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아지에게는 오직 사랑만 바라게 되니까.
생각해 보면 관계가 어떻게 동등할 수 있을까 싶다. 나 조차도 이 관계를 '주식'에 비유하는데 그가 느끼는 죄책감과 답답함은 얼마나 컸을지 마음이 아팠다. 그는 네게 돈을 쓰지 않는 대신 돈으로 할 수 없는 것들을 노력했다. 잠이 많으면서도 새벽에 일어나 데이트하러 서울로 나오고, 피곤함을 견디며 밤새 통화를 해주고, 애정표현도 아주 많은 편이었다. 가끔 그에게 돈이 생기는 날이면 그는 그 돈을 나를 위해 다 쓰기도 했다. 이따금씩 그는 나에게 귀여운 것들을 선물했다. 선물과 함께 "너의 돈으로 사기는 아까운 것들이잖아"라고 말하곤 했는데, 나는 그 선물을 받고 너무 고마웠지만, 결국 또 내가 메꿔야 할 돈이라는 부담으로 느껴지기도 했다.
그는 항상 내 눈치를 봤다. 나의 기분을 살피고 맞춰주려 노력했다. 초반에는 그런 모습들이 안쓰럽고, 또 마음이 찡하게 느껴져 미안했다. 후에 그런 모습들이 익숙해진 후부터는 그의 모습이 안쓰러운 강아지처럼 보였다. 언젠가부터는 그는 나의 "주식"에서 "강아지"로 종목이 변경되었다. 주식이라고 생각할 때는 그 사람이 나아지길, 성공해서 상황이 괜찮아지길 기대하지만, 더욱 악화되는 상황을 보며 그를 강아지처럼 곁에 두고 싶었다. 그러면 내가 그에게 무언가를 강요하거나 바라지 않게 된다고 생각했다.
사람에게는 기대를 하게 된다. 동등함을 찾고, 나보다 나은 모습을 기대하고, 발전하는 모습을 기다리게 된다. 하지만 강아지에게는 오직 사랑만을 바라게 된다. 나를 알아봐 주고, 인정해 주고 사랑해 주는 것만으로도 강아지의 가치는 충분하다. 그렇기에 애인은 내게 강아지 같은 존재가 되었다. 실제로도 강아지 이모티콘으로 애인을 저장해 두고, 영원히 내 곁에 두고두고 챙겨주고 사랑해 줄 거라고 다짐했다. 지금 생각하면 미친 생각이라는 것을 안다. 물론 다른 이들도 이 글을 보면 내게 충분히 미쳤다고 말할 수도 있지만, 나는 합리적인 사람이라 합리적인 상황이 중요했다. 애인에게 호구가 되는 건 스스로 용납할 수 없었다.
그의 역할이 주식과 강아지 경계에 있을 때 정말 강하게 현타가 왔던 날이 있었다. 애인이 주식으로 돈을 날리던 날이었다. 나는 주식을 팔아 그를 만나고 있는데 그는 내게 주식을 사두라며 자신이 산 주식에 대해 이야기를 했다. 돈이 어디서 났냐 했더니 일하며 모은 돈은 따로 빼놓았다고 말했다. 물론 자신도 불안하고, 또 그 돈이 필요하니 빼두는 게 당연할 수 있지만, 그때 그가 주식에 투자한 돈은 나에게도 없는 돈이었다. '내가 지금까지 뭐 한거지?' 약간에 현타가 왔다. 아니 너무 크게 현타가 와서 절망스럽기까지 했다. 나의 모든 배려와 노력이 그저 호구짓이었나 싶었다. 물론 애인은 나의 사정을 몰랐겠지만, 크게 실망스러웠다.
그날 이후로 이상하게 그에게 돈을 쓰는 게 아깝게 느껴지는 날들이 생겼다. 나는 당연히 그가 고마워하고 있는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닐 수도 있다는 게 비극이었다. 또 한편으로는 돈이 없으면 알바를 해서라도 벌면 되는 게 아닌가 의문이 들었다. 나도 체력이 좋아서, 시간이 남아서 알바로 돈을 번게 아닌데 말이다.
이후로 그의 상황이 조금 나아지고, 그가 조금씩 나에게 밥을 사기 시작했을 때쯤, 그가 나에게 말했다. “우리 누나가 네가 진짜 불쌍하대, 헤어지면 첫 연애에 돈 많이 썼다 싶겠대” 순간 입에 있던 밥이 코를 뚫고 정수리 위로 삐져나왔다. ‘이 말을 내가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가’ 깊은 고민에 빠졌다. 그의 장난스러운 얼굴이 그리도 미울 수가 없었다.
밥을 먹고 식당을 나와 그에게 말했다. “아까 했던 말 때문에 기분이 좋지 않아. 그 이야기를 왜 나한테 한지 모르겠어” 애인은 어이없다는 듯이 나를 봤다. “그게 왜 기분이 나쁜데? 기분이 나빠도 그런 말을 들은 내가 기분이 나빠야 하는 거 아니야?”라고 말했다. 이후에 그에게 사과를 받긴 했지만, 그 말이 그렇게도 마음을 후벼 팠다. 그러게, 나는 그 말이 왜 이리도 긁혔을까. 이유는 알고 있었다. 나도 나를 불쌍하게 여기고 있었기 때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