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나의 몸을 사랑하게 되기까지.
의자에 앉으면 넓게 퍼지는 허벅지 살을 보며, 상상으로 오른손에 칼을 들고 내 허벅지 살을 도려냈다. '한... 반 정도만 없으면 예쁠 텐데..' 피가 흐르는 고통을 감당해서라도 살을 도려내고 싶었다. 중학교 때 몇 달 만에 10킬로가 불어나면서, 허벅지에 튼 살이 생겼다. 허벅지 안 쪽에 얇고 짧은 빨간 선들이 생겨나며 미치도록 간지러웠다. 나는 가만히 앉아서 몇 시간이고 긁다가 로션을 바르고 강하게 허벅지를 때렸다. 10번이고, 20번이고, 몇 번이고 반복해 때렸다. 뺨을 맞은 듯 붉어진 허벅지에는 빨간 선이 희미해 보였다. 잠시라도 안정이 되었다.
살면서 한 번도 내 몸을 사랑한 적이 없었다. 거울에 서서 나의 몸을 보면 '사랑받을 자격이 없는 몸'이라는 평가가 들렸다. 불어난 살을 보며 '뭘 이리 많이 삼켰나'싶었다. 그 살들은 내가 닥치는 대로 삼켜온 음식이자 폭력의 결과였다. 나는 늘 감당할 수준을 넘어 음식을 넣고, 또 넣었다. 토할 것 같이 배가 불러도 정수리 끝까지 음식을 욱여넣었다. 그래야 마음이라도 편안했다.
폭식의 원인은 결핍이고, 나는 내게 애정결핍이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하지만 의문이 들었다. 이를테면 어린 시절에 사랑을 넘치게 받았다는 사실들. 나는 경제적으로도 부족함 없이 안정된 가정에서 성장했다는 배경 때문이었다. 엄마는 늘 네게 "너처럼 사랑을 많이 받는 애가 무슨 애정결핍이야 애정과다지."라고 말했다. 나도 그 말에 동의한다. 하지만 뒤늦게 알았다. "사랑"안에는 "안전"을 위한 보살핌이 있다는 것을. 어린시절 나는 늘 위험한 상황에 혼자였다. 그로 인해 안전에 대한 결핍이 생기고 갈망이 커져갔다.
남성이 무서웠다. 어린 시절 경험했던 성추행 때문도 있지만, 남성들이 갖고 있는 무심함과 단순함을 두려웠다. 남성들은 모두 폭력적이라고 생각했다. 어린 시절 아빠가 물건을 부수는 소리를 들었을 때 충격이 잊히지 않는 탓도 있다. 나는 남성을 보면 몸이 굳고 과하게 긴장이 됐다.
정말 몸이 해방되었다고 느낀 건 첫 연애를 시작한 후였다. 나의 첫 애인은 나의 몸을 굉장히 사랑해 주던 사람이었다. 이따금씩 몸매에 대한 평가를 할 때는 부담이 되기도 했지만, 그럼에도 그는 내 몸을 좋아했다. 나도 사랑하지 못하는 내 몸을 아름답고 예쁘다고 말해주는 이가 생기니 기분이 묘했다. 그가 내 몸에 손을 대고 있을 때면 그의 손에 파란 에너지가 느껴졌다. 치유를 받는 느낌이었다. 물론 나도 그의 몸을 좋아했다. 그는 마르고 탄탄한 몸을 가졌는데, 그 몸이 참 예뻤다.
그 중에서도 가장 큰 변화는 가슴이 좋아졌다는 것이었다. 전에는 크고 처진 가슴이라고 신경 쓰지도 않았는데 어느 순간 내 가슴이 예쁘다는 생각이 들었다. 애인이 좋아해서 그런 것도 있었지만, 정말 어느 순간 갑자기 가슴과 사랑에 빠지게 되었다. 그 전까지는 가슴이 싫었다. 나의 가슴은 늘 아팠기 때문이었다.
나는 중학교 때부터 6년 동안 유두 습진으로 고생이 심했다. 매일 가슴에서 진물이 흐르고, 그 진물을 막으려 여름에도 옷을 3겹 입었다. 집에 돌아와서 옷을 벗을 때는 '쩌어억'하는 소리와 함께 하루 사이 굳은 진물 딱지를 뜯어내야 했다. 그 고통이 익숙해질 때쯤 운 좋게도 채식을 시작하고 습진을 탈출했지만, 그럼에도, 다 나아졌다 하더라도, 6년이라는 시간 동안 가슴을 보는 일이 너무 끔찍했다.
나는 그 시간 동안 스스로를 끔찍한 가슴을 가진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어쩔 때는 내 가슴에서 흐르는 진물이, 정말 가슴 아픈 일을 꾹 참아와서 생긴 병이라고 생각해서 더욱 아팠다. 가슴이 울지 못해서 진물로 울어낸다고. 그렇게 믿었다. 그 후로 몇 년이 지나고, 가슴이 옅은 핑크색에 건강한 형태를 되찾았을 때도, 나는 여전히 내 가슴에 과거형의 끔찍함을 붙여주었다. "끔찍했던 가슴"이렇게.
그랬던 내가 맨날 샤워를 하고, 가슴을 들여다보고, 좋은 향기가 나는 바디크림을 잔뜩 사서 가슴에 발랐다. 하루도 빠짐없이 그렇게 로션을 바르고, 가슴을 사랑했다. 신경을 쓰면 쓸수록 가슴이 더 더 좋아졌다. 예쁜 속옷을 입고서는 거울 앞에 서서 흐뭇하게 나를 바라보았다. 그 이후로는 "끔찍한 가슴"과는 영영 작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