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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창복 Oct 30. 2022

소설 환취 (23화/25화)

23. 이야기의 끝

23. 이야기의 끝      


 땅콩이가 사고를 당했던 날, 땅콩이의 영혼은 제 곁을 떠나지 않고 경비실에 앉아서 저의 모든 행동들을 밤새 지켜보고 있었을 거예요. 언제나 제 주변에 있고 싶어 했으니까요.  

   

 도로에 있던 땅콩이의 잔해를 향해 "난 약자야!"라고 소리쳤던 게 기억나네요. 저 자신이 경제적 약자이면서 고용 약자이기에 그럴 수밖에 없었다는 뜻이었는데, 땅콩이는 다르게 본 모양이에요. 땅콩이의 눈에는 제가 스스로의 내면과 마주하지 못하는 약자로 보였나 봐요. 그래서 저를 위해 한 가지를 해주었던 것 같아요. 코를 빌려주는 것을요. 고양이는 사람보다 냄새를 잘 맡으니까, 저에게 있는 또 다른 내면을 냄새로 알아차리게 해주려 했던 게 분명해요. 특별한 고양이였으니 충분히 가능한 일이에요. 저의 생각에서 안 좋은 냄새가 나면 계속 코를 빌려주어 알아차리게 해 주었던 거였죠. 역시 땅콩이다운 생각이었어요. 천재 고양이니까요.


 짐이 가득 든 가방을 메고 액자를 옆구리에 낀 채, 경비실 문을 열어 뚜벅뚜벅 걸어 나가 "역주행 길" 앞에 멈춰 섰어요. 한 발짝만 더 나가면 야간 경비원 생활도 끝이었죠.  땅콩이는 다시 예전처럼 아무렇지 않게 저와 같이 가고 싶어 할 거란 걸 알고 있었어요. 어딘가 멀리 가버렸던 제가 다시 돌아온 것 같이 반가워할 것이고요. 짐승들에겐 그게 아주 자연스러운 일이니까요. 인간보다 지능이 낮아서 그런 건 아닐 거예요. 짐승들은 사람을 믿으면 먼저 등을 돌리지도 않고, 사람이 먼저 등을 돌려도 그 사람을 포기하지 않고 기다려주거든요. 땅콩이처럼요. 이건 짐승들만의 능력인 것 같아요. 인간은 태생적으로 짐승의 이런 능력을 웬만한 노력 없이는 흉내 내기 어려울 거예요. 그저 인간일 뿐이니까요.

      

 건물 사이로 해가 떠 있는 게 보였어요. 야간 순찰을 하며 땅콩이와 나란히 걸을 때, 제 발걸음에 발맞추듯 걷는 땅콩이를 보며 즐거워했던 기억이 나더군요. 땅콩이가 옆에서 같이 출발할 준비를 하고 있을 걸 상상했어요. 그래서 순찰을 시작할 때처럼 발맞춰 걸어 나가기로 했어요. 땅콩이랑 햇볕을 받으며 세상을 순찰하는 것도 꽤 낭만적일 것 같더군요. '킁킁' 코를 벌름거리며 땅콩이가 냄새를 맡던 모습을 흉내 내봤어요. 다행히 아무 냄새도 나고 있지 않더군요. 언제 다시 그 냄새가 나더라도 금방 알 수 있으니, 언제든 땅콩이가 좋아했던 저를 찾아 돌아갈 자신이 생겼어요.


 "역주행 길"이란 이름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았어요. 왜냐하면 그 길을 저 아닌 다른 존재와 같은 방향으로 걸어가게 되었으니까요. 할아버지 경비원분에겐 아마 그 길이 다른 의미의 "역주행 길"이었을 것 같더군요. 다음 순찰 코스인 세상으로, 한걸음 크게 띄우며 말했어요.     


"자! 땅콩아 가자!"  


 

 제 이야긴 여기까지예요. 이야기 봐주셔서 감사해요. 그럼 이제 저와 땅콩이를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르는 그 사람을 만나러 갈 채비를 해야겠어요. 아마 많이 기다렸을 거예요. 세월이 많이 지났으니까요. 

그리고 바로 뒤이어 이야기를 할 사람에게 할 말이 있어요. 


"메시지 잘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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