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날, 카페에서 시간을 보내는 사람들

고요속의 성찰과 후회

by 고용환

유난히 공허함으로 가득 찬 설날 아침이 시작되었다. 가족과 아이가 캐나다로 떠난 빈자리가 이토록 서늘할 줄이야. 곁을 지켜주는 반려견의 뭉근한 온기에 기대어, 겨우 무거운 몸을 일으켰다. 명절이 대수냐고 스스로를 다독여 보지만, 몸은 '명절의 온기'가 사라진 풍경에 예민하게 반응하고 있었다. 가족이라는 울타리는 보이지 않는 곳에서 나를 지켜주던 투명한 방어막이었음을, 그 막이 걷히고 나서야 깨닫는다.


가족들이 곁에 있었다면 나는 오늘 아침 당연하게 떡국을 끓였을 것이다. 작고 낡은 식탁에 모여 앉아 대수롭지 않게 아점을 먹고, 각자의 시간을 보냈을 '보통의 휴일'. 특별할 것 하나 없던 그 평범함이 실은 얼마나 대단한 기적이었는지, 흰머리가 불쑥 인사를 건네는 횟수가 늘어날수록 뼈아프게 실감한다. 이 적막함은 어쩌면 머지않은 미래에 내가 마주할 고독의 예고편일지도 모른다. 하나둘 제 갈 길을 찾아 떠나고 결국 나 자신만 덩그러니 남게 될 현실이, 차가운 새벽 공기처럼 어깨를 눌러왔다.


반려견과 아파트 단지를 한 바퀴 돌고 들어와 아점으로 신라면을 끓였다. 새해 분위기라도 내보려 냉장고를 뒤졌으나 끝내 떡 한 조각을 찾지 못했다. 그 순간, 짧은 헛웃음이 새어 나왔다. 그동안 내가 사들였던 떡들은 나를 위한 것이 아니었다. 누구도 부탁한 적 없지만, 자녀에게 소소한 전통의 맛을 알려주고 싶었던 마음이 그 봉지 안에 담겨 있었던 것이다.


새해 첫 끼니를 라면으로 채운 뒤, 노트북을 챙겨 지하 주차장으로 향했다. 한기가 서린 차 안에서 문을 연 카페를 검색했다. 다행히 단골 카페의 '영업 중'이라는 사인이 나를 반겼다. 5분 남짓 달려 도착한 카페는 평소보다 한산했다.


그곳에는 나처럼 혼자 온 이들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왔다. 습관처럼 주변을 훑는다. 책을 든 내 또래의 여성, 게이밍 노트북에 몰두한 중년 남성, 아이스 아메리카노 한 잔을 앞에 두고 수다를 떠는 젊은이들까지. 각기 다른 삶의 조각들이 카페 안을 채우고 있었다.


햇살이 비껴드는 구석 자리에 앉아 블라인드를 살짝 내렸다. 빛이 발끝에 머물게 한 뒤, 쓰다 멈춘 소논문 파일을 열었다. 박사 학위를 받은 뒤 전공과는 결이 다른 일을 하고 있지만, 나는 여전히 이 소소한 연구의 끈을 놓지 못하고 있다. 미련일까, 아니면 바닥에서 꿈틀거리는 마지막 자존심일까. 아직 정의 내리지 못한 채, 그저 2월 말 투고일이라는 약속을 지키기 위해 자판 위에 손을 올렸다.


집중은 쉽지 않았다. 예고 없이 방문하는 잡생각들에게 기꺼이 문을 열어주었다. 그렇게 몇 시간을 멍하니 머물다 보니, 카페를 채우는 가족 단위 손님들이 보였다. 그들의 일상은 화가 날 정도로 아름다워 차마 눈을 마주치기 힘들었다. 사라지고 있는 엄마, 이미 사라져 버린 아버지. 내게는 이제 일어날 수 없는 풍경들이 그곳에 있었다.


평소라면 이어폰으로 세상의 소음을 차단했겠지만, 오늘은 그러지 않았다. 타인들의 사소한 투정, 의미 없는 농담, 그 시시콜콜한 대화들이 '살아있음'의 신호처럼 들려 그 소리에 가만히 귀를 기울였다.


문득 기억을 더듬어보니, 부모님을 모시고 이런 카페에 와서 아이스 커피 한 잔 마셔본 적이 없었다. 그때는 카페가 흔하지 않기도 했지만, 무엇보다 이별이 이토록 눈앞에 와 있는 줄 몰랐기에 소중함을 몰랐다. 그렇게 시간은 속절없이 흘러가 버렸다.


미련하게도 지나야 안다. 지나고 나서야 그 사소함들이 결코 작지 않았음을 배운다. 후회의 밀물을 조금이라도 막아보려, 오늘 내가 할 수 있는 '작은 일'을 생각한다. 아마 오늘 밤 집에 돌아가면 화장실 청소를 시작할 것 같다. 가족들이 돌아오기까지는 아직 몇 주가 더 남았지만, 그들이 문을 열고 들어왔을 때 가장 깨끗한 온기를 느낄 수 있도록.


비어 있는 집을 채우는 것은 결국, 누군가를 기다리며 준비하는 나의 마음일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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