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메리칸 셰프
신나는 라틴 재즈 음악과 주인공인 셰프가 자신만의 길을 만들어 나가는 과정을 따뜻하게 그려낸 영화 ‘아메리칸 셰프’.
영화는 주방에서 요리 중인 셰프와 직원의 대화로 시작한다.
셰프: You walk here?
셰프: Alright good, turn around
셰프: Legs out
셰프: The bag
셰프: Gotta still hit the farmer's market
셰프: What time is it?
직원: 10:00-ish.
셰프: It's 10:00?
직원: Mm-hm.
셰프: I gotta pick up the kid.
셰프: Where's Tony?
직원: Tony and I were out late last night.
직원: But don't worry, he's gonna be here.
셰프: You got this?
직원: Yes.
직원: He's not gonna flake. Neither am I.
위 대화에서 번역을 고민했던 몇몇 문장과 실제 자막을 살펴보자.
내 번역: 다리는 밖으로
실제 자막: 다리 저쪽
‘Leg’는 다리, ‘out’은 바깥쪽을 의미한다. 영상을 보면 셰프가 다리를 저편으로 가리키고 있으므로, ‘다리는 밖으로’라고 번역했다.
실제 자막은 ‘다리 저쪽’이다. 두 글자나 줄이면서도, 영상과 매칭도 훨씬 잘 된다. 실제로 소리 내 말해보았을 때도 내 번역과 비교했을 때 더 자연스럽다고 느꼈다.
내 번역: 비닐 좀
실제 자막: 벗겨
‘bag’ 하면 흔히 ‘가방’을 떠올리지만, 영상 속 장면에서는 돼지고기를 감싼 비닐 포장지를 가리킨다. ‘plastic bag’이 비닐봉지, 포장지를 뜻하는 것처럼, 여기서도 ‘bag’은 비닐을 의미한다. 영상 자막에 ‘포장지 좀 벗겨’라고 쓰기에는 영어 대사가 ‘the bag’로 너무 짧았다.
그래서 ‘비닐 좀’이라고 번역했으나, 실제 자막은 ‘벗겨’이다. 이미 화면에서 비닐을 벗기고 있기 때문에 ‘비닐’이라는 단어를 생략하고 ‘동작 중심’으로 번역한 것이다. 글자 수를 줄였을 뿐만 아니라, 음절 수마저 똑같다. 영화 번역가의 고민과 센스가 느껴졌다.
내 번역: 장 보러 가야 해
실제 자막: 농산물 시장 가야 해
‘Gotta’는 ‘have got to’의 줄임말로, ‘~해야 한다’는 뜻이다. Hit은 흔히 ‘때리다’라고 알고 있지만, 구어체에서 ‘어떤 장소에 가다, 들르다’의 의미로 사용된다. 유명한 노래 ‘Hit the road Jack’에서도 ‘(길을) 떠나가라’라고 말하는 뜻과 유사하다.
Farmer’s market이 의미하는 농산물 시장을 살릴지 말지 고민했다. 그래도 영상 자막은 간결한 게 좋다는 생각에 나는 ‘장 보러 가야 해’라고 번역했다.
실제 자막에서는 농산물 시장을 살린 ‘농산물 시장 가야 해’였다. 이후 셰프가 아들과 함께 장을 보는 장면이 나오는데, 직거래 시장에서 농산물 생산자들이 신선한 과일과 채소를 팔고 있다. 따라서 신선한 직거래 시장의 이미지를 그대로 살린 ‘농산물 시장’도 적절해 보인다.
내 번역: 어젯밤에 토니랑 술 마셨거든요
실제 자막: 어제 같이 늦게까지 술 퍼마셨어요
여기서 ‘Were out late’는 단순히 늦게까지 밖에 있었다는 의미보다, 술자리를 가졌다는 뉘앙스를 포함한다. 그래서 나는 ‘어젯밤에 토니랑 술 마셨거든요’라고 번역했다.
실제 자막은 ‘어제 같이 늦게까지 술 퍼마셨어요’이다. 직원의 성격을 고려해 보다 날 것의 거친 말투를 살린 것이다. 특히, 이후 장면에서 같이 술을 마셨다는 토니는 차 안에서 자다가 해롱거리며 일어난다. 전날 늦게까지 술을 퍼마셨다는 게 이해가 되는 장면이다.
이렇게 영화 번역에서는 단순한 정보 전달을 넘어, 화자의 개성을 반영하는 것도 정말 중요하다.
내 번역: 저희가 잘할게요
실제 자막: 저희만 믿으세요
<Flake>
fail to keep an appointment or fulfil a commitment, especially with little or no advance notice
약속을 지키지 않거나 (특히 사전 통보 없이) 의무를 이행하지 않는 것
‘Flake’는 ‘약속을 지키지 않다’, ‘의무를 다하지 않다’는 뜻의 구어적 표현이다. ‘Flaky’가 원래 ‘얇게 벗겨지는’, ‘부스러지는’과 같은 뜻으로 쓰이다가, 사람에 대해서 ‘책임감 없는’, ‘변덕스러운’이라는 의미로 확장되었다고 한다. 그래서 동사 flake도 ‘약속을 어기거나 해야 할 일이나 의무를 저버리다’는 의미로 자연스럽게 자리 잡았다고 한다. Flake는 콘플레이크로만 알고 있었는데, 새로운 뜻을 배웠다.
"He’s not gonna flake, Neither am I"
셰프는 아이도 데리러 가야 하고, 농산물 시장에도 가야 하는 상황에서 직원들에게 주방을 맡긴다. 그러자 직원은 위와 같이 대답하는데 즉, 토니가 술을 많이 마시긴 했어도 금방 와서 잘할 거고 자기도 그러겠다는 의미이다. 그래서 나는 ‘저희가 잘할게요’라고 번역했다. 저희라고 한 이유는 좀 더 간결하게 표현하기 위해서다.
실제 자막에서는 ‘저희만 믿으세요’이다. 일을 잘하겠다는 것과 동시에 셰프를 안심시키려는 의도도 담은 것이 아닐까 싶다. 풀어보자면 ‘저희가 알아서 잘할 테니 믿고 다녀오세요.’를 간결하게 함축한 번역이랄까.
마지막으로 영어 대사, 내 번역 그리고 실제 자막을 비교해 봤다.
Legs out
다리는 밖으로 | 다리 저쪽
The bag
비닐 좀 | 벗겨
Gotta still hit the farmer's market
장 보러 가야 해 | 농산물 시장 가야 해
Tony and I were out late last night
어젯밤에 토니랑 술 마셨거든요 | 어제 같이 늦게까지 술 퍼마셨어요
He's not gonna flake. Neither am I
저희가 잘할게요 | 저희만 믿으세요
영화 번역은 단순한 직역이 아니라 상황과 캐릭터의 성격, 대사나 장면과의 조화까지 복합적으로 고려해야 하는 것 같다. 번역 과정을 기록하면서, 짧은 한 줄 자막에도 영화 번역가의 많은 고민과 센스가 담겨 있다는 걸 다시금 느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