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SP(Highly Sensitive Person)의 특성
성격은 선천적 기질과 후천적 환경의 상호작용 속에서 형성된다. 심리학자 제롬 케이건(Jerome Kagan)*은 인간의 성격이 생물학적 기질(temperament)과 환경적 경험의 복합적 산물임을 강조했고, 유전학 또한 약 40~60%의 영향을 미친다고 제시한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타고난 기질이 곧 운명은 아니라는 점이다. 환경, 경험, 자기 인식의 변화에 따라 성격은 지속적으로 조정될 수 있다.
어떤 사람은 자신의 기질을 긍정적으로 수용해 자아 존중감을 강화하지만, 또 다른 사람은 타고난 성향이 불편하다고 느껴 변화하려 애쓴다. 예민함 역시 마찬가지다. 그것은 때로는 섬세함과 통찰력의 근원이 되지만, 통제되지 않으면 불안과 피로를 유발한다.
나는 오랜 시간 예민한 성향 속에서 살아왔다. 사소한 일에도 감정이 흔들리고, 주변 사람들의 말 한마디에 쉽게 자극을 받는다. 직장에서는 의미 없는 농담조차 마음속에 오래 남고, 누군가의 표정 하나에도 불편함을 느낀다.
이러한 예민함은 흔히 HSP(Highly Sensitive Person)라 불리는 특성과 관련이 있다. 미국 심리학자 일레인 아론(Elaine N. Aron)*은 HSP를 “외부 자극에 대한 감각적·정서적 반응이 일반인보다 훨씬 깊고 빠른 사람”으로 정의했다. 전체 인구의 약 15~20%가 이 특성을 가지고 있다고 했다.
HSP는 타인의 감정에 공감하는 능력이 뛰어나고, 세부적인 변화를 잘 감지하지만, 동시에 과도한 자극에 쉽게 지친다. 소음, 시선, 비판적 언행이 모두 감정의 무게로 다가오며, 결과적으로 지속적인 불안 상태를 초래한다.
예민한 사람의 특징 중 하나는 ‘사건의 확대 해석’이다. 작은 불편함이나 실수를 과거와 미래의 맥락 속에서 반복적으로 떠올리며, 불안을 증폭시킨다. 이 과정에서 ‘인지적 반추(cognitive rumination)’가 발생한다.
즉, 이미 끝난 일을 계속 재해석하며 스스로를 괴롭히는 것이다.
나는 오랫동안 이런 사고의 패턴 속에 머물렀다. 어떤 일을 철저히 준비하고 성취를 이루면 불안이 줄어들 것이라 믿었지만, 현실은 달랐다. 일시적인 안도감은 있었지만, 근본적인 불안은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결국 성취는 ‘안정’이 아니라 ‘불안을 잠시 잊기 위한 수단’이 되었고, 내면의 긴장은 계속되었다.
그럼에도 나는 한 가지 깨달았다. 예민함을 완전히 없애는 것은 불가능하지만, 그것을 다루는 기술을 배울 수는 있다.
바로 ‘자기 확신(self-assurance)’과 ‘전문성(expertise)’이다.
내가 박사 과정을 통해 얻은 가장 큰 자산은 학위 그 자체가 아니라, 논쟁 속에서 흔들리지 않는 기준을 갖게 된 것이다. 상대방의 평가나 비판을 무조건적으로 수용하지 않고, 그 안에서 가치 있는 부분을 선별하는 능력은 불안을 완화시킨다.
확신은 방패가 되고, 전문성은 자존의 기반이 된다.
실제로 HSP 중에서도 삶의 만족도가 높은 사람들은 대부분 ‘능동적 적응(active adaptation)’을 택한다. 즉, 자극을 피하기보다 스스로의 역량을 키워 외부 자극에 대한 해석을 바꾸는 것이다. 성취는 단순히 사회적 성공이 아니라, 자기감정의 균형을 회복하는 내적 장치가 된다.
결과적으로 불안은 평가의 결과를 왜곡시키고, 자신감의 결핍은 다시 주변의 시선을 의식하게 만든다. 이런 순환은 ‘사회적 불안(social anxiety)’을 강화한다. 따라서 예민한 성향의 사람일수록 외부의 평가보다는 내적 기준과 자기 확신을 중심으로 삶의 방향을 설정해야 한다.
예민함은 단점이 아니라 관리되지 않았을 때만 약점이 된다. 그것은 창의성과 통찰, 감정적 깊이를 만들어내는 중요한 자원이다. 다만 그 에너지가 외부로 분산되지 않도록 ‘심리적 울타리’를 구축해야 한다.
스스로의 한계를 인정하고, 불필요한 자극을 차단하며, 자신의 영역에서 빛날 수 있는 일에 집중하는 것이 HSP의 생존 전략이라고 할 수 있다. 결국 불안에서 벗어나는 길은 세상을 바꾸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이해하고 다스리는 것에서 시작한다. 그 과정에서 민감함을 통해 다른 사람을 바라보면 안 된다. 나와 다른 사람을 구분해서 생각하는 것이 도움이 된다. 또한 개인적으로 운동은 큰 효과가 있다. 깊은 생각에서 잠시 벗어나는 해방감을 경험하게 되면 지속적으로 운동을 하게 된다. 달리기나 고도에 집중이 필요한 테니스 같은 운동을 하면 잠시나마 복잡한 생각과 깊은 자극에서 탈출할 수 있다.
나는 생각이 많아지고 불안한 시간을 스스로 잘 관찰해서 그 시간에 유산소 운동을 꾸준히 하고 있다. 물론 일시적이다. 하지만 이렇게라도 공간을 만들어서 잠시 아무런 생각을 하지 않는 상태를 가지는 것이 큰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 오늘은 수업이 없어 쉬는 날이다. 조용히 카페에 와서 글을 쓴다. 아침 9시에는 혼자였던 카페에 사람들 늘어난다. 옆에서 이야기하는 소리가 들린다. 남편이야기, 자녀 사교육 이야기, 돈 이야기 등등.. 나는 조용히 가방에서 이어폰을 꺼내서 볼륨을 높인다.
* Jerome Kagan(1929–2021)은 미국 하버드대학교(Harvard University) 심리학과 명예교수로, 20세기 발달심리학의 대표적 인물 중 하나이다. 그는 유아의 기질(temperament)과 성격 형성에서의 생물학적 요인과 환경적 요인의 상호작용을 실증적으로 규명한 연구로 널리 알려져 있다. 그의 대표 연구 중 하나는 ‘억제형(inhibited)’과 ‘비억제형(uninhibited)’ 기질의 구분이다. 케이건은 생후 4개월 된 영아들을 대상으로 낯선 자극(소리, 사람, 장난감 등)에 대한 반응을 관찰하여, 강하게 반응하는 아이들은 성장 후 사회적 회피와 불안경향을 보이고, 온화하게 반응하는 아이들은 사교적이고 탐색적인 성향을 보인다는 사실을 제시했다. 그는 이를 통해 “성격은 유전적 기질 위에 사회적 경험이 쌓여 형성된다”고 주장했다.
*Elaine N. Aron은 미국의 임상·연구심리학자로, 1990년대 초부터 ‘감각처리민감성(Sensory-Processing Sensitivity, SPS)’이라는 기질적 특성 및 이를 지닌 사람을 지칭하는 용어 ‘Highly Sensitive
Person(HSP)’을 제안하고 대중화한 인물이다. 자신도 HSP임을 밝힌 Aron은 대략 1991년 무렵부터 이 특성을 체계적으로 연구하기 시작했다. 그녀는 HSP를 ‘병리나 장애’로 보지 않고, 인구의 약 15~20%가 보이는 선천적 민감성 특성으로 정의했다. 이 특징은 다음 네 가지 핵심 요소로 구성된다고 보았다: (1) 깊은 처리, (2) 과자극됨, (3) 강한 정서 반응 및 공감성, (4) 미묘한 자극 탐지. 이 모델은 이후 HSP 연구의 기본 틀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