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가 또 다른 내가 되었을 때, 내가 나를 돌보지 못 한 벌을 받는다.
우리는 썸을 탈 때부터 이야기를 정말 많이 했다. 하루 종일 함께 이야기를 하고도 밤을 새워서 이야기를 더 이어나갔다. 과거부터 현재, 미래를 향한 고민들까지, 정말 깊은 이야기를 공유했다. 나는 전갈자리라 나의 비밀을 잘 이야기하지 않는데도, 그에게 나의 모든 이야기를 다 꺼냈다. 이상하게 그에게는 말할 용기가 생겼다. 그의 눈이, 그가 살아온 삶의 배경이, 마치 날 다 이해해 줄 것만 같다 믿게 만들었다.
나는 그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그가 살아온 삶을 상상으로 살아봤다. 그의 삶을 들여다보면 만나본 적 없는 그의 어린 시절로 들어가서 그를 안아주고 싶었고, 지켜주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그와 이야기를 하면 힘들었던 시절의 내가 튀어나왔다. 가끔 그를 꽉 껴안을 때면 내 안에 어린아이가 미소 짓는 모습이 상상될 정도였다. 생각해 보면 나는 그의 아픔을 수용하고 사랑함으로써 나를 사랑하고 싶었던 것 같다.
우리의 사랑은 수많은 이야기로 시작했고, 서로가 더 이상 할 이야기가 없어졌을 때 관계에 권태감이 찾아왔다. 현실적인 상황을 탓하기엔 우리는 늘 위기를 낭만 삼아 사랑을 키워왔다. 현실적인 문제가 아니었다. 편안함이 불러오는 재앙에 가까웠다. 단순히 서로를 잘 알아서 궁금한 게 없는 상태가 아니었다. 우리는 경청하는 이 없이 서로 자신의 이야기만 늘어놓기 시작했다. 서로에게, 연애 초처럼 내 이야기를 듣고 나를 들여다봐달라고, 위로해 달라고 외쳤다.
서로의 이야기를 가득 품은 우리는 결코 서로가 될 수 없었다. 나의 모든 것을 알고 있는 너는 또 다른 내가 되었다. 우리는 자신의 고통을 돌보지 못하는 사람들이었다. 처음부터 그랬다. 처음부터 각자의 아픔을 공유하고, 그 아픔에 공감하고 위로해 주는 상대를 사랑했다. 나 대신 나의 아픔을 들여다봐주는 상대를 사랑했다. 나는 그의 아픔을 진정으로 돌보고 사랑했지만, 나의 아픔에는 무심했다. 그래서 그가 또 다른 내가 되었을 때, 그의 아픔이 보이지 않았다. 그는 나였으니까. 나는 나의 아픔에 무신경한 사람이니까.
연애가 끝나고 그의 카카오톡 멀티프로필이 내려갔다. 그의 프로필 사진은 늘 나, 혹은 우리의 사진이었다. 멀티 프로필이 해제되자, 우리의 모습이 없어지고 그의 본래 모습 보였다. ‘아 맞다, 그는 그였지’ 참 당연한 사실을 뒤늦게 알았다. 집으로 가는 동안 멍하니 그의 프로필을 보았다. 그가 나와의 이별 후 본래 모습으로 돌아왔다는 사실이 좋았다. 내가 드디어 그를 볼 수 있다는 사실에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