고급 세단이 주차되어 있었다. 눈부시게 빛나는 광택이 이곳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았다. 어색한 곳에 어색하게 놓여있는 그런 물건처럼 느껴졌다.


“누가 왔습니까? 못 보던 차가 있네?”

“선배님 저 차 바꿨습니다. K9으로….”

“잉…? 차를..... 타던 차도 아직 멀쩡했잖아.”

“아니 휴가 때 친구 놈이 나인 끌고 온 거 보고 반해서 할부로 뽑았는데 기가 막힙니다. 이거 뭐 장거리 운전해도 전혀 피곤하지 않고 역시 차는 좋은 차를 타라는 말이 거짓말이 아니었던 거 같습니다.”

“어이구…. 좋겠다. 그럼 기존에 타던 차는?”

“그거 딜러한테 800만 원에 넘겼습니다.”

“너 그거 2천만 원 더 주고 작년에 샀다면서.”

“뭐 직거래하면 좀 더 받을 수 있는데 시간이 아까워서.... 하하. 오늘 점심때 다 같이 고급 차로 식당 가시겠습니까?” 행복하는 후배의 표정을 보며 나는 더 이상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후배는 스스로 운전기사를 자청했다. 차에 탄 사람들은 차 좋다고 말하며 부러워했다. 후배는 들뜬 마음에 차를 자랑하며 사람들을 많이도 태워줬다. 뭐라고 말해주고 싶어도 저렇게 사는 게 행복하다면 그것 또한 행복의 다른 모습이라고 생각하며 넘겼다. 후배가 산 그 비싼 차는 가끔은 동료들의 택시로, 가끔은 전시장에 진열된 차와 같이 주차장에서 비를 맞으며 며칠 동안 세워져 있었다. 하지만 후배는 행복해했다.

주말이면 세차 도구를 잔뜩 들고 세차장에서 가서 닦느라 정신없었다. 누가 주인인지 헷갈리기까지 했다. 마치 자동차가 후배를 산거 같았다. 후배는 좋은 차를 샀다고 하지만 자동차만 호강하는 것 같았다. 그런 후배가 가끔 내 차를 타면 차를 꼭 바꿔야 한다고 내게 연설을 늘어놓곤 했다.


“선배님. 이거 25만이나 달린 겁니까?”

“응. 곧 26만 되지.”

“사고 납니다. 선배님…. 그리고 사람들 보는 눈도 있는데.”

“누가 뭘 보는데? 차를? 나를?”

“사람들이…. 선배님을...”

“좋은 차 타면 사람들이 차 보고 잠시 부러워하는 거지. 솔직히 그 안에 누가 탔는지는 하나도 관심 없어.”

“그래도 다 생각합니다. ‘이야’ 하면서 누가 이 차의 주인인지 궁금해하기도 하고.”

“그래그래 알았다. 근데 아직 바퀴가 동그래서 그런지 내 차는 아직 잘 굴러가네. 언덕 내려갈 때는 그냥 혼자 가. 비싼 너 차도 그렇지? 난 애가 멈출 때까지 타려고….”

“정말 대단하십니다.”

“바쁜데 얼른 밥이나 먹자.”



동생과 동갑인 후배를 보면서 친동생 같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 지방으로 보직받고 내려가게 되면서 동생도 차가 필요하겠구나 싶었다. 어머니를 병원에 모시고 갈 때 일이 많았다. 내가 있을 때는 내 차로 움직였지만 매번 그렇게 올라가기는 사실 힘들어 보였다. 동생도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는지 얼마 지나서 차를 사야겠다고 내게 말했다. 나는 동생에게 경제적인 차를 추천했다. 겉멋 부리고 싶은 나이인 것은 알지만 첫 번째 자동차부터 너무 좋은 것을 타면 눈만 높아지기 때문에 염려한 조언이었다. 동생은 며칠 동안 알아보며 이것저것 내게 물어보곤 했다. 그리고 내게 디젤 프라이드를 사겠다고 말했다. 주변 지인이 타는 걸 봤는데 연비도 좋고 경차가 아니라서 내부도 넓다고 했다. 장거리 운전으로 엄마를 모시고 집에 내려올 때 좋을 것 같다고 덧붙였다.


그렇게 마음을 정했지만 동생도 막상 중고차 시장에 도착해서 갈등을 했다. 조금만 돈을 더 내면 더 좋은 차를 살 수 있었다. 딜러들은 그 작은 틈을 파고들며 영업을 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언제나 그렇다. 돈을 쓸 때 조금 때문에 과소비를 하게 된다. 특별한 이유를 스스로 만들며 정당화한다. 나중에 수중에 돈이 모두 사라지만 그때 깨닫는다. 과분한 것을 담았었다는 것을. 나는 동생에게 어떠한 이야기도 하지 않았다. 스스로 선택하도록 그냥 옆에 서 있었다. 다행히 동생은 그 작은 관문을 잘 통과했다. 처음에 사기로 한 프라이드를 400만 원에 샀다. 물론 15만이 넘었고 겉모습도 초라했다.


하지만 중고차 구매 후 4년이 넘은 지금까지도 동생은 프라이드를 아주 잘 타고 다닌다. 동생 말대로 연비가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좋았다. 대중교통보다 더 저렴한 수준으로 차를 타고 다닐 정도였다. 그렇게 자신의 선택에 만족해하는 동생을 보면서 나는 참 뿌듯했다. 남의눈에 맞춰서 살지 않고 자기 주관대로 살라고 입버릇처럼 말했는데 다행히도 동생은 그 말을 이해하고 행동으로 실천하고 있었다.


동생을 떠 올리며 후배도 달라지기를 아니 남들 눈 호강시키는 삶에서 졸업하기를 바랐다. 하지만 현실은 돈도 있는데 짠돌이라며 이상한 말만 남아서 돌아다녔다. 게다가 내가 한 조언이 후배에게 상처가 되었다는 말까지 전해 들었다. 그때 다시 한번 깨달았다. 핏줄까지만 아니 변화를 원하는 사람에게만 말을 해야 해야겠다고 다짐했다.


코로나 물결 이후 주식 투자를 하면서 후배에게 많은 변화가 생겼다. 업무 집중도는 떨어졌고, 항상 먼저 준비하고 행동하던 추진력은 점점 줄어들기 시작했다. 책상에 앉아있는 시간이 점점 늘어났다. 손에서 스마트폰을 놓지 못했다. 마치 강력접촉제로 붙여놓은 것만 같았다.


이렇게 달라진 모습은 숨길 수가 없었다. 군대의 특성상 금방 주변에 말들이 돌기 시작했다. 사무실에서는 후배가 그렇게 된 게 모두 내 탓이라며 사석에서 나를 안주 삼아 말을 돌리곤 했다. 순수했던 후배를 내가 물들였다며 근거 없는 말을 퍼트렸다. 소문은 바이러스처럼 빠르게 옮겨 다녔다. 영원히 뒤에 머물 수 없는 뒷말은 금방 내 앞에 흉측한 모습으로 정체를 드러냈다. 사실이 아니라고 억울하다고 호소하고 싶었다. 내 진심이나 지금까지 해준 조언을 모두 들려주고 싶었다. 가끔은 화가 나서 후배를 앞세워서 해명하라고 강요하고 싶었다. 하지만 나는 입을 다물었다. 한평생 그렇게 살아온 사람들을 내가 바꿀 능력은 없었다. 불필요한 에너지만 소모하게 될 것이 뻔했다. 이 조직은 총과 칼을 들고 훈련하는 것을 뒤로한 채 이렇게 입과 종이로 전쟁을 한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기에 그냥 조용히 시간이 흘러가기를 기다렸다.


단지 단타로 매번 손해를 보는 후배가 안쓰러워서 주식을 그만하라고 잔소리를 했다. 하지만 이미 늦었다. 후배는 이미 도박에 중독되어 있었다. 노동 없이 버는 그 돈에 타락하여 자신을 잃어가고 있었다. 열정적이던 그는 충분히 더럽혀진 상태가 되어 있었다. 결국 나는 후배에게 말을 멈추고 대신 후배 생일에 마지막 선물을 준비했다. 후배를 위해 고른 책은 ‘부자 아빠 가난한 아빠’였다. 다른 책들도 추천해 주고 싶었지만 이 책이 그에게 당근과 채찍으로 가장 어울릴 것 같았다. 내 진심이 그의 삶에 도움이 되기를 간절히 바라면서. 하지만 이미 너무 빠른 속도로 달리는 열차에서 올라탄 후배는 뛰어내릴 용기가 없었다. 아니 뛰어내릴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다음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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