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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다 Jan 27. 2021

엄마의 식탁 #01 프랜치 토스트

-  hoxy 잊을 수 없는 빵이 있나요?

연금매장, 그 빵집.

나이가 한 자릿수에 머물렀던 그 시절의 이야기다. 한 블록 넘어 빠바와 뚜쥬가 있는 지금과는 달리, 그 무렵에는 동네에 빵집이 많지 않았다. 빵이라는 것은 대부분 슈퍼에서 판매하는 공산품이 대부분이었고, 드물게 있는 빵집도 왠지 무거운 분위기라서 어린아이가 쉽게 들어갈 수 있는 곳은 아니었다. 

어린 시절 먹었던 것들은 쉽게 지워지지 않는다. 빵을 싫어하는 둘째형은 반년에 한번 정도는 공산품인 크림빵이며, 보름달 같은 빵을 어디선가 잔뜩 구해와서 우유와 함께 먹기도 한다. 아마 유년시절에 대한 회귀, 향수 같은 것이지 싶다. 대체로 어딘가 힘들어 보이는 날이면, 그 퍽퍽한 빵들을 한가득 사 왔으니 말이다. 입안 가득 그 빵들을 우겨넣고, 꽉꽉 씹었던 것은 울분이거나 본인의 처지였겠지.


그 무렵 나는 종종 엄마와 서울 서부역에 있는 연금매장에 장을 보러 갔다. 연금매장은 공무원 가족이 이용할 수 있는 일종의 할인마트였다. 그 때문인지 항상 손님들보다는 점원들이 많았던 기억이다. 서점을 비롯한 레포츠용품, 식료품, 화장품, 정육점, 가전제품 등의 개별 매장이 있었다. 그리고 그 당시 내가 아는 가장 큰 빵집이 그곳에 있었다. 


엄청나게 큰 쇼케이스에 각양각색의 케이크와 빵이 전시되어 있었다. 그럼에도 그 빵집에는 특별한 이름이 없었다. 우리는 그곳을 '연금매장 빵집'이라고 불렀다. 내게는 애증의 빵집이기도 하다. 그곳은 내가 가장 싫어하는 화이트 초콜릿 케이크를 파는 곳이었고, 내가 가장 좋아했던 오트밀 레이즌 쿠키를 판매하는 곳이기도 했다.

 


화이트 초콜릿 케이크.

화이트 초콜릿 케이크는 가족 누군가의 생일 때마다 으레 구입하던 것이었다. 하지만 나는 화이트 초콜릿이 너무 싫었다. 싫다는 표현으로는 부족하다. 혐오했다. 그래서 촉촉한 빵 겉면에 플라스틱처럼 딱딱하게 코팅된 화이트 초콜릿을 걷어내고 먹고는 했다. 그럴 때마다 부모님께 꾸지람을 들었고, 토할 것 같은 기분으로 억지로 그것을 먹어야 했다.(나는 지금까지도 화이트 초콜릿을 싫어한다, 아니 혐오한다) 


특별히 가리는 것 없이 먹성이 좋았던 내게도 식도로 넘기는 것이 고난처럼 여겨지던 것들이 있었다. 그것은 삶아서 물컹한 가지나물과 카레에 들어간 물컹한 당근, 근본 없는 화이트 초콜릿으로 코팅된 케이크였다. 가지나물도 카레에 들어간 당근도 잘 먹게 되었는데도, 화이트 초콜릿은 지금도 여전히 극복하고 싶지 않은 과제이다.  

어쩌면 화이트 초콜릿이 싫었던 이유는 다른 곳에 있을지도 모른다. 내게는 네 살 터울의 큰형이 있다. 불행하게도 나는 큰형과 같은 날에 태어났다. (그래서 둘째형은 종종 쌍둥이라고 놀린다) 그렇기 때문에 오롯이 나를 위한 케이크를 받아본 적이 없었다. 내 생일날인데도 항상 초가 네 개 더 꽂혀 있었다. (당시에는 내가 겉늙은 것도 그 탓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촛불을 끄는 것도 형의 역할이었다. 생일날은 즐겁지 않았고, 오히려 소외된 기분마저 들었다. 


그래서 성인이 되어서도 생일에 대해 시큰둥하게 되었다. 여전히 생일날은 내게 특별한 날이 아닌 것이 되었다. 어린 나이였지만, 내가 울고 보채면 부모님이 힘들어하실 것 같아서 내색하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그날들을 떠올리면 울 것 같은 표정의 내가 보인다. 그 소외와 인내의 쓴 맛 때문에 그 화이트 초콜릿으로 뒤덮인 케이크가 싫어졌는지도 모르겠다. 




오트밀 레이즌 쿠키

연금매장에 장을 보러 가는 날이면, 서점에서 보고 싶은 책 한 권과 그 빵집에서 파는 커다란 쿠키를 손에 쥘 수 있었다. 바삭하고 으스러지는 쿠키가 아니라 촉촉하고 쫀득한 쿠키였다. 쿠키라는 것이 쫀득하고 달콤할 수 있다는 것은 왠지 이상하지만, 그 오트밀 레이즌 쿠키는 나이가 들어서도 늘 갈망하던 추억의 맛이 되었다.   


수 십 년이 지나 노량진에서 공부를 하고 있던 친구를 만나러 갔을 때의 일이다. 오랜만에 만난 친구에게 빵이라도 건네줄 생각으로 근처의 작은 빵집에 들어갔다. 그가 좋아할 만한 빵을 몇 개 고르고, 마침에 눈에 띄었던 매대에 있던 쿠키를 집어 함께 계산했다. 

르뱅 쿠키 먹고 싶다! 


친구가 듣던 강의가 끝나길 기다리면서 그 쿠키를 한입 베어 물었다. 그 순간 나는 세상과 단절되어 어딘가 높고, 깊은 곳에 도달한 기분이었다. 쫀득한 식감과 독특한 향은 유년시절의 기억을 불러왔다. 한동안 잊고 지냈던 일이다. 나는 격하게 감동했다. 당장이라도 그 빵집으로 달려가 레시피를 알려달라고 하고 싶었고, 아무 상관없을 아르바이트생에게 청혼하고 싶은 생각도 들었다. (단지 그 쿠키를 판매했다는 죄로 말이다) 




건포도 식빵

건포도 식빵이라는 존재는 놀림거리가 되어버린 모양이다. 민트가 첨가된 식품이나 파인애플이 올라간 하와이안 피자처럼 존재 자체를 부정당하고 있는 것이다. 그 반열에 화이트 초콜릿이 포함되지 않았는지 모르겠지만 말이다. 내게 건포도 식빵은 그리운 것이다. 엄마는 연금매장에 가는 날이면, 건포도가 가득 든 식빵을 세 근 이상 구입했다. 


시월의 밤벌레처럼 엄청난 식탐을 자랑하는 성장기 아이들에게 다양한 간식을 제공하기 위해 고군분투하던 엄마에게 천군만마와 같았던 것은 식빵이었을 것이다. 감자와 계란, 오이를 넣은 샌드위치나 직접 만든 딸기잼이나 토마토잼만 바르면 훌륭한 간식이 되었기 때문이다.  나 같은 경우에는 식빵을 주먹으로 압축시킨 후 씹어 먹는 것을 좋아했는데, 그럴 때마다 가족들은 나를 이상한 눈으로 바라보았다. (요즘에도 생라면과 보이차를 같이 먹거나, 감자튀김을 아이스크림에 찍어먹으면 그런 눈으로 쳐다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자들만 득실대던 집이라 그랬는지 몰라도 식빵은 항상 처치 곤란한 지경에 이르는 경우가 많았다.

유통기한 임박!




계란물 입힌 식빵, 프랜치 토스트

그때마다 엄마는 이상한 요리를 만들었다. 

커다란 볼에 계란과 우유, 설탕을 넣어 휘휘 저어서 풀어놓았다. 그리고 꺼내 놓은 유통기한이 임박한 빵을 잘 풀어진 계란물에 적셔서 적당히 달궈진 프라이팬에 올려 앞뒤로 노릇하게 굽는 간식이었다. 이따금씩은 계란물을 입힌 빵의 표면에 빵가루를 묻혀서 굽기도 했는데, 그것은 그것대로 바삭한 느낌이 매력적이었다. 엄마가 만들었던 그 이상한 요리가 프렌치토스트로 불린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은 그 후로도 꽤 오랜 시간이 지나서였다.


엄마의 프렌치토스트에 대해서는 세 가지 기억이 또렷하다. 

하나는 유통기한이 임박한 식빵으로 만들었다는 것에 대한 불신(?)과 그것으로 인한 불만. 또 다른 하나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달콤하고 고소하면서 촉촉한, 그리고 이따금씩 씹히는 건포도의 쫄깃한 식감과 달달한 향은 거부할 수 없는 것이었다. 그리고 마지막 하나는 그렇게 만들어진 프랜치 토스트의 양은 어마어마해서, 삼 형제가 다 먹어치우리라고는 생각할 수도 없을 정도로 높은 탑이 쌓인다는 것이다.(우리 삼 형제는 그것들을 훌륭하게 클리어했다, 물론 대부분은 내가 먹었겠지만)


요리라는 것은 이상하다. 똑같은 재료와 동일한 레시피로 그 형태가 만들어져도, 그 맛은 흉내 낼 수 없다.

엄마의 등 뒤에서 지켜보면, 적당한 양의 계란과 적당한 양의 설탕과 적당한 양의 우유가 전부였다. 세밀한 측량 같은 것은 없었다. 아무리 좋은 레시피를 구해서 완벽한 프렌치토스트를 만든다고 하여도, 그 맛을 낼 수는 없다. 사실 그 이유는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추억 보정의 맛'이겠지.


이따금씩 나도 프렌치토스트를 만든다. 

레시피는 참고하지 않는다. 적당한 계란과 적당한 설탕, 적당량의 우유를 넣고 휘휘 저어 계란물을 만들고 빵을 적셔서 구워낸다. 그리고 가끔은 시나몬을 뿌리거나, 사각거리는 식감을 위해 조리가 끝난 토스트 위에 설탕을 뿌리기도 한다. 내가 프렌치토스트를 만드는 날은, 식빵의 유통기한이 임박했을 때이다.




[프렌치토스트를 만들어 봅니다]

재료

식빵, 계란(식빵 1장당 계란 1개), 우유(우유는 계란과 1:1), 취향에 따라 계핏가루. 버터 혹은 오일. 설탕, 소금


순서 

1. 식빵은 원하는 크기나 모양으로 자른다. 

2. 식빵이 잠길 만한 크기의 용기에 우유와 계란을 1:1로 넣고, 약간의 소금을 넣어준다. 가염버터를 사용할 경우에는 소금을 넣지 않아도 좋다.

3. 불에 달아오른 팬에 기름 또는 버터를 발라 가열시킨다.

4. 빵에 계란물을 입히고, 가열된 팬 위에 올린다.

5. 노릇노릇하게 구워진 토스트를 접시에 올리고, 계핏가루를 뿌리거나 꿀 등을 올려서 먹는다.


[팁] 촉촉하고 풍미가 진한 프렌치토스트를 원하면 빵에 계란물을 충분히 적시고, 겉은 촉촉하고 속은 쫄깃한 식감을 원하는 경우 겉면에 계란물이 스며드는 정도만 담근 후에 꺼낸다.



연희동 곳간의 브리오슈 식빵으로 만든 프랜치 토스트를 먹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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