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일홍, 百日紅, 草百日紅, 麵鷄冠花, 줄맨드라미
문일평文一平(1888~1939) 선생의 <화하만필花下漫筆> 22째 이야기는 ‘백일홍百日紅’이다. 현재에도 백일홍은 배롱나무(Lagerstroemia indica)와 초본 백일홍(Zinnia elegans Jacq.)을 뜻한다. 화화만필을 연재하던 1930년대에도 마찬가지였는지, 문일평 선생은 배롱나무를 목백일홍으로 구분하여 다루고 있다. 우선 초본 백일홍 중심으로 몇 구절 인용한다.
“목백일홍木百日紅은 본래 이름이 자미화紫薇花니 한국 남쪽에 고유한 자로 옛날부터 이를 백일홍百日紅이라 하였었고 초백일홍草百日紅은 기호畿湖 등지에서 백일홍이라 하나 서도西道에서는 백일화百日花라 하며 일본에서는 백일초百日草라 하는 것이니 멕시코 원산으로 조선朝鮮에 이종移種된 것이었다. … 그러나 귀인貴人이 상완賞玩하는 목백일홍보다는 일반인이 볼 수 있는 초백일홍을 사랑하고 싶다. 이것이 비록 조선의 원산이 아니요 외래外來의 꽃이나 금일에 와서는 널리 퍼져 어느 사람의 정원에서든지 이 꽃을 발견하게 되는 바 아름다운 항기는 부족하되 꽃빛이 예쁘고 화기花期가 장구하므로 사랑을 받게 되니 화판에서는 한 겹으로 내지 열 겹 넘는 것이 있으며 빛깔에는 홍紅 적赤 자紫 황黃 화樺(부들이삭 빛) 백白 등 여럿이 있어 여름에서 가을까지 주인의 눈을 가장 기쁘게 해 준다.”*
문일평 선생은 백일홍의 원산지와 꽃의 특성을 자세히 설명하고, 이미 1930년대 당시에 가정집 정원에 널리 심고 있다고 했다. 초본 백일홍을 정확히 묘사한 문헌인데, 이 백일홍이 우리나라에 언제 전래되었는지는 아직 명확히 밝혀져 있지 않다. 우리 고문헌에서 ‘초백일홍草百日紅’으로 최초로 기록된 <물보>를 통해 18세기로 추정하기도 하지만 '국슈만도람이'로 표기한 이 식물이 백일홍(Zinnia elegans Jacq.)인지도 확실하지 않다. 이제 한자어 식물 명칭인 ‘초백일홍草百日紅’의 의미를 밝히기 위해, 멕시코 원산의 백일홍의 전래 시기를 검토해본다. 아울러 백일홍과 유사한 뜻의 이름을 가진 열대 아메리카 원산의 천일홍의 전래 시기 및 '국슈맨도람이'가 수록된 문헌들이 있는지도 검토해본다.
현재 우리가 백일홍(Zinnia elegans Jacq.)으로 부르는 화초는 멕시코 원산의 1년초이다. 일본에서 간행된 <원색원예식물도감>에 따르면, 1796년에 이르러 처음으로 유럽에 도입되었고, 일본에는1862년 경에 도입되었는데 백일초百日草라는 이름이 붙었다고 한다.** 또다른 일본 문헌 <원예식물도보>에 따르면, 대정(大正) 연간에 일본에 도입되었다고 한다.*** 대정 연간은 1912~1926년이니 도입시기가 일제 강점기 초로 더 늦어진다. 이러한 일본의 백일홍 도입시기로 보아 우리나라에도 19세기 말엽 개항 이후에 도입되었을 가능성이 크다. Z. elegans가 중국으로부터 도입되었을 가능성도 있지만, 이 경우에도 유럽을 통해 중국으로 전해졌을 것이므로 중국에도 일본과 비슷한 시기에 전래되었을 가능성이 있다.
지금까지 내가 접근할 수 있었던 우리나라 식물관련 문헌 중에, 멕시코 원산의 Z. elegans가 학명과 함께 등장하는 가장 이른 문헌은 1932년판 무라타 시게마로(村田懋麿)의 <토명대조선만식물자휘土名對照鮮満植物字彙>이다.***+ 이 책에는 흥미롭게도 Z. elegans의 조선명이 '백일홍'이 아니라 “강셔랍(화) 江西臘(花)”로 기록되어 있다. 중국명도 같으며, “조선과 중국에서 공히 관상용으로 정원과 채소밭에 재배한다.”라고 설명했다. 한편 1937년 <조선식물향명집>에서 Z. elegans는 한자명 ‘백일초百日草’와 함께 한글명 ‘백일홍’으로 수록되었다.
최영전은 <백화보>에서 백일홍(Z. elegans)에 대해, “이 꽃이 우리나라에 들어온 것은 약 2백여 년 전이라고 물보(物譜)에 적혀 있다.”라고 하여 <물보>의 ‘초백일홍草百日紅’을 Z. elegans로 추정하고 있다.**** 그러나 앞에서 살펴본 Z. elegans의 유럽 및 일본 도래 시기에 비추어보면, <물보>가 편찬되었다는 1802년에 우리나라에서 재배되었을 가능성은 대단히 낮다. 빨라야 1862년 경이 되어서야 일본에 도입된 백일홍이 ‘草百日紅, 국슈맨도람이’라는 이름으로 1800년대 초기 우리나라 문헌에 기록되었을 가능성은 매우 낮은 것이다.
<물보>에서 ‘국슈만도람이’로 한글 훈을 단 '초백일홍'에 대해, <송남잡지>에서는 한자어로 ‘면계관화麵鷄冠花’라고 했다. '국슈만도람이'와 면계관화는 모두 현대어로 '국수 맨드라미'를 뜻한다. 계관화나 ‘만도람이’가 현재의 맨드라미(Celosia cristata)임을 감안하면 ‘국수 맨드라미’가 과연 백일홍을 표현하는 지 의문이 생긴다. 맨드라미는 비름과 식물이고 백일홍은 국화과 식물로 과가 다를 뿐 아니라 꽃 모양도 판이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1920년 <조선어사전>에서는 “百日紅(백일홍) (名)(植) (1)千日草 せんにちさう (2)紫薇(자미)に同じ.”*****라고 기재했다. 일본의 산니찌사우(せんにちさう, 千日草)는 현재 우리가 천일홍(Gomphrena globosa)이라고 부르는 꽃이다. 즉 <조선어사전>은 1910년대 우리나라에서 초본 백일홍으로 부르던 것은 Z. elegans가 아니라 G. globosa라고 밝히고 있는 것이다. <조선어사전>도 참고문헌으로 사용한 바 있는 <토명대조선만식물자휘>에도 천일홍(G. globosa)이 "朝鮮名 [百日紅] 백일홍 Paik-yil-hong. 支那名 [千日红] Ch’ien-jih-hung. 千日紅. 草本. 久而不萎. (盛志)"라고 기록되어 있다.*****+ 이것으로 보면, <물보>의 초백일홍이 천일홍(G. globosa)일 가능성도 있는 듯해 보인다. 참고로 G. globosa는 <조선식물향명집>에 '천일초'로 기재되어 있는데, 이는 일본명 "千日草 せんにちさう"의 영향일 것이다.
현대의 <중국식물지>에서는 G. globosa를 중국명 ‘천일홍千日紅’으로 적고 있고 속명으로 ‘화구화火球花’와 ‘백일홍百日紅’을 적고 있다. <중약대사전>에서도 G. globosa의 중국명으로 백일홍百日紅과 불수국沸水菊, 구형계관화球形鷄冠花 등이 기록된 것도 참고할 만하다. 중국에서 천일홍의 이명으로 백일홍과 공 모양 맨드라미라는 뜻의 구형계관화가 사용된 점은 우리나라의 <물보>나 <송남잡지>의 기록과 일맥상통하는 점이 있다. 이 점도 ‘국슈만도람이’가 현재의 백일홍 보다는 천일홍일 가능성을 보여준다고 생각된다. G. globosa는 맨드라미와 함께 비름과에 속하기도 한다.
하지만 여전히 G. globosa의 꽃이나 전체적인 식물체 모습은 맨드라미와는 많이 다르다. 이제 '국슈맨도람이'가 수록된 문헌들을 살펴볼 차례이다. 일제강점기 문헌으로 <조선어사전>과 <만선식물자휘>에 '국수맨도람이'가 나온다. <조선어사전>에서는 “국수맨도람이 (名)(植) 계관화鷄冠花의 일종으로 꽃이 찢어진 것.”*****라고 기록되어 있다. 이것은 당시 사전편찬자들이 ‘국수맨도람이’를 맨드라미의 일종으로 봤지만 일본 식물명을 특정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만선식물자휘>에서는 비름과 Amaranthus caudatus(일본명 ひもげいとう)의 조선명으로 ‘국수맨도람이’를 기재했다. A. caudatus는 <조선식물향명집>에는 수록되어 있지 않지만, 현재 '줄맨드라미'로 불리며 원예용 식물이다. 그리고 줄맨드라미의 꽃차례는 굵은 '국슈' 가락으로 표현할 수도 있을 듯한 모양이다. 그렇다면 <물보>의 '국슈맨도람이'는 천일홍(G. globosa)이라기 보다는 줄맨드라미(A. caudatus)로 추정하는 것이 더 타당할 것이다.
천일홍(G. globosa)과 줄맨드라미(A. caudatus)도 중남미 원산으로 신대륙 발견 이후 구세계에 도입되었다. 일본의 <원색원예식물도보>에서는 G. globosa는 “천화天和(1681~1684), 정향貞享(1684~1688) 년간에 도래”, A. caudatus는 "(책을 발간한 1956년 기준으로) 100년 전에 도래했고, 종자는 식용한다."라고 했다.****** 아직 정확히 검토하지 못했지만, 일본과 비슷한 시기에 중국에도 도입되었을 것이라고 가정하면, 이 식물들은 Z. elegans보다 먼저 우리나라에 도입되었을 가능성이 큰 것이다.
앞에서 추론했듯이 ‘국슈만도람이’가 줄맨드라미(A. caudatus)라면, 우리나라에 줄맨드라미는 18세기에 도래했다고 추정할 수 있다. 이는 일본에 도입된 19세기 중엽보다 빠른 시기이므로, 이 줄맨드라미도 전래 경유지는 일본이 아닐 것이다. <선만식물자휘>에 실린 줄맨드라미의 중국명이 ‘노강곡老羌穀’, ‘노창곡老鎗穀’ 등인데, 노강老羌과 노창老鎗은 모두 러시아를 뜻한다고 하므로, 러시아에서 직접 도래했을 수도 있고, 중국을 경유했을 수도 있다.******+
천일홍(G. globosa)도 19세기 어느 시기에는 도입되어 '백일홍'이라는 이름으로 최소한 1920년대까지는 불리었을 것이다. 그리고 백일홍(Z. elegans)은 천일홍(G. globosa)보다 더 늦은 시기에 우리나라에 도래했다고 추정할 수 있다. Z. elegans는 <선만식물자휘>에서 "朝鮮名 [江西臘(花)] 강셔랍(화)"로 기재되어 있고, 중국명도 같은 "江西臘(花)'인 것을 보면, 중국으로부터 도입되었을 가능성이 있다. 아무튼 아메리카 원산의 백일홍과 천일홍, 줄맨드라미의 도래 시기와 경유지에 대해서는 전문가들의 더 자세한 검토가 필요하다.
한 가지 분명한 것은 백일홍(Z. elegans)이 도입된 다음부터 우리나라 사람들은 천일홍에 비해 백일홍을 더 사랑한 듯하다. 문일평의 글을 읽어봐도 그렇고, 지금도 백일홍이 더 광범위하게 가꾸어지고 있다. 줄맨드라미는 그리 많이 가꾸어지지는 않는 듯 하다. 하지만 천일홍은 주현미와 현철의 노래로 널리 불리고 있으니, ‘닭의벼슬’로도 불리는 맨드라미와 함께 우리나라 사람들이 아끼는 꽃임에 분명하다.
창문 너머로 햇살 가득 비추면 살며시 그대가 올까요
바랜 사진 속 웃음 짓는 그 얼굴 오늘도 꺼내어 봅니다
기약도 없이 가는 세월 잿빛 구름 가리고
이 비가 지나면 오려마 돌아서는 그림자
아 천일이 지나도 그대 떠나간 자리
빗물에 가린 눈물마저도 꽃으로 피어나고
아 천일이 또 가도 언제나 같은 자리
이슬에 젖은 분홍 꽃잎도 같은 하늘을 보네
(https://www.youtube.com/watch?v=s_EFQSExRAo)
천일홍아 천일홍아 홀로 피는 천일홍아!
너 빨갛게 물든 사연을 내가 위로해주마.
천일을 기다리다가 울어 버린 사랑아!
나 또한 혼자 우는 슬픈 사슴 되었다.
님이 올때까지 시들지 마라 나의 천일홍아!
(https://www.youtube.com/watch?v=JmE3g-AkP30)
"올해에도 마당에 우리가 좋아하던 사피니아, 백일홍, 천일홍, 팬지꽃을 심었습니다. 당신이 저 아름다움을 보신다면 얼마나 좋아하실까 당신의 웃는 모습이 떠오르기만 해도 마음 한 구석이 저려옵니다."*******
<김대중자서전> 출간에 붙여 이희호 여사의 쓴 “사랑하는 당신에게”의 첫머리에 나오는 문장이다. 김대중 전 대통령 내외도 생전에 백일홍과 천일홍을 즐겨 가꾸고 감상했나 보다. 머나먼 아메리카 대륙으로부터 근대 역사의 소용돌이를 헤치며 도입된 백일홍과 천일홍은 이제 우리나라에서 누구나 아끼고 즐기는 꽃이 되었다. 아직 줄맨드라미를 감상하지는 못했지만, 혹시 만나면 옛이름 '국수맨드라미'와 '초백일홍'을 떠올리며 느긋하게 감상해야겠다.
<2024.7.28일. 동년 7월 31일 오류 수정 및 전면 개정. 끝>
*화하만필, 문일평 저, 삼성문화문고19, 1972, pp.78~80.
**原色園藝植物圖鑑 Vol.I,, 塚本洋太郞 著, 保育社, 昭和55, p.135
***原色園藝植物圖譜 第5卷, 石井勇義/穗坂八郞 編, 誠文堂新光社, 昭和33, p.658
****백화보, 최영전 저, 창조사, 1963, p.112 (1802년경에 편찬된 <물보>의 원전자료에서 초백일홍 부분을 확인해보지 못했지만 남광우 편 <고어사전>에 "국슈만도람이: 草百日紅 (物譜 花卉)"가 수록되어 있었다.)
****+토명대조선만식물자휘, 1932
***** "百日紅(백일홍) (名)(植) (1)千日草 せんにちさう (2)紫薇(자미)に同じ", “국수맨도람이 (名)(植) 鷄冠花の一種, 花の裂けたろもの.” - 朝鮮語辭典, 朝鮮總督府, 1920
*****+ 현대의 <중국식물지>에서는 G. globosa를 중국명 ‘천일홍千日紅’으로 적고 있고 속명으로 ‘화구화火球花’와 ‘백일홍百日紅’을 적고 있고, <중약대사전>에서도 G. globosa의 중국명으로 백일홍百日紅과 불수국沸水菊, 구형계관화球形鷄冠花 등이 기록된 것도 참고할 만하다. 즉 백일홍과 천일홍은 뜻이 비슷하여 상호 통용되는 식물명이었다고도 할 수 있다.
******原色園藝植物圖譜 第6卷, 石井勇義/穗坂八郞 編, 誠文堂新光社, 昭和33, p.809
******+<토명대조서만식물자휘>에서는 줄맨드라미에 대해 "국수 Kuk-su. は素麺の義なり. 朝鮮の俗名は蓋し穂形に取る. 穂は猪を飼ふべく, その粒は粥に炊ぎて食ふべし. 故に穀を 以て名く. 高麗は朝鮮, 老羌, 老鎗は 共に 露士亞の謂なり. 高麗穀は朝鮮栗, 老羌穀又は老鎗穀は西伯利栗と呼ぶが如し. 鮮滿各地の苑圃に栽植せらる."라는 해설을 달고 있다. "국수(Kuk-su)는 소면素麺이라는 뜻으로, 조선의 속명은 대개 이삭 모양에서 취했다. 이삭은 돼지에서 먹이고, 그 낱알은 죽으로 끓여 먹는다. 그러므로 곡穀으로 이름을 지었다. 고려는 조선, 노강老羌과 노쟁老鎗은 러시아를 말하므로 고려곡高麗穀은 조선 속栗, 노강곡老羌穀 또는 노쟁곡老鎗穀은 시베리아 속栗이라고 부르는 것과 같다. 조선과 만주 각지의 정원과 채마밭에 재배한다."정도로 번역할 수 있다. 줄맨드라미가 돼지 사료로 사용되었고, 죽으로도 끓여먹었다는 기록이 흥미롭다. 이러한 식용 목적 때문에 우리나라에서 '국수맨드라미'라고 했을 가능성도 있다. 아미도 이 용도가 사라지면서 현재 식재하는 경우가 줄어들었을 것이라고 추정해본다.
*******김대중자서전 1, 삼인, 2010. p.11.
+표지 - 천일홍 (2022.11.12 장성)
### 췌언 ###
[2024.7.29일 독자 유의사항 추가] - 조선총독부 간행 <조선어사전>에는 '천일홍'이라는 단어는 수록되지 않았고, '紫薇'는 "紫薇(자미) (名)(植) 百日紅 さるすべり. (百日紅, 怕痒花)."로 수록되어 있다. さるすべり는 Lagerstroemia indica(배롱나무)의 일본명이다. 이 <조선어사전>에서 백일홍을 초본은 Zinnia elegans, 목본은 Lagerstroemia indica라고 기록한 것을 근거로 <물보>와 <송남잡지>의 초백일홍을 천일홍(Gomphrena globose)으로 추정하는 것은 근거가 부족하다. 이 글은 한 아마추어 식물애호가의 추정이므로, 앞으로도 더 19세기 문헌의 초백일홍이 무엇인지는 더 연구가 필요하다. 우리말 이름인 '국슈맨도람이'라는 이름이 있는 것으로 보아 당시 우리나라에서 재배 혹은 자생하는 식물임에는 틀림없는 듯하다. 또한 '국슈맨도람이'가 현재의 백일홍(Z. elegans)이 아닐 가능성은 매우 크다.
[2024.7.30 추가] 1932년에 간행된 무라타 시게마로(村田懋麿)의 <토명대조선만식물자휘土名對照鮮満植物字彙>를 찾아보았다. G. globosa와 Z. elegans가 모두 수록되어 있었다. 천일홍(G. globose)에 대해서는, 조선명은 백일홍, 중국명은 천일홍이라고 기록했다. 백일홍(Z. elegans)에 대해서는 조선명, 중국명 공히 “강셔랍(화) 江西臘(花)”로 기록하고 “조선과 중국에서 공히 관상용으로 정원과 채소밭에 재배한다.”라고 설명했다. 이것은 1920년 <조선어사전>에서 百日紅이 (초본일 경우) 일본어 천일홍(G. globose)으로 풀이한 것과 일치하는 정보이다.
[2024.7.31 추가] <토명대조선만식물자휘>에서, 천일홍(G. globose)에 대해 “맨드라미(けいとう), 색비름(はげいとう), 줄맨드라미(ひもげいとう) 등과 함께 애완용으로 재배한다.”라고 적고 있는 점이다. 줄맨드라미는 학명이 Amaranthus caudatus이며, <조선식물향명집>에는 수록되어 있지 않다. 그러나 줄맨드라미는 ‘국수 다발’을 ‘줄’로 표현할 수 있다는 생각에 <선만식물자휘>에서 A. caudatus를 찾아보았더니, 과연 조선명 ‘국수맨도람이’로 수록되어 있었다. 그렇다면 <물보>의 ‘국슈맨도람이’와 <송남잡지>의 ‘면계관화’는 천일홍(G. globose)일 가능성은 거의 없어지고, 대신 ‘줄맨드라미’일 가능성이 훨씬 커진다. 이렇게 새롭게 알게 된 사실을 바탕으로 백일홍, 천일홍 관련 글을 수정했다. 이 과정에서 산만한 글이 더 산만하게 되었다. (언젠가 시간을 내어 전면 개정을 해야겠다.) 오류를 발견하는 과정에서 페친님들의 댓글 의견이 큰 역할을 했음을 밝혀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