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 주식을 팔 것인가 버틸 것인가?

무서웠다. 사라져 버린 돈이 아까워서 미쳐 버릴 것만 같았다.

by 고용환

2020년도 1월 분양권을 계약하고 다시 일상으로 돌아왔다. 엄마는 병원에서 처방해준 치매 약을 먹고 난 후 엄마는 잠이 좀 늘었을 뿐 크게 악화되는 건 없어 보였다. 나름 안심이 되었다. 동생은 평택에 분양권을 사보겠다고 주식을 모두 매도해서 현금화시켰다. 여자 친구와 현장 방문을 다니면서 종종 궁금한 것들을 물어보곤 했다. 뉴스에서는 조심스럽게 전염병 이야기가 흘러나왔고, 우리 모두 독감 정도의 감기쯤으로 쉽게 넘겼다. 그리고 고요했던 일상에 푹풍이 불어닥친 것은 2월이었다.


코로나19 팬데믹 선언 후 주식이 곤두박질치기 시작했다. 괜찮아지겠지 하며 며칠을 지켜보는데 주식은 끝도 없이 떨어졌다. 국내와 해외로 분산해 투자하고 있던 나의 계좌도 한순간에 모든 수익률을 반납하고 마이너스로 끝도 없이 향했다. 장기투자를 해야 한다고 그냥 저축하듯이 최소 10년 넘게 넣으면 된다고 가볍게 말해오던 나도 아내 앞에서 서면 할 말이 없어졌다. 다행인 것은 동생이 집을 산다고 주식을 다 판 것이 위안이라면 위안이었다.


매일 적립 금액도 늘리고 목돈 일부분 마저 주식으로 옮겨 둔 터라 우리는 1억이 넘는 금액을 주식에 담고 있었다. 그나마 1억 5천에서 5천만 원은 평택 분양권을 산다고 매도했던 것이 행운이었다. 믿고 있던 SPY도 그렇고 삼성까지 바닥으로 내려앉았다. 서킷브레이커도 경험하면서 공포는 극도로 높아졌다. 그동안 침착하던 아내마저 공포에 평정심을 잃어갔다.


“자기야…. 우리 이거 매도해야 하는 거 아니야? 어떻게 이 돈 평택 아파트 잔금도 치러야 하는 돈이잖아….” 아내의 목소리에는 두려움이 가득했다.

“여보…. 우리 1억 원금에서 지금 팔면 4천만 원 날리는 거야.” 나는 최대한 침착하게 말하려고 하였으나 아내의 눈을 바라 볼 수는 없었다.

“날리는 게 중요한 게 아니잖아. 매일 5백만 원 이상 우리 돈이 사라지고 있다고…. 불안해서 아기도 잘 못 보겠어.”

“조금만 기다려 보자. 아파트 잔금은 21년에 치르면 되고. 내가 좀 더 알아볼게.”

“뭘 알아봐. 무슨 자기가 전문가도 아니고 어디서 뭘 알아보냐고.” 원망이 가득한 아내의 목소리가 내 가슴에 상처를 남겼으나 나는 담담하게 그것을 감당해야 했다. 아내는 정말 어쩔거냐는 식으로 말끝에 원망을 품고 있었다. 마치 내가 도박으로 돈을 난린 것처럼.


“책에서 위기의 순간이 왔을 때 시장이 어떻게 반응했는지 읽었던 적이 있어. 괜찮아 괜찮을 거야. 너무 조급해하지 말고 주식 계속 보지 마. 보면 스트레스만 받아.”

“뭐가 그리 느긋해. 4천만 원이면 자기 1년 연봉이야. 알아?”

“여보. 나 한 번만 믿어줘. 며칠만 더 지켜보자? 응? 회사들이 망해서 떨어진 게 아니니까. 조금만. 부탁이야.”

퇴근하면 아내와 이런 식의 대화가 계속 이어졌다. 나도 불안해서 온 몸에 힘이 빠졌다. 무서웠다. 사라져 버린 돈이 아까워서 미쳐 버릴 것만 같았다. 4천만 원이면 분양권을 하나 더 살 돈이었다.


옛날 사람들 말대로 주식투자는 하면 안 되었나?

내가 큰 실수를 한 건가?


스스로 자책하고 자책했다. 무리한 투자를 해서라도 엄마와 편히 모시고, 나중에 자식에게 짐이 되지 않으려고 했다. 그랬다. 이 모든 선택은 가족을 위한 결정이었다. 하지만 무리한 판단을 한 나는 바보가 되어 있었다.


다행인 것은 집값은 잘 버티고 있었다. 아니 오히려 조금씩 오르고 있었다. 아내를 설득하기 위해서 오래전에 본 책들을 뒤졌다. 이대로 주식을 팔면 영원히 원금을 잃어버리는 것이니 어떻게든 안심시켜야 했다. 고민한 후에 출근해서 카톡을 보냈다.


-카톡 메시지-


1929년 경제 대공황이 있었어. 전쟁 기간에 미국이 유럽에 수출을 많이 하면서 1920년대부터 대호황을 맞이한 주식이 버블로 떨어지면서 10만 개 이상의 공장과 기업이 파산하면서 그 여파가 전 세계로 번졌었어.

1974년에는 석유 위기로 석유파동이 오면서 엄청 주가가 하락했고 1987년에는 금리를 공격적으로 인상하면서 달러가 약세가 되면서 투자자들이 패닉으로 시장을 떠나면서 기록적인 하락을 기록했어.

그리고 자기도 알고 있듯이 1997년에 우리나라 IMF가 터졌고 위기를 경험했었지. 그리고 몇 년 후인 2000년에 ‘닷컴버블’이라고 인터넷으로 인한 벤처기업들 주가가 미친 듯이 올랐는데 결국 거품이 터지면서 주가가 크게 폭락했더라고 그리고 2008년에는 세계 금융위기로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 리먼 브라더스 파산으로 미국의 금융이 흔들리면서 우리도 덩달아 엄청난 피해를 봤어. 근데 지금 차트를 보면 그냥 잠깐 내려갔다가 올라온 것으로만 보여. 그니까 지금 팬데믹도 시간이 지나면 그냥 차트 속에 추억으로 남을 거로 생각해. 우리 팔지 말고 버텨보자. 항상 나를 믿어줘서 고마워. 그리고 사랑해.



이 짧은 메세지로 아내를 설득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불안한 마음이 편해지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았다. 주식시장은 2020년 2월부터 3월 중순까지 하락을 지속되었고, 결국 미국에서 제로 금리를 한다고 발표를 하면서 반등하기 시작했다. 한편 코로나 때문에 뉴스에서 매일 사망자가 집계되고 확진자 동선을 하나하나 파악하면서 공포는 쉽게 가시지 않았다. 하지만 주식이 반등을 하기 시작하면서 아내는 조금 안심하는 듯했다. 신문에는 하락과 상승이 치열하게 싸우고 있었고, 곧 급격한 상승은 시작되었다. 이후 코로나 속에서 어디를 가나 주식 이야기가 떠 돌아다녔다. 주식에 ‘주’ 짜도 모르고 평소 투자에 관심 없던 이들도 모두 돈 이야기를 했다. 이런 분위기는 우리 사무실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저 주식 사보려고 합니다.”

“야. 주식 아무나 하는 거 아니야.” 중대장은 그말을 하면서 나를 쳐다봤다. 마치 뭐라도 말하라는 듯한 의미의 눈빛을 보냈다.

“유튜브도 그렇고 이럴 때 사야 한답니다.” 후배가 자신에 찬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야.! 다주택자. 넌 어때?”

“아…. 잘 모르겠습니다.” 나는 중대장의 시선을 피하며 말했다. 아니 지금 이 대화에 목소리를 내고 싶지 않았다.

“돈 많으니까. 엄청나게 사둔 거 아니야?”



그저 입을 다물었다. 주식 계좌에 1억 넘게 있다고 말하면 이 조직은 그리고 중대장은 나를 드럼통에 넣어서 바다로 던질 게 분명했다. 단지, 회복이 빠른 시장을 바라보면서 상승론자들이 떠드는 것처럼 기회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동안 읽은 책도 그렇고 아내에게 정리해 준 역사를 살펴봐도 이런 말도 안 되는 하락 뒤에는 큰 상승 국면이 있었다. 아니. 역사는 말했다. 그리고 언제나 회복했었다. 그 어떤 기업도 망하기 위해서 회사를 운영하고 있지 않기 때문에 이런 식의 예고 없는 위기를 넘으면 곧 큰 돈이 몰렸다. 그리고 금리 인하는 돈 있는 사람들에게 최고의 돈 잔치였다.


돈이 없을 때는 금리에 대해 민감하게 생각한 적이 없다. 하지만 집을 사고 월세를 받으면서 금리에 대해서 자연스럽게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은행에서 60% 이상 대출을 받아 매달 이자를 상납해야 하는 입장에서 저금리는 곧 수익률 증가를 의미했다. 인기가 없어서 월세는 못 올려도 금리가 떨어지면서 자연스럽게 수익은 늘어났다. 이런 경험을 통해 코로나가 만든 최저금리가 바로 기회라는 것을 확신했다. 4월이 되고 어느 정도 원금을 회복해가는 주식 계좌를 들여다보면서 아내에게 말을 조심스럽게 꺼냈다.


“자기야…. 우리 추가로 대출받고 저축 해약해서 주식을 추가로 더 사는 거 어떻게 생각해?”

“미쳤어?” 아내는 미친 사람이랑 이야기하는 것처럼 화가 난 목소리로 말했다.

“알아. 근데 공부한 것도 그렇고 분위기도 그렇고 정말 기회인 거 같아.”

“자기야. 내가 결혼해서 한 번도 토 달아, 본적 없잖아. 근데 이건 정말 아닌 거 같아. 그러다가 떨어지면 어떻게 해.”

“이건 단순히 전염병으로 모든 나라가 고립된 거니까. 기업이랑 큰 상관이 없어. 물론 이런 쪽으로 사업을 하는 기업은 죽어나겠지만 지수를 사면 크게 위험은 없을 거야.” 나는 확신을 주기 위해서 아내의 눈을 바라보며 간절하게 말했다.

“너무 돈 돈 돈 하면 안 된다고 했어. 우리 아빠도 사업 확장할 때 지금 자기처럼 그랬어. 나 지금 자기한테 우리 아빠 모습이 보여. 그래서 더 싫어.”

“알았어. 미안해. 근데 한번 생각해보자. 응?”

“아. 정말 못 말린다. 몰라… 난 정말 모르겠어.”

나는 집요하게 아내를 설득했다. 유튜브를 보여주기도 하고 그동안 읽었던 책을 보여주기도 했다. 분명히 더 높은 수익률을 얻을 수 있을 거 같았다. 아내의 허락을 기다리며 추가로 대출 가능한 금액을 뽑았다. 보험금 대출을 포함해서 비상금 그리고 신용대출까지 하면 7천만 원 정도 투자금으로 끌어당길 수 있었다. 뉴스에서는 진단키트 개발한 코스닥 종목들이 미친 듯이 상승하고 있었고, 무슨 잔치라도 난 것처럼 뉴스는 매일 뜨거웠다. 사람이 전염병으로 죽어 가는데 투자자들은 환호를 지르며 파티를 열고 있었다. 안타까운 것은 나도 그 파티에 끼고 싶어 한다는 것이었다. 기회라는 생각이 머리에서 떠나지 않았다. 주가 반등에 아내는 나에게 계획을 물어봤다.

“영끌이라도 하자는 거야? 계획이 뭐야?” 아내는 포기한 듯한 목소리로 손가락을 어루만지며 물었다.

“솔직히 영끌이라고 하면 좋지. 하지만 무리하지 않는 선에서 5천만 원만 더 투자했으면 좋겠어.”

“어디에 넣고 싶은데.? 생각한 데는 있어?”

“한순간에 다 떨어졌으니까…. 지금은 뭐를 사도 다 오를 텐데…. 그래도 이게 언제 끝날지도 모르고 하니까. 국내는 카카오하고 LG화학 좀 담아도 될 거 같아.”

“한창 뜨고 있는 그런 종목 말고?”

“뭐 요즘 정신없이 오르는데 그거 보면 코로나 관련주도 있고 많은데 이게 두 종목 다 많이 떨어졌고 반등도 어느 정도 했거든 코로나가 지속돼도 카카오나 2자 전지는 큰 타격이 없을 것 같아서 그리고 시가총액도 크니까. 마음이 놓이고.”

“알았어. 근데 나 정말 놀랐어. 어머니 일도 그렇고 평택 분양권 매수한 지 얼마 안 됐는데 또 투자하는 게 혹시 투자 중독자인가? 이런 생각도 들었고….” 아내를 끝말을 흐렸지만 진심이 느껴졌다.

“모르겠어. 그냥 있잖아. 이번 폭락은 뒤에서 바라만 보고 있으면 너무 바보가 될 거 같아서 물론 아는 게 많지는 않지만 만약에 다시 떨어진다고 해도 이 상황만 보고 주식에 뛰어든 주린이 보다는 우리가 더 생존하지 않을까 생각했어. 그래도 우리는 몇 년 전부터 꾸준히 주식공부도 하고 노력했잖아.”

“근데 우리 너무 돈에 얽매이지 말자. 돈이 주인공이 되는 인생은 싫어. 우리가 주인공이 되는 삶을 살아야지. 아직도 옷 한 벌 살 때 벌벌 떨고, 양말 하나도 못 버리면서 이렇게 투자할 때 과감한 거 가끔은 돈 때문에 사는 거 같아서.”

“알았어. 우리가 주인공이 되자. 근데 나 돈 때문에 사는 거 아니야. 우리가 주인공이 되기 위해서 잠시 작은 것들을 포기하는 것뿐이야.” 양말하나도 못 버리는 나를 지켜봐주는 아내가 고마웠다. 그래서 더 지켜내고 싶었다.



2020년 4월 중순 추가로 주식을 매수했다. 만약 16년도부터 소액으로 주식을 안 해봤다면 이런 결정을 내리지 못했을 것이었다. 처음부터 느긋하게 주식을 했던 것은 아니었다. 부동산 투자로 자신감을 얻고 주식 책 몇 권을 사서 읽었다. 읽으면 읽을수록 무조건 돈방석에 앉을 것처럼 말하는 저자들의 경험 때문에 주식을 시작했다. 단타부터 호재를 찾아 주도주를 따라 사보기도 하고, 운 좋게 상한가를 몇 번 맞기도 했다. 중독 아닌 중독의 시간을 나 역시 보냈다. 나중에는 초 단위로 차트를 보면서 샀다가 팔았다가를 반복하면서 증권회사에 수수료만 내는 바보 같은 짓도 했다. 몇 개월을 헤매고 헤매다가 초기 자금으로 시작했던 돈이 반 토막이 났다.


없어도 되는 돈으로 한다고 시작했지만, 이 세상에 없어도 되는 돈은 없었다. 밖에서 그 몇 푼 벌려고 자존심을 땅바닥에 버려졌다. 처절하게 번 돈이 없어지는 것은 가슴을 찢어 놓았다. 정말 아팠다. 하지만 그런 시절의 경험 때문에 나는 단단해져 있었다. 나만의 룰을 만들고 기다리고, 남 말에 귀 기울이지 않고 신념으로 투자하는 방법을 스스로 터득했다. 결국 투자의 방법이 아닌 주식 투자 마인드를 담은 책들을 틈나는 대로 읽었다. 장기적인 안목으로 접근해야 한다는 것과 매일 읽고 있는 신문에서 경제와 사회의 흐름을 읽고 다른 시각으로 바라봐야만 승산이 있다는 것을 배웠다. 분명 차트를 보면 엄청난 수익이 났지만 개미들이 다 망하는 이유는 그 차트 어딘가에서 시작은 했지만 나오는 순간에 판단하지 못하는 것이 원인이었다. 나와야 할 때, 내 돈을 던져야 할 시점을 모로니 모든 것을 잃고 빈손을 나오는 경우가 많았다. 주식은 부동산과 달리 변하는 것을 초 단위 지켜볼 수 있다. 빨라서 좋지만 마음이 견디지 못하면 수익도 없었다.


그래서 나는 주식을 부동산처럼 건들기 힘들고 움직이지 않는 묵직한 자산이라고 여기는 연습을 했다. 그랬기 때문에 결혼 후 투자에 큰 관심이 없던 아내에게 같이 투자 공부를 하자고 말 할 수 있었다. 이번에 투자할 때는 가족과 많이 싸우기는 했지만, 아내가 결국 내 뜻을 받아 준 것도 투자했던 경험이 한몫했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었다.


내가 아내를 설득하기 위해 시간을 보내는 동안 동생은 열심히 평택 분양권 알아봤다. 그리고 운 좋게 빠져나와서 수익을 보존한 돈으로 분양권을 매수했다. 내가 투자했던 모든 순간보다 동생이 매수한 것이 나를 더 기쁘게 만들었다. 스스로 위험을 감수하는 선택을 한 5살 어린 동생이 자랑스럽고 대견했다.


돈을 겉모양으로 보면 같다. 그저 종잇조각이다. 하지만 주인이 위험을 감수하는 용기를 보여주면 감동해서 스스로 더 노력한다. 반면에 주인이 엉뚱한 곳에 사치하면서 홀대하면 결국 주인을 떠난다. 나중에 주인 위에서 올라서서 돈이 왕 노릇을 한다. 동생은 전화로 수많은 질문을 하면서 혼자 그 두려움을 이겨냈다. 내가 계약한 같은 단지에 나름 좋은 매물을 프리미엄 1천 8백만 원을 주고 매수했다. 동생이 옆에서 혼자 도장을 찍고 서명하는 모습을 보면서 훌륭한 어부가 되었다는 것이 감격스러웠다. 그렇게 다 커버린 동생과 계약을 마치고 우리는 갈비탕을 먹으러 식당으로 향했다.


“형…. 이걸 어떻게 몇 번이나 했어. 심장이 밖으로 나와서 도망간 거 같아. 실제로 내가 하니까…. 너무 쉽게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끝나서 허망하더라고.”

“내가 말했잖아. 뭔가 장난 같다고 근데 너 알지? 너 이름으로 벌써 대출이 2억 넘게 생긴 거야. 그 도장 찍기 몇 번에 말이야….”

“그러니까 말이야. 이거 무서워서 월급 받고 돈이나 쓰겠나 싶어. 화난다고 일도 그만 못 두겠네.”

“당연하지. 대출이 족쇄이긴 한데 그렇게 무겁고 불편한 족쇄만은 아닐 거야. 한 번 경험해 봐. 나도 빚 억 단위로 생기고 맘고생 좀 했는데, 덕분에 지금까지 아끼면서 살잖아. 오히려 더 좋은 습관으로 만들 수 있어.”

“응. 알았어. 근데 이거 한 800만 원 남았는데…. 뭐 하지?”

“다시 주식 사야지. 종목 분석해봐.”

“하긴 요즘 우리 병원에서도 다들 주식 이야기만 해. 사람들이 난리야. 아주.”

“절대 직장에서 투자하는 거 절대 티 내지 말고! 알지?”

“알지…. 무슨 말인지. 나 그동안 주식에 투자하는 거 아는 사람 한 명도 없어. 요즘도 나한테 물어보면 난 ‘모르쇠’ 하고 있어.”

“응, 잘하고 있네. 아직도 우리나라에서는 직장인이 투자한다고 공개하면 좋을 게 없어. 아마 우리가 늙으면 당당하게 말해도 색안경 안 끼는 세상이 오겠지. 어쩌면 그보다 더 일찍 올 수도 있고.”

“걱정하지 마. 열심히 투자도 하고 일도 해서 엄마 늦기 전에 호강시켜드려야지!”

“그래. 그러자. 벌써 벌어진 일은 어쩔 수 없지만 그래도 돈이라도 여유가 있으면 조금이라도 더 낳은 선택을 할 수 있을 거야.”



집에 돌아오니 아내와 딸은 세상모르고 자고 있었다. 그 모습은 평화로움 그 자체였다. 어느덧 37살이 되어 아빠가 되고, 거울에 비친 늙어버린 내 얼굴을 보면서 세월이 실감났다. 딸은 매일 자라고 있는데 나는 매일 늙어 가고 있었다. 머리가 빠지는 것도 아닌데 괜히 탈모 방지 샴푸까지 주문했다. 그런 나를 보고 아내는 아직 젊은데 왜 그러냐고 실없이 웃었다. 하지만 서른 초반에 아버지가 암으로 세상을 떠나고 서른 후반에 어머니까지 치매 진단을 받으면서 나는 두려웠다.


힘겨운 세상에 혼자 남은 것 같은 외로움과 막막함에 싸웠다. 나에게도 그런 일이 생기지 말라는 법도 없었다. 만약 내가 잘못되면 한 순간에 마침표를 찍을 수 있다는 사실이 나를 불안하게 했다. 막막하게 세상에 홀로 남을 아이를 생각하니 건강에 소홀할 수 없었다. 물론 물질적인 것을 포함해서 더 허리띠를 졸라매야 했다. 분명 어릴 적에는 내 만족을 위한 투자도 있지만, 지금은 우리 가족의 미래를 위한 투자이기에 무게감이 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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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 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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