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메리칸 셰프
오늘은 셰프인 주인공이 일하는 레스토랑에 유명 비평가가 오는 날. 농산물 시장에 식재료를 사러 가는 길에 아들을 레스토랑에 먼저 내려주려고 한다. 하지만 아들은 아빠를 자주 만나지 못해 조금이라도 더 같이 있고 싶어 한다.
[대사]
아빠: Listen, I gotta go to the farmers' market, pick up some ingredients.
아들: OK. Can I come?
아빠: I thought I'd drop you off at the restaurant. Molly's there.
아들: No, I wanna go with you.
아빠: You're not gonna ask me for everything you see?
아들: No.
[내 번역]
아빠: 잘 들어, 아빠는 식재료 사러 농산물 시장 가야 돼
아들: 네, 같이 가도 돼요?
아빠: 식당에서 내려줄게. 거기에 몰리 있을거야
아들: 싫어요, 아빠랑 갈래요
아빠: 뭐 사달라고 하면 안 돼
아들: 네
[실제 자막]
아빠: 그리고 아빠는 식재료 사러 농산물 시장 가야 해
아들: 알았어, 따라가도 돼?
아빠: 레스토랑 가서 몰리랑 놀고 있어
아들: 싫어, 아빠 따라갈래
아빠: 또 떼쓰려고?
아들: 아니
대사 번역에서 인물 간의 관계를 파악하는 건 중요하다. 특히, 우리말은 관계의 성격에 따라 존댓말과 반말로 구분되기 때문에 더욱 신중해야 한다.
처음엔 아들이 어리니까 존댓말을 써야 하나 고민했지만, 실제 자막은 반말이었다. 미국 가족 문화가 상대적으로 수평적이기도 하고, 반말이 더 친근한 부자 관계를 보여줄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I gotta go to the farmers' market
언뜻 보면 두 표현은 큰 차이가 없다. I gotta go에 담긴 의무감을 표현하는 데 모두 적절하다. 그래도 혹시 차이점이 있는지 찾아봤더니, ‘최종희의 생각 변전소’ 블로그에서 답을 찾을 수 있었다.
‘하다’: 행동하긴 하지만 앞말이 뜻하는 상태가 되는 것에 필요한 정도로만 하는 것.
‘되다’ 어떤 행동을 해서 그걸 이루어낼 정도로 확실하게 하는 것.
따라서, 적극성/확실성/완결성과 간접적 강요의 면에서는 ‘되다’가 ‘하다’보다 더 나아간 표현이다. ‘난 이걸 해야 해’와 ‘난 반드시 이걸 해야만 돼’를 비교하면 차이가 좀 와닿는 듯하다.
이처럼, 언어에 화자의 의사/의도가 개입되면, 그 정도에 따라서 ‘중립적 언어’와 ‘주관적 언어’로 구분한다. ‘하다’는 비교적 ‘중립적 언어’라 할 수 있고, ‘되다’는 ‘주관적 언어’라고 할 수 있다.
I gotta go라는 짧은 영어 번역하는 데 이렇게까지 찾아봐야 하나 싶지만, 이런 소소한 우리말 디테일이 쌓이면 번역이 더 재미있어진다.
다시 돌아와서, 나는 ‘가야 돼’라고 번역했지만, 실제 영화 번역에서는 ‘가야 해’라고 되어 있다. 농산물 시장을 가는 게 엄청난 의지로 이루어내야 할 정도는 아니니 자연스럽게 ‘가야 해’라고 해도 좋을 것 같다.
I thought I'd drop you off at the restaurant. Molly's there
나는 Molly’s there를 직역에 가깝게 ‘거기에 몰리 있을거야.’라고 번역했지만, 실제 번역은 ‘몰리랑 놀고 있어’였다. '놀고 있어'라고 하면 아들이 레스토랑 있는 몰리와 함께 놀기를 바라는 아빠의 의도가 더 명확해진다.
나는 원문 너머에 있는 상황을 고려해 의역하는 건 아직 어렵다. 괜히 없는 말을 지어내는 것 같기도 하고, 괜히 영어 좀 한다는 사람이 번역이 다르다고 꼬리를 잡지 않을까 해서. 하지만 지금부터 나만의 번역의 의도와 논리를 잘 쌓아 둔다면, 내 번역에 더 떳떳해지지 않을까.
You are not gonna ask me for everything you see?
나는 이 문장을 ‘뭐 사달라고 하면 안 돼’라고 번역했다. ‘보이는 거마다 사달라고 하면 안돼’에서 나름대로 축약하고 다듬은 문장이다. 해석하자면 아들이 아빠를 따라간다고 하니까, 가서 뭐 사달라고 하지 말고 조용히 있으라고 미리 당부하는 말이다.
실제 번역은 ‘또 떼쓰려고?’라고 되어 있었다. 번역가가 문장을 간결히 다듬으려고 노력한 티가 많이 보였다.
뭐 사달라고 하다 = 뭐 사달라고 조르다 = 뭐 사달라고 떼쓰다 = 떼쓰다
대략 이런 함축 사고 과정을 거치지 않았을까? 이렇게 줄인 ‘떼쓰다’라는 동사를 다시 ‘떼쓰지 마’, ‘떼스면 안돼’ 등으로 이리저리 굴려보다가 ‘또 떼쓰려고?’가 되었을 것이다.
번역은 다양한 선택지를 두 눈으로 쉽게 볼 수 있기에 결정하기가 더 어려운 것 같다. 이것도 괜찮고, 저것도 괜찮으니 그저 최선의 선택을 할 수밖에.
그럼, 마지막으로 영어 대사, 내 번역, 그리고 실제 자막을 비교해 본다.
아빠: Listen, I gotta go to the farmers' market, pick up some ingredients.
잘 들어, 아빠는 식재료 사러 농산물 시장 가야 돼
그리고 아빠는 식재료 사러 농산물 시장 가야 해
아들: OK. Can I come?
네, 같이 가도 돼요?
알았어, 따라가도 돼?
아빠: I thought I'd drop you off at the restaurant. Molly's there.
식당에서 내려줄게. 거기에 몰리 있을거야
레스토랑 가서 몰리랑 놀고 있어
아들: No, I wanna go with you.
싫어요, 아빠랑 갈래요
싫어, 아빠 따라갈래
아빠: You're not gonna ask me for everything you see?
뭐 사달라고 하면 안 돼
또 떼쓰려고?
아들: No.
네
아니
영상 번역은 자막이 짧은 시간에 빠르게 지나가므로, 함축적일수록 관객은 영화에 더 쉽게 몰입한다. 줄일 수 있다면 줄이되, 이유와 의도는 있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