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생했다는 그 한마디
몇 년 전 김 부장 이야기를 책으로 사서 읽었다. 한참 브런치에 글을 많이 올리고 있던 시기에 김부장 이야기는 내게 큰 자극이 되었다. 3권으로 된 책을 정말 금방 읽었던 기억이 난다. 스토리의 전개와 가독성 그리고 공감이 될 수밖에 없는 이야기 감탄을 했었다.
실화를 바탕으로 작가는 내용을 구성했다고 어느 유튜브에 나와서 이야기했었다. 그럴 수 있는 일이기에 아마도 더 재미가 있었던 거 같다. 그래서 그런지 방송으로 시청하면서 여러 가지 생각이 났다. 책에서 상상했던 인물을 배우들이 연기를 하는데 캐스팅이 정말 탁월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전개가 조금 빠른 것과 책에 없던 내용들이 조금 추가되면서 약간 어색한 것들이 존재하기는 하지만 그럼에도 요즘 '김부장'의 입장에서 상황을 생각하는 나날을 보내고 있으니 충분히 잘 만든 것 같다.
김부장 이야기를 보면서 나는 그 상황 속에 나를 넣고 민감하게 생각하곤 한다. 때로는 밉상이고 때로는 바보 같고 때로는 따뜻한 그 평범한 한 남자의 인생이 참 소중하게 느껴졌다. 무엇을 위해 살았는지 잘 알지도 못하고 눈앞에 현실에 자신의 모든 것을 던지며 시간을 보낸 중년의 이야기는 충분히 가치 있다.
나는 회사 생활을 모른다. 하지만 21년 동안 군 조직에서 간부로 있었다. 그래서 그런지 김 부장이 명예퇴직을 할 때 그 심정이 충분히 이해가 되었다. 20년이라는 세월을 클릭 한 번으로 보내버리는 그 과정은 절대로 쉽지 않다. 몇 년 다니다가 그만두는 회사와는 다르다. 나도 전역지원서를 앞에 두고 서명하기까지 많은 감정이 교차되었다. 충분히 준비했다고 생각했지만 막상 앞으로 매달 월급이 사라진다고 생각하니 불안했다. 혹시나 잘못되면 어쩌나? 내 상상속의 밖과 현실이 다르면 어쩌나? 수백번은 노트에 적으며 제2의 인생을 설계했던 거 같다.
주변 사람들은 잠시 지나가는 소리로 그 사람을 추억하거나 뒷말을 남기지만 본인에게는 인생이었고 조직이 바로 자신이었던 그 시간은 절대로 지워지지 않는다. 회사에서 사람이 사라지고 그 자리에 다른 사람이 오면 그 존재가 사라지지만 김 부장 기억 속에 그 자리는 영원히 남을 테니까 말이다.
김 부장 이야기를 보면서 '대기업 부장'과 '서울 자가'에 대해 부럽다고 생각한 적은 없다. 물론 나는 둘 다 경험하지 못했다. 서울 자가 대신에 '경기도 자가'에 거주하고 있고, 부장이라는 타이틀을 가질 수 없는 직장에서 21년을 보냈다. 하지만 직장생활은 충분히 했기에 공감이 되고, 서울에 내 집 마련은 앞으로 살면서 노력을 더 많이 한다면 어쩌면 살게 될 수도 있는 일이기에 괜찮았다.
하지만 '김 부장의 아내'는 진심으로 부러웠다. 특히 김 부장이 퇴직을 하고 그에게 "김 부장 고생했다."라고 말하며 두 팔을 벌리는 그 장면은 내 가슴을 얼얼하게 만들었다. 그 진심 가득한 마음하나면 어쩌면 충분하다는 생각을 했다.
어쩌면 내가 21년 내 젊은 바쳐가면서 일한 곳에서 나왔을 때 그런 소리를 듣지 못해서 부러웠는지도 모른다. 아니면 내가 너무 민감해서 그 표현을 갈망하는지도 모른다. 전역 지원서를 제출했다고 말하자 반응은 거의 무반응이었다. 그동안 보금자리를 마련해 주고, 세금 걱정 없이 살게 해 주고, 넉넉하지는 않지만 가정의 기둥이 되었던 그 시간이 무시당하는 느낌이었다.
"나도 돈 버는데 너만 일하냐?" 이런 식의 태도가 내재되어 있었다. 남녀를 나눠 이야기하고 싶지는 않지만 국적을 떠나 밖에 나가서 적은 돈이라도 벌어오면 모든 게 동등하다고 생각하는 것 같아 서운하기는 했다. 하나부터 열까지 따지고 싶은 마음이 들 때도 있었지만 그냥 내려놨다. 아무리 설명해도 '김 부장 아내'처럼 진심을 다해 고생했다고 하지 않을 것을 알기에. 그리고 나도 잘하지 않았기에 바랄 수도 없는 것을 더 잘 알기에.
관점이 다르고 생각이 다르므로 이 부분은 민감한 이야기이다. 이런 글을 쓰는 내게 '너가 잘했어야지' 라고 말하며 악성 댓글을 달지도 모른다. 완벽한 만족이라는 것이 어렵기 때문에 그래서 이런 부러움이 탄생하고 또 남과 비교하는 게 아닐까 싶다. 나는 내 입장에서 책임지고 살고 있는 것이고, 내 상황에서 생각하는 것 뿐이다.
"밖에 나가서 기죽는 게 싫어서 집 안에서는 왕처럼 잘해주고 싶었어"라는 대사가 있었다. 서로에 대한 사랑과 배려 그리고 존중이 담긴 그 가정이 김 부장이 가진 가장 큰 자산일 것이다. 평범해 보이지만 절대로 평범하지 않은 것을 당연히 가진 김 부장은 절대로 실패한 인생이 아니다.
그래서 결혼할 거라면 배우자가 서로에게 정말 중요하다. 살면서 경험하는 고난과 역경은 회피하거나 조절할 수 없다. 운명처럼 올 것은 오게 되어있다. 문제는 그것들을 마주할 때 옆에서 조용히 차분하게 믿어주는 단 한 사람이다. 아직 인생을 많이 살지는 않았지만 남들보다 힘든 일들을 빠르게 경험했고 지금도 진행 중이다. 하지만 힘들다는 말을 할 수가 없다. 나이를 먹고 어른이 되는 것은 '힘들다'라는 말을 속으로 삼키는 과정인 듯하다. 어릴 때는 그렇게도 잘 나오는 던 그 말이 가슴 안에서 나오지를 못하고 응어리로 남는다.
그 응어리는 아마도 사랑으로 풀어야 하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