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존을 위해, 버티기 위해, 잘 살기 위해서 아파트 분양권을 샀다.
사랑하는 사람을 보내도 세상은 아무 일 없다는 듯 돌아갔다.
전쟁터 같은 직장생활이라고 흔히들 말하지만, 내 직장은 정말로 ‘만약의 전쟁’을 위해 모든 것이 존재하는 곳이었다.
유학을 다녀왔다는 이유에서인지, 아니면 능력 탓인지, 성격 탓인지는 몰라도 진급에서는 계속 밀려났다.
분명 경력에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오히려 다른 사람들보다 화려했다. 미묘한 감정을 느끼는 사이에게 군대 하나만 바라보는 평범한 동기들이 하나둘 계급장을 바꾸며 올라갔다.
부정하려고 해도 나는 늙은 중사로 군대에 남았다.
예전에 ‘잘 나갔다’라고 불리던 시절 이야기는 이제 추억이 되어 조용히 땅속으로 묻혀버렸다.
시간이 지나면 모든 게 해결되리라 믿었던 진급에서 계속 누락되자, 스스로 위축되기 시작했다.
억울함을 하소연할 곳도, 서운함을 털어놓을 곳도 없었다. 음주운전을 한 사람도, 일을 대충 한다고 소문난 사람도, 전역을 하겠다고 입버릇처럼 말하고 다니는 사람들도 모두 진급을 했다. 절대로 하면 안 되는 일을 저지른 사람들보다 뒤처지고, 후배들이 나를 추월하는 현실이 나를 자극시켰다.
나중에는 어디서 흘러나온 말인지 모를 소문들이 맴돌았다. “남자가 휴직까지 했다며? 사회성 부족해서 그렇다더라.” 휴직에 사회성이 언급되었고, 나중에는 징계를 받은 과거가 있다는 루머도 돌아다녔다. 남성 위주의 군대라는 집단이 여성 집단보다 더 많은 말과 소문으로 하루하루를 보내는 것을 이미 알고 있었지만, 막상 오해를 받는 입장이 되니 집단 자체가 한심하게 느껴졌다.
나는 나를 증명해야 했다. 그래서 더 단정하게 머리를 자르고, 더 군인답게 굴었다. 영혼이 이탈하지 않도록, 정신이라도 부여잡기 위한 발버둥이었다.
유학을 다녀온 뒤, 복직하고 아버지를 간호하느라 한동안 부동산 임장을 다니지도 못했다. 다른 일을 하는 사이에 세상은 빠르게 변했다. 김포 풍무동의 대단지 아파트는 프리미엄까지 붙어 있었다. 마이너스 때 거래할 기회가 있었는데, 어설픈 판단과 오만으로 기회를 흘려보냈다. 신축 단지에서 400미터도 떨어지지 않은 내 아파트는 5년 동안 겨우 몇천만 원이 올랐을 뿐이었다. 오래된 아파트라 세입자가 나갈 때마다 수리비만 한가득 내게 청구되었다.
부동산 사장님 말대로 했더라면, 지금쯤 나는 새 아파트 두 채를 가진 승자가 되어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누구를 탓할 수도 없었다. 준비되지 않은 사람에게 좋은 정보는 그저 헛소리로 들릴 뿐이다. 좋고 나쁨을 구분할 수 있는 능력은 스스로 만들어야 한다. 나는 준비되지 않은 투자자였다.
한동안 김포 신도시를 바라보며 속으로 눈물을 삼켰다. 그럴 때마다 죽음 앞에서 후회만 남기고 떠난 아버지가 떠올랐다. 수많은 기회를 보내버린 아니 아마도 그때는 그것이 기회인지도 몰랐던 중년의 남자는 과거에 머물러 죽음의 문턱을 넘었다. 남겨줄 것도 없이 이 세상에 온 그대로 빈 몸으로 떠났다. 죽음 앞에서 미련은 가진 자의 사치라는 것을 그때 배웠다. 이 땅에 남겨둔 것이 많아야 미련이 생기는 법이다. 남긴 것이 빚이라면 미련이 아닌 원망만 남겨진다. 한 번 사는 세상에 원망을 남기고 떠날 수는 없었다.
남은 가족들을 위해서는 이제 더 과감해져야만 했다. 이번엔 기회를 놓치지 않겠다고, 단단하게 마음을 다잡았다. 군대에서 무너진 평판을 뒤로한 채 다시 주말마다 임장을 다녔다.
아빠가 하늘나라로 떠난 지 몇 달이 지나고, 엄마에게 전화가 왔다. 사고치 던 아빠의 부재는 조용한 고요를 불러왔다. 하지만 그 고요는 오래가지 못했다.
“집에 좀 와봐라. 네 동생, 뭔 일 있나 봐. 요즘 일을 안 나간다.”
나의 권유로 간호조무사가 된 동생은 군대를 제대하고 바로 취직을 했었다.
남자 간호조무사라 수술실에서 일한다고 했다. 바퀴벌레 하나에도 세상이 무너질 듯 놀라는 놈이, 매일 죽음과 맞닿은 환자들을 상대하며 삶을 버티고 있었다. 하지만 동생은 힘들어도 내색하지 않았다. 일을 잘해서인지 동생의 급여는 빠르게 올랐고, 가끔 보너스를 받으면 엄마에게 용돈도 드렸다. 그런 동생을 보며 과거의 내 모습을 떠올렸다.
안쓰러운 마음에 가끔 집에 가면 호주머니를 털어 고기를 사주곤 했다. 그날도 그렇게 동생을 불러냈다.
단골집에 오랜만에 둘이 앉아 안주를 시키고, 소주 한 병을 시켰다.
“한잔해.”
“괜찮아. 먹고 싶지 않아.”
“무슨 일 있어?”
“그냥 그만뒀어.”
“왜? 잘 다니던 직장을 왜….”
“그냥 그만뒀다고. 걱정하지 마. 신세 안 질 테니까.”
“그게 아니라, 힘든 일 있으면 말해.”
“뭐, 형이 해줄 수 있는 게 있다고….”
짧은 대화 속에서 강한 불안이 흘러나왔다. 분명 무슨 일이 있었다. 하지만 동생의 꾹 다문 입은 열리지 않았다. 나는 혼자 술잔을 비웠다. 시간이 흘러 동생은 맥주잔에 소주를 가득 붓더니, 생수처럼 들이켰다.
모든 걸 삼켜버리고 싶은 듯한 표정이었다. 술이 약한 동생의 눈이 풀리고 굳게 닫혀 있던 입이 열렸다.
그동안의 진실을 토해냈다. 마치 만취해서 토하는 술 취한 사람처럼 작은 입에서 이물질이 함께 많은 것들이 섞여 쏟아졌다.
수술실에서의 일상, 삶의 경계에 있는 사람들을 매일 보는 것은 지옥과도 같다고 했다. 형체를 알아볼 수 없는 시체 같은 환자들을 보면서, 자신도 같이 무너지는 걸 느꼈다고 했다. 하지만 그보다 더 견디기 힘든 건 수술이 잘못됐을 때 옆에 있는 자신에게 화풀이하는 의사라고 했다. 사람의 생명을 다루는 그 고귀한 손이, 수술실 안에서 때로 폭력의 도구로 변했다고. 발길질, 욕설, 주먹질까지, 동생은 묵묵히 그 모든 걸 참으며 견디고 있었다.
사람이기를 포기한 그 이중적인 태도. 수술이 끝나면 아무 일 없다는 듯 미소를 지으며, “미안하다”라는 말 대신 몇십만 원을 찔러주며, ‘용돈’하라고 했다고 했다.
그동안 내가 ‘보너스’라고 생각했던 돈의 실체를 알아버렸다. 남자 조무사가 필요했던 이유도, 고졸 신분의 연봉이 빠르게 올라간 이유도 모두 설명되었다. 모든 병원이 직원을 이런 도구로 활용하지 않을 거라는 것을 알지만 그럼에도 나는 분노할 수밖에 없었다. 동생이 말이 끝나고 오랜 침묵이 흘렀다. 아빠가 없는 집에 가장이 된 나는 마음속으로 눈물을 흘렸다. 이미 부서져 버린 동생을 구제할 방법은 없어 보였다.
부사관을 지원시켜려고 하다가 포기한 이유는 동생이라도 자존심을 지키며 한 사람을 살아기를 원해서였다. 하지만 그건 나의 착각이었다. 자존심을 지키기 위한 수단은 '힘'이었다. 사람들은 자신이 가진 힘으로 다른 사람들을 부려먹었다. 때로는 그것이 권력이고, 때로는 그것이 돈이었다. 가진 자의 불합리함은 언제나 용서받을 수 있는 것이었다. 내가 군대에서 겪은 수많은 불합리함도 '미안하다'라는 흔한 말 한마디로 마침표를 찍곤 했다.
결국 동생은 참고, 버티고, 견디다 모든 것이 산산 조각난 채 병원을 나왔다. 술에 취해 혀가 꼬인 채로 미안하다는 말을 반복하는 그를 보는 것은 고통스러웠다. 그 날밤 잠든 동생 보며 생각했다.
고작 1억짜리 경기도 변두리에 집 한 채를 사놓고 안심했던 내가 한심스러웠다. 우린 여전히 돈의 노예였다.
그리고 이 잔혹한 현실에서 구원받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바로 부자가 되는 것이었다.
“형, 어디 가?”
“아파트 보러. 아니, 아파트 될 놈들 찾으러.”
“될 놈들?”
“응. 분양권.”
“그거 청약해야 하는 거 아니야?”
“그렇지. 근데 인기가 없거나 물량이 많으면 그냥 줍줍 할 수도 있거든. 반대로 인기가 많으면 프리미엄이 붙지.”
“아….”
“남는 게 시간인데, 그냥 보는 거지 뭐.”
동생에게 뭐라도 알려주고 싶었다. 조금이라도 빨리 돈이 외치는 그 부자의 언어를 깨우쳐주고 싶었다.
우리는 김포 신도시 곳곳을 돌았다. 익숙한 곳에서 다시 기회를 잡고 싶었다. 부동산 사장님은 구래동의 대단지 신축을 소개했다.
프리미엄은 2천만 원 정도였고, 이마트와 전철역이 도보로 10분 거리에 있었다. 분양을 시작한 지 반년밖에 안 된 신축이었다.
24평, 1,500세대, 분양가 2억 중반.
필요한 돈은 계약금 10%와 프리미엄 정도였다. 월세까지 포함해 그동안 모은 돈이 있었으니, 감당할 수 있었다. 하지만 김포에서 가장 구석이라는 점이 마음에 걸렸다.
“잠만 자는 도시”라는 말이 떠올랐다. 서울과 멀어지는 건 좋은 투자가 아니라는 것도 충분히 이해하고 있었다. 이미 한 번의 실수를 했기에 두 번은 반복하고 싶지 않았다. 없는 사람에게 실수는 한 번으로 충분하다. 그 타격이 너무 커서 두세 번 실수를 반복하면 남는 것이 없이 파산하고 만다. 투자에서 실수를 보완하는 가장 좋은 도구는 바로 시간과 돈이다. 돈이 많으면 기다릴 수 있다. 조급함은 언제나 최적의 기회를 놓치게 만든다. 머리는 충분히 알고 있었지만 내게는 충분히 버틸만한 돈이 없었다. 그래서 더 신중해야만 했다.
첫 번째 투자 이후에 부동산 카페에 가입해 글도 읽고, 입지와 시세를 분석하는 연습을 했다. 동생은 나를 따라 이것저것 보는 것을 좋아했다. 우리의 분석이 틀렸다고 해도 돈을 따라 희망을 품는 것은 행복한 행위였다.
나는 사장님이 소개해준 매물을 보다는 다른 곳이 더 좋을 것 같다는 판단을 했다. 며칠 후 김포 중앙에 위치한 운양동 잔여 물량이 있는 모델하우스로 향했다.
- 34평, 한강 조망, 프리미엄 자재, 신설 역세권 예정지- 화려한 광고 문구가 눈에 들어왔다.
도착한 우리는 난생처음 보는 34평 아파트의 내부를 둘러보기 시작했다.
“형, 진짜 집이 크다.”
“그치? 이런 집에서 살면 행복하겠지.”
“형, 봐봐. 드레스룸이 두 개야.”
“그러게. 여기 살면 좋겠다, 그렇지?”
분양가는 3억 4천만 원이었다. 아파트가 들어설 부지는 아직 공터가 많았고 주변에 편의시설도 없었다. 그리고 작고 작은 경전철 지하철역도 한참 멀었다. 이런 단점 때문에 미분양으로 고생하고 있는 분양 단지였다.
미분양이 마음에 걸렸지만 모델 하우스 이후에 머릿속에서 34평 내부 이미지가 계속 맴돌았다.
사장님이 추천해 준 24평보다 훨씬 넓었다. 그리고 필요한 초기 자본도 큰 차이가 없었다. 직원이란 면담할 때 단지 바로 앞에 '신설역 공사 확정' 될 수 있다고 자신 있게 설명했던 모습도 떠올랐다. 며칠 동안 큰 고민에 빠져 잠을 설쳤다. 선택을 하기 전에 신중해야 한다. 한 번 선택하면 결과는 달라진다. 그다음부터는 절대로 결과를 바꿀 수 없다. 또 다른 선택만 주어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쉽게 결정할 수 없었다. 아니 내 직감에 대한 자신이 없었다. 첫 번째 아파트의 투자 결과가 영향을 미치고 있었다. 결국, 조언을 구하기 위해 방화동 사장님을 찾아갔다. 유학 중에도 생일이면 선물을 보내며 관계를 유지했고, 아버지 장례식에도 직접 오셨다.
언제나 사람 냄새가 그분의 조언은 내게 힘이 되었다.
“오랜만이네. 살이 쭉 빠졌네. 떠난 사람은 가벼운데, 남은 사람은 한없이 무거워지는 법이야. 커피?”
“잘 지내셨어요? 여전히 바쁘시네요.”
“요즘 마곡 알지? 거기 주변 개발로 정신이 하나도 없어.”
“마곡 생각하면 가슴이 미어져요. 매일 출퇴근하며 보던 곳이었는데, 변하는 걸 보면….”
“등잔 밑이 어두운 거야. 한참 어둡지.”
“그쪽 비닐하우스에 오리 고기만 아마도 수백 번은 먹었을걸요.”
“아까운 건 그냥 잊어. 앞으로 아깝지 않게 잘 찾으면 돼. 근데, 어쩐 일로?”
“아… 저 분양권 사보려고요. 김포예요.”
“김포를 참 좋아해, 그렇지? 처음으로 내 집을 산 동네가 첫사랑이 되는 법이지.”
“그런가 봐요.”
“어떤 거야?”
“운양동 미분양인데요. 34평이고, 좋은데 저층이라 좀 고민돼요.”
“흠…. 사고 싶구먼, 말하는 거 보니.”
“정말 좋더라고요.”
“신중해야 해. 저층은 세입자 맞추기도 어렵고, 다 짓는 중인 건 입주 후 문제도 생기지. 근데 아무리 별로인 집도 오르기는 해. 저축보다는 좋지. 시간이 해결해 주니까. 돈을 그냥 주머니에 넣어두면 다 사리 지더라.”
“맞아요. 아는데. 자꾸 눈에 밟혀서요.”
“그럼 모델하우스 다시 가서, 직원한테 가격 좀 깎아달라 해봐.”
“모델하우스에서요?”
“완판이 목표인 애들이잖아. 못할 것도 없지. 저층이면 말 한마디는 해봐야지.”
“하하, 알겠습니다.”
“아버지 보내고, 마음이 급해졌구나….”
사장님과의 대화는 언제나 나를 포근하게 만들었다. 중간중간 흘러나오는 인생의 경험이 담긴 조언은 세월의 무게와 지혜가 담겨 있었다.
다시 찾아간 모델하우스는 북적였다. 번호표를 뽑고, 밝은 미소를 띤 직원 앞에 앉았다.
“어디, 어디 남았어요?”
“이제 7채 남았어요.”
“모두 저층이죠? 저기… 혹시 오늘 계약하면 좀 깎아주실 수 있나요?”
차 안에서 수없이 연습했던 말이었지만, 막상 꺼내려니 얼굴이 화끈거렸다. 모델하우에서 거지처럼 구걸하는 기분이었다. 하지만 직원의 반응은 예상밖이었다. 마치 당연히 있는 일이라는 듯, 신속하고 빠르게 대응했다.
“잠시만요.”
직원은 망설임 없이 사무실로 들어갔다. 그 모습을 보고 있으니 사장님이 웃으면 내게 윙크했던 모습이 떠올랐다. 잠시 후, 직원이 돌아와 밝은 표정으로 내게 말했다.
“고객님, 오늘 계약하시면 500만 원 빼드릴 수 있어요. 계약금은 3,400만 원이 아니라 2,900만 원만 입금하시면 돼요. 입금하시겠어요?”
한순간 두 달 치 월급을 벌었다. 나는 무엇에 홀린 것처럼 공사 현장도 제대로 임장 하지 않고 계약서에 내 이름 세 글자를 또박또박 적었다. 중도금은 무이자였다. 완공까지 1년 이상 남아 있었다. 이제 내가 할 일은 기다림뿐이었다. 따끈한 분양 계약서를 들고 집에 와서 동생에게 전화했다.
“그 아파트, 분양권 샀다.”
“진짜? 벌써?”
“응. 500만 원 깎아줬다. 무슨 아파트가 시장판 생선도 아니고, 암튼.”
“와…. 아무튼, 잘됐네.”
“그러게. 알수록 신기하다.”
이렇게 나는 아파트 두 채를 가진 월급쟁이 직장인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