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은 것이 아니라 다른 모습으로 있었던 것뿐이다
*
작은 인정 한 마디에 키워 가기 시작한 작가의 꿈,
실력보다도 꿈이 앞섰다.
재능보다도 하고 싶은 마음이 앞섰다.
문예창작학과 입학이라는
당장 눈앞의 목표를 좇을 때는
실력보다도 꿈이 큰 것 같아도
해낼 수 있을 것 같은, 해내고 싶은,
마음속 강한 오기가 더 컸다.
하지만 오기로 들어온 문창과에서
어느 순간부터
실력, 재능, 노력보다도
반드시 작가의 꿈을 이뤄내야만 한다는 강박이
걷잡을 수 없을 정도로 커져만 갔다.
이제 문창과에도 왔으니 하루빨리 증명해내고 싶었다.
너 같은 애가 무슨 예술을 하냐는 친구에게,
이미 될 애들은 뭐가 돼도 됐다고 말하던 선생에게,
내 소설을 읽고 어차피 안 되니까
공모전에 낼 생각도 하지 말라던 교수에게,
나도 할 수 있다고 보여주고 싶었다.
가진 것은 없었지만,
책과 글쓰기를 순수하게 좋아하던 마음은
날이 선 비판 앞에서 완전히 사라졌다.
오로지 ‘작가’라는 타이틀을 따서
무시당하기 싫은 치기 어린 욕심과
맞지 않을 정도로 거대해져서
기괴하게 변해버린 꿈이 남았다.
솔직히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다.
나의 실력과 재능의 부족함을.
지금의 실력과 꿈의 간극이 크다는 것을.
순수했던 꿈이 욕심으로 변했을 때,
큰 부작용이 따랐다.
글을 쓰는 것은 둘째치고
글자를 읽는 행위도 괴로워져서
만화나 짧은 글조차 읽지 못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글자만 보면 울렁거리고 어지럽고 갑갑했다.
그렇게 무한하고 자유롭던 나의 꿈,
나의 세계가 무너졌다.
*
매일 습관처럼 글을 쓰던 내가 글을 쓰지 않았다.
사람들과 자주 만나고
남자친구를 사귀고
계속 술을 마셨다.
꿈과 멀어지는 것은 쉽고 빨랐다.
사람들과 있을 때면 세상 행복하고 즐거워했지만,
혼자 남으면 속이 텅 빈 껍데기처럼 느껴졌다.
할 수 없게 되었으니
어쩔 수 없다고
이렇게 자연스럽게
포기하면 된다고 생각했다.
*
글을 쓰지 않던 나날들 중 하루,
산책을 하다가
말라비틀어져 다 죽은 담쟁이넝쿨이 보였다.
손으로 잡으면 바스락 쉽게 부서질 것 같았다.
볼품이 없었기에 쉽게 지나치려 했다.
그때 갑자기 고양이 한 마리가 나타나서 그 앞에 섰다.
시선이 갔다.
볼품없는 공간에도 따스한 해가 들었다.
고양이는 해가 드는 것을 알고
그 자리에 머물렀다.
나도 잠시 머물러 햇살을 받았다.
몇 주 뒤에 다시 찾은 그곳은
살아있는 초록 생명체들로 가득했다.
말라비틀어져 부서질 것 같던
담쟁이넝쿨은 언제 그랬냐는 듯
생생히 윤이 나는 초록색 잎을 뽐냈다.
봄이었다.
죽은 것이 아니라,
계절에 따라 다른 모습으로 있었던 것뿐이었다.
그 사실이 왠지 모르게 위안이 됐다.
계속해도 괜찮다고 나에게 말을 해주는 것 같았다.
포기하고 싶었던 게 아니라,
이유가 필요했다.
타인에게 증명하기 위한 이유 말고
나를 위한 이유.
모두가 아니라 해도 적어도 나만큼은
해야만 하는 이유를 찾고 싶었다.
그걸 나는 담쟁이넝쿨에서부터 찾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