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인의 사랑은 결코 엄마가 네게 주는 사랑을 닮을 수 없다는 사실에 대해
그는 자신에게 늘 솔직하게 말해달라고 했다. 기분이 안 좋은 게 있으면 바로바로 솔직하게 표현을 해달라는 말을 꽤 자주 했다. 연애초에 나는 그에게 쉽게 서운함을 이야기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그는 네게 “언제든 기다릴 수 있어. 천천히 마음정리가 되면 솔직하게 말해줘”라는 말을 하곤 했다. 그 말이 참 고마웠다.
이후로 솔직하게 바로 말하기를 노력했다. 마음에 담아두지 않고 바로 이야기를 하는 연습을 하다 보니 그 노력이 우리의 관계를 더 돈독하게 만든다 생각했다. 그가 말실수를 했을 때, 나에게 심한 장난을 쳤을 때, 그의 말에 기분이 상했을 때도 솔직하게 바로 말했다.
하지만 그럴 때마다 그는 나와 거리를 두었다. 너무 미안해서 그렇다는 말만 빙빙 돌리면서 안쓰럽게 고개를 푹 숙이고 있었다. 나의 서운함을 듣고 내가 바란 행동이 따로 있던 것은 아니었지만 침묵을 원한 것은 아니었다. 나는 축 처진 어깨를 하고 있는 그를 안고 괜찮다고 말했다. 먼저 손을 잡고 걸었다. 정말 괜찮다고, 이해한다고 그를 다독였다.
내가 솔직하게 불편함을 말하면 그의 행동을 보고 마음이 더 불편했다. 시간이 필요하다고 말하거나 나와 거리를 두겠지 싶었다. 정말 속상한 사람은 나고, 상처를 받은 사람 또한 나지만, 그를 보는 게 더 큰 죄책감으로 다가왔다. 그래서 해야 할 말을 마음에 담았다. 차곡차곡 쌓다가 더 이상 참으면 죽을 것 같다 싶을 때 이야기를 꺼냈다. 하지만 감정이 터져도 울음이 나지 화가 나진 않았다. 나는 연애를 하며 그에게 단 한 번도 화를 낸 적이 없었다. 애초에 화가 난 적이 드물었다. 대신 나에게 화가 났다. 그에게 향해야 할 분노는 다 내 안으로 향했다. 나는 늘 나를 자책했고 학대했다. 그는 내가 우는 동안 나에게서 또 거리를 뒀다. 늘 나에게 ‘네가 울면 어찌할 바를 모르겠어’라고 말하고는 고개를 숙였다. 그냥 안아주면 좋았을 것을.
생각해 보면 그는 나의 솔직한 모습을 사랑할 수 없는 사람이었다. 그는 나와 엄마의 관계를 보고는 “엄마에게 하는 것처럼, 그 솔직한 모습도 나에게 보여줘”라는 말을 꽤 자주 했다. 나는 그럴 때마다 웃으면서 “감당이 어려울 텐데..? 그런 모습까지 보여주고 싶지는 않아”라고 말했다. 그는 나의 그런 모습도 사랑해주고 싶다며 엄마에게 하는 모습을 보여달라고, 사랑할 수 있다고 자신했다. 그는 알지 못했다. 내가 엄마와 있을 때 모습으로 그를 대하면 그는 네게서 도망갈 것이라는 것을. 내가 보여주고 싶지 않아 하는 데에는 다 이유가 있었다는 것을 말이다.
나와 엄마는 밥을 3시간 동안 먹으면서 수다를 떤다. 그 속에서 하루에 있었던 일들을 솔직하게 터놓고, 해결되지 않은 고민들을 매일 반복해서 이야기하기도 한다. 우리는 함께 욕을 하고, 울고, 다독이고, 또 다시 함께 희망찬 내일을 준비한다. 우리가 말하는 고민 속에서 ‘사건 해결?’ 그건 나중 문제라고 본다. 일단 서로의 아픈 마음을 듣고 위로해 주는 게 우선이다. 우리 관계에는 깊고 짙은 여자들의 감정들이 뚜렷하다. 이를테면 ‘이해, 신뢰, 공감’ 같은 것들 말이다.
그는 언젠가 나에게 분노했다. “차라리 닥치고 공감만 하라고 해. 내가 감정쓰레기 통이야?” 그는 해결되지 않는 나의 고민을 답답해했다. 나를 힘들게 하는 그 친구를 정리하면 되는데 왜 답을 알면서 행동을 하지 않냐고 물었다. 아무리 이유를 설명해도 그는 나를 이해할 수 없었다. 그는 내 방식의 사랑을 모르는 사람이었다. 이를테면 그 친구를 사랑해서 쉽게 정리가 어려웠다는 사실을. 마찬가지로 내가 그를 너무 사랑해서 놓지 못한 것처럼.
그와의 힘듦을 우리 엄마는 30번쯤 들었다. 나는 연애 중에도 일주일에 한 번은 울어서 퉁퉁 부운 눈을 하고 있었다. 엄마는 항상 그런 네게 말했다. “그래도 네가 후회가 남지 않을 때까지 충분히 사랑해 봐” 엄마는 내가 그를 놓는 것을 더 힘들어할 것을 알았다. 그게 우리의 공감이고 사랑의 방식이었다. 힘든 사건은 그저 사건일 뿐, 그 속에서 그를 사랑하는 나의 마음을 공감하는 사람. 그게 우리 엄마다. 그는 우리 엄마처럼 나를 사랑할 수 없는 사람이었다. 물론 바라지도 않았지만 말이다. 감히 엄마와 딸의 사랑을 탐내다니, 네가 애인이야 엄마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