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연말에 답답한 마음을 어디에 둘 곳이 없어서 인터넷을 보다가 우연히 '브런치'를 발견했다. 생소한 이름의 사이트를 나는 그냥 넘기지 못하고 자세히 알아봤다. 그냥 내가 글을 쓰고 싶다고 쓸 수 없는 무엇인가 특별한 곳처럼 느껴졌다. 글이라고는 이십 대 군에 입대하고 소소한 일상을 기록하는 일기장이 전부였던 나는 큰 기대 없이 내 감정을 손끝에 담아냈다.
몇 번이나 떨어졌다고, 브런치 심사 통과하기라는 블로그 글들을 보면서 당연히 한 번에 심사를 통과할 거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하지만 무슨 일인지 브런치는 바로 내게 '작가'라는 호칭을 선물해 줬다.
무슨 주제를 가지고 어떤 글을 꾸준히 써야 할지 아무런 계획도 없던 나는 이것저것 내 삶을 이곳에 던졌다. 처음에는 필명으로 글을 썼고, 속살을 보이기 싫어 나를 좋아 보이게 하는 글들을 남기기 시작했다. 당시 나는 모든 것에 지쳐 어디 하나 의지할 곳을 찾지 못하고 방황하고 있었다. 아버지가 떠나고 몇 년 동안 아무런 감정이 없었는데 시간이 흐르자 그리움을 나를 삼킬 듯 커져만 갔다. 이토록 보고 싶은 사람이었는데 그토록 무정한 아들 노릇을 했나 후회스럽고 나 자신이 원망스러웠다. 하지만 내 삶은 그런 원망을 느낄 여유도 허락받지 못했다. 2020년 위암 수술 후 5년이 지나 완치 판정을 받으면 모든 것이 평온해질 거라고 믿었던 엄마에게 더 큰일이 생겨버렸다.
지방에서 서울을 오가며 엄마의 증세가 그냥 넘길 가벼운 것이 아니라는 것을 온몸으로 직감했다. 그리고 그 불길함은 중증치매 진단으로 우리 형제에게 돌아왔다. 세상이 원망스럽고 온통 어둠뿐이라고 세상을 향해 손가락질을 할 때, 브런치는 내게 그냥 조용한 인식처였다.
글쓰기라는 것이 주는 평온함과 위로의 숲으로 나는 매일매일 퇴근 후 걸어 들어갔다. 육체는 힘들었다. 군인이라는 신분은 절대로 내 몸을 가만히 두지 않았다. 그럼에도 나는 거의 늦은 밤까지 책상에 앉아서 글을 써 내려갔다. 처음에는 재테크 관련 된 글로 많은 관심을 받았다. 지금 생각하면 참 부끄럽지만 내 글이 노출되고 조회수가 올라가면 내 삶의 고통이 조금은 가벼워지는 것 같았다. 그렇게 잘하지도 못하는 돈에 대한 글을 쓰다가 나는 서서히 솔직한 내 삶을 노출할 수 있는 용기가 생겨났다. 아마 그때쯤, 필명에서 본명으로 브런치 계정을 수정했던 거 같다.
그 용기가 <보잘것없는 사람>이라는 나의 첫 에세이를 탄생시켰다. 제안을 받고 낸 책은 아니었다. 글을 쓰다 보니 책으로 낼만큼 분량이 되었고, 아버지에 대한 내용을 담은 글이라서 세상에 밖으로 옮겨두고 싶었다. 그래서 자비출판으로 책을 냈다. 그 이후로 나는 계속 내 삶을 브런치에 옮겼다. 부끄러움 따위는 전혀 의식하지 않고 말이다. 가정에 대한 이야기, 자녀에 대한 이야기, 관계에 대한 이야기 그리고 어머니에 대한 이야기로 차곡차곡 글을 담아냈다.
절대로 괜찮을 수 없는 조금은 힘든 길을 통과하면서 힘들지 않았던 순간은 없었다. 몸도 마음도 너무 힘들어 누구라도 붙잡고 늘어지고 싶은 심정을 꾸역꾸역 누르며 참아냈다. 그 과정에서 브런치의 독자분들은 내게 큰 힘이 되어주셨다. 글재주가 없어서 인지, 댓글을 구경하는 일은 드물었다. 그런데 가끔 진심을 다해서 병간호를 하고 있는 우리 형제를 응원해 주고, 이렇게 버티며 걸어가는 나를 응원해 주는 독자분들이 생겼다. 처음에는 어색해서 어찌 답변을 달아야 할지 고민을 많이 하기도 했는데 이제는 '너무 감사하고 고맙다고' 진심을 다해 다가간다.
"글이라는 것이 흔적을 남기면서 고통을 '승화'시키고 있다고 참 대견하다고 잘 버티고 있다고" 상담 수련을 받으면서 선생님이 내게 말씀해 주셨다. 나는 다행이라고 말씀드리며 아마도 어머니가 준 선물인 거 같다고 말하였다.
부모가 된 입장에서 내 자식이 힘든 인생 조금이라도 버티며 살아가라고 나를 인도하는 것만 같았다. 그렇지 않았다면 5년이라는 시간을 견디기 참으로 어려웠을 테니까. 그래서 참 고맙고 감사하다.
작가라는 단어는 아직도 나를 웃게 만든다. 신비스럽고 왠지 감춰진 것 같은 묵직한 느낌의 호칭이 좋다. 그래서 나는 작가라는 꿈에서 깨고 싶지 않다. 단지 바라는 것이 있다면 고통스럽지만 살아계시는 어머니의 이야기를 계속 브런치 남기고 싶다. 존재하는 것에 대한 글을 남기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것이 없다. 그 존재의 소중함을 충분히 가슴으로 배웠기에 말을 못 하고, 움직이지 못하고, 나를 알아보지 못해도 나는 어머니가 나를 보는 그 눈빛 하나로 그분의 인생을 계속 담아낼 것이다.
그리고 그 기억들을 그 소중함을 나의 하나뿐인 딸에게 작가의 꿈을 담아서 남겨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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