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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 갱 Oct 23. 2021

[여행 속 여행] 자마미섬





자마미 섬에 도착하다


의 여름휴가를 맞아 주변 섬 여행을 떠나기로 했다. 오키나와에는 본 섬 외에도 몇 개의 크고 작은 섬이 있는데, 어디를 가면 좋을지 훑어보던 와중에 자마미 섬에 대한 짧은 후기에 맘이 이끌렸다.


"오키나와 본섬에서는 시간이 느리게 간다고 생각이 들었고, 자마미에서는 시계가 존재한다는 것도 잊어버렸다." 


외국인 여행자의 짧은 리뷰였는데, 이 글을 보고는 바로 다른 후보를 덮어두고 자마미로 행선지를 정했다. 후의 이야기지만 자마미에서의 날들은 정말 그러했다. 눈 뜨면 밥을 먹고 바다로 갔고, 적당히 허기가 지면 다시 돌아와 씻고 저녁을 먹고, 밤이 되면 어김없이 별을 보러 나갔다. 해와 바다와 별이 전부인 곳.



자마미 섬 여행을 준비하며 가장 먼저 신경 썼던 것이 숙소였다. 대부분의 여행객은 우리나라의 민박에 해당하는 ‘민숙(民宿, 민슈쿠)'에 묶는 것이 보통이었다. 숙박뿐 아니라 보통 조식과 석식까지 먹을 수 있다는 점이 민박과의 차이점이다. 우리의 첫 민숙인데 이왕이면 자마미의 이미지와 어울리도록 규모가 크지 않은 곳에 가고 싶었다. 너무 현대적이기보다는 깨끗하면서도 연륜이 느껴지는 곳이 적당할 것 같았다. 많은 민숙들이 (어쩌면 자마미가 유난히 작은 섬이라 그럴지도 모르겠다) 영어는 고사하고 일본어 개별 홈페이지도 잘 없어서 애를 먹었지만, 자마미 섬 여행안내 사이트와 구글, 트립어드바이저의 도움으로 숙소를 결정할 수 있었다. 친절하고 식사가 맛있다는 평에 이끌려 '미스마루 민숙'에 가보기로 했다.


자마미 섬 여행안내 사이트 :https://www.vill.zamami.okinawa.jp


자마미 항에서 보이는 마을의 전경

나하에서 페리를 타고 한 시간 남짓


 자마미 섬에 도착해서 중심가에 들어가자마자 '정말 작은 마을이구나' 한눈에 알 수 있었다. 차보다는 사람을 위한 골목길, 글쎄 작은 일본 경차라면 요리조리 몸을 돌려 교행이 가능한가 싶은 이 거리가 자마미의 중심거리다. 이 거리 끝에는 '105 스토어'라는 자마미에서 가장 핫한 쇼핑 플레이스도 있다. 이런 말을 듣고 찾아간다면 적잖이 실망을 안게 될 작은 동네 슈퍼지만, 실제로 자마미의 슈퍼 중 가장 늦게까지 영업하고 다양한 상품을 파는 곳이다. 더불어 자마미 여행을 할 때 항구와 함께 자주 등장하는 이정표이기도 하다. 105 스토어와 그 앞의 담벼락의 시사들은 누군가 자마미 여행을 계획한다면 금방 만날 수 있는 사진이다. 그러고 나서 실제로 여기에 도착하면, 이미 눈에 익은 곳에 도착했다는 사실에 금방 반가워질 것이다. 우리 역시 처음 보는 곳이지만 다시 만난 듯 반가웠으니까.


 예약한 숙소는 자마미 항에서 이어지는 이 소박한 중심가 초입에 위치한다. 항구에 가까울수록 교통이 좋다고 하는데, 이 섬의 대중교통은 노선이 3개뿐인 버스와 배편이 전부이고, 이 모두가 자마미 항에서 시작되니 맞는 말이긴 하다. 물론 작은 마을이니만큼 항구에서 가깝고 멀고 가 큰 차이를 보이진 않지만, 한 여름의 오키나와 햇빛을 견디며 해변까지 갈 생각을 하면 조금은 숙소의 위치를 고려해볼 만도 하다. 메인 길에서 지도를 보며 한 골목 들어오니 히비스커스가 빼꼼 맞이한다.

 

 처음 묵는 일본의 민숙. 네 평 남짓한 다다미방 하나, 공용 샤워실과 공용 화장실 두 개가 다인 곳이었지만, 나름대로 객실마다 작은 테라스도 있어 쨍한 햇볕에 옷을 말리기엔 충분했다. 냉장고, 탁자, 티비, 에어컨이 있는 방은 안에서 지내기 부족함이 없었다.

  

 자마미에 머무는 동안 우리는 다이빙, 스노클링 위주로 계획을 잡았고, 그 수가 많지 않아 여행객으로 붐빈다는 식당을 전전하기보다는 맛있는 집밥을 먹는다는 생각으로 민숙에서 아침과 저녁을 먹었다. 우리가 머무는 동안 식사를 하는 다른 팀이 적었기 때문에 식사시간은 단순히 밥을 먹는 시간이 아니라 아주머니와 담소를 나누는 시간이기도 했다.


 아침 식사 때 맞춰 '오하요 고자이마스'로 시작하는 주인아주머니와의 대화는, 나의 짧은 일본어 탓에 눈짓과 손짓 그리고 번역기까지 총동원되어야만 이어갈 수 있었다.

"아마비치(阿真ビーチ)에 가면 어디가 좋은가요?"

가볍게 건네는 내 질문에, 아주머니는 친절하게 설명을 해주시다가 이내 핸드폰을 꺼내셨다. 그리고는 번역기가 잘 알아들을 수 있도록 목소리를 한 톤 올려 발음을 또박또박, 천천히 문장을 읊었다.

"아마비치 안 쪽으로 가면 거북이가 많이 찾아와요, 거북이 먹이가 거기에 있거든요"


섬이니 만큼 아침에 마을 스피커로 바다 상황에 대한 안내방송도 나오는데, 파도가 높은 날은 '오늘은 해수욕장에 들어갈 수 없습니다', '나하에서 출발하는 배는 결항되었습니다'하는 방송이다. 일본어로만 방송이 나오기 때문에, 일본어를 모르는 여행객들은 버스정류장이자 페리가 들어오는 항구에 가서 게시물을 봐야 알 수 있다고 한다. 우리는 아주머니의 목소리와 번역기를 통해 아침을 먹으며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고, 덕분에 고대했던 거북이도, 은하수도 잘 만나고 올 수 있었다.


자마미에서 난 식재료로 만든 매일 다른 메뉴의 저녁식사.

한참 놀고 들어 온 저녁 시간에는 '오늘 거북이는 잘 보았는지', '내일 일정은 어떻게 되는지'와 같은 주제로 가볍게 이야기를 했다. 특히나 메뉴가 다양한 석식 때는 메뉴 설명도 꼼꼼히 해주셨다. 다소 무뚝뚝한 주인아저씨가 묵묵히 주방에서 음식을 해주시면, 아주머니께서 어떤 재료 한 요리인지 하나씩 설명해주시는 식이다. 덧붙이자면 손맛 가득한 밥상은 익히 참고했던 후기대로 수준급이었다. 섬에서 나는 재료를 활용한 음식이라 특별했고, 다양한 반찬을 곁들인 오키나와 가정식을 먹고 싶었던 우리에게 딱 맞는 식단이었다.


 자마미 섬의 바다와 별도 잊지 못하겠지만, 작은 민박집에서 아주머니와 나눈 대화가 오래 기억에 남는다. 번역기에 대고 소곤소곤 그렇지만 또렷하게 말씀하시는 아주머니의 목소리도 아직 생생하다. 민박집의 사내아이(아주머니의 늦둥이 아들, 또는 큰 손주 일지 모르겠다)와도 인사말을 매일 나누었다. 짧은 일어 실력만큼이나 짧은 대화였지만 헤어질 때 아이로부터 직접 만든 선물을 받기도 할 만큼 친숙해졌다. 참 정이 많은 곳이다. 자마미가 아닌 곳에서도 친절한 사람들은 참 많이 만났지만, 여행지에서 이토록 정을 느낀 경험은 내 기억이 닿는 한 처음이다. 언젠가 자마미 여행을 계획한다면, 이 소박한 섬에 어울리는 각자의 작은 민숙을 찾아보기를 추천하고 싶다.




자마미의 바다


자마미에서의 하루하루는 단조로웠고, 그래서 풍요로웠다.


 자마미 섬에는 유명한 두 개의 비치가 있는데, 하나는 아마비치, 그리고 하나는 후루자마미 비치이다. 아침을 먹고 나서 어느 해변으로 갈지 정하는 것이 하루 중 가장 커다란 고민이 된다. 오키나와에 온 뒤로 자주 스노클링을 다녔던 우리는 익숙하게 그물 가방에 오리발과 웻수트를 챙겨 넣는다. 벌써 조금 날금날금해진 그물 가방이 우리가 나름 바닷사람 된 것처럼 보여줘서 식은 더 마음에 든다고 했다. 민박집 골목을 나와 항구가 있는 사거리에서 다다르면 해안선을 따라 시계방향으로 이어지는 왕복 2차선의 도로이자 이 섬에서 가장 큰 도로가 나온다. 그마저도 한적해서 길을 따라 걷다 보면 가끔 지나가는 버스와 차가 구경거리가 된다. 한적하지만 지루하지 않은 것은 바로 옆에 펼쳐진 바다색 덕분일 것이다.

  

아마비치에서 식사 중인 개북이

아마비치 우리가 자마미로 여행지를 정한 가장 큰 이유였다. 바다거북이가 먹이를 먹으러 오는 해안이라 해수욕을 하면서 바다거북을 볼 수 있는 곳이기 때문이다. 스쿠버다이빙을 할 때 물속에서 마주하는 거북이는 헤엄치는 모습이 너무 여유로운 나머지 영험하게 보이기도 한다. 아니 그에 앞서 일단 너무 아름답다. 딱 붙는 수트를 입고 커다란 수경을 통해 보이는 눈, 숨을 쉬어보겠다고 한껏 입을 내밀고 호흡기를 문 내 모습과는 대조적으로 아름다운 존재인 것이다. 그런 거북이를 수영만으로 만날 수 있는 곳이라니. 


 민숙집 아주머니가 알려주신 대로 해변의 꽤 안 쪽으로 들어가서 수영을 하다 보니, 갑자기 근처에서 한 가족의 환호소리가 들렸다. 혹시나 싶어 얼른 헤엄쳐 가보았더니 아니나 다를까 거북이 한 마리가 한가로이 물풀을 뜯어먹고 있었다. 아니, 바다거북이가 수심 1.5미터 정도나 될까 싶은 얕은 바다에서 풀을 뜯어먹고 있는 모습을 보다니! 이렇게나 감격스러운 장면을 무미건조하게 쓰고 있는 나 자신을 진심으로 반성한다. 스노클을 입에 물고도 '흐흐흐'하는 웃음소리가 절로 나왔다. 거북이를 방해하지 않는 선에서 그저 같이 둥둥 떠서 지켜보았다(거북이를 보호하기 위해서 너무 가까이 가거나, 만지는 행위, 거북이 위에서 수영하는 행위는 금지되어있다). 거북이는 주위의 시선에 아랑곳 않고 물풀을 씹어먹었는데, 거리가 꽤나 가까워서 풀을 씹는 소리가 들리는 것만 같았다. 거북이가 좀 편하게 식사를 하도록 두고 다른 쪽으로 헤엄쳐갔을 때 금방 또 한 마리가 보였다. 오빠에게 알려주려 뒤를 돌았더니 또 한 마리. 여기 정말 거북이들의 해변이구나! 

 거북이 말고도 아마비치에는 산호초들과 그 곁을 지키는 색색깔의 물고기들도 볼 수 있다. 얕은 바다의 산호초 위에 둥둥 떠서 가만히 보면, 수면을 뚫고 들어오는 햇살을 받으며 손톱만큼 작은 수 많은 물고기들이 물살에 따라 바삐 움직이는 것을 볼 수 있다. 나의 표현력으로는 파란색, 하늘색, 보라색, 빨간색 정도로밖에 옮기지 못하는 게 아쉽지만, 햇살이 들어올 때 얕은 바닷속은 그러한 색들이 어우러져 천연하여 아름답다.


 후루자마미비치는 아마비치와는 다르게 뻥 뚫린 느낌이다. 후루자마미(古座間味)가 한자어로 '옛 자마미'이니 예전부터 자마미 섬을 대표하는 해안이 되겠다. 하얀 모래와 바다색이 대조를 이루는데, 바닷물 색도 아마비치보다 더 짙은 푸른색을 띤다. 파랗다 못해 퍼런 바닷빛. 해안에서 조금만 수영해서 들어가면 수심이 급격히 깊어지는데 그래서 그런 짙은 빛깔을 띠나 보다. 산호도 종종 보이고 물고기도 지나다니기는 하지만, 관광안내서에서 스노클링 명소라고 소개하는 것과 달리 우리가 느끼기엔 아마비치와 비교했을 때 여기는 일광욕과 바다수영에 더 최적화된 곳이다. 하루는 파고가 높아 해수욕장이 개장하지 않은 날에 들러보았는데 언제 사람이 붐볐냐는 듯 텅 빈 바다가 또 매력적이었다. 한적하게 파도소리를 들으며 쉬고 싶다면 이런 날을 고르는 것도 나쁘지 않다.

후루자마미 비치

 자마미의 바다는 다이빙 초심자에게도 잔잔하며 다채로운 바닷속을 보여준다. 우리가 방문한 '캣츠 인 케라마'라는 다이빙 샵은 한국인들에게도 평이 좋았는데, 그곳에서 유명한 가이드인 노부 상을 만날 수 있었다. 마침 운이 좋아서 단출하게 노부 상과 우리 부부 셋이서만 다이빙을 나갔다. 


 말은 잘 안 통하지만 옆에서 보기에 노부 상에게는 자마미 바다는 정말 어렸을 적부터 놀던 앞바다 같았다. 한 번은 물속에서 바위에 등을 긁고 있는 거북이를 만났는데, 노부 상은 내 손을 끌어다가 거북이의 등 껍데기 사이사이를 긁어주도록 했다. '이래도 되나?'싶었지만, 노부 상을 따라 살살 등껍질의 이물질을 긁어서 떼어주니, 거북이가 가만히 내 손에 몸을 맡겼다. 그러더니 스윽 바위 사이에 나와 나에게 다른 쪽 등을 내어주는 것이다. 이렇게나 황송할 때가! 혹여나 심기에 거슬릴세라 맞은편 등도 살살 긁어주니, 조금 뒤에 만족했는지 다시 바위로 들어가 쉬었다. 

 노부 상에 대해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가끔 보여주던 트레이드마크 같은 독특한 자세이다. 바닷속에서 두 팔을 벌려 몸을 십자가 모양으로 만든 뒤 빙글빙글 도는 모습. 그 모습이 너무 여유로워 보여서 그라면 물속에서 잠도 잘 수 있을 것처럼 보였다. 온몸으로 바다를 느끼던 그와 함께한 다이빙은 아직도 우리에게 이야깃거리이다.


 우리가 사랑했던 자마미의 거북이들은 그 각각이 이름을 갖고 있을 정도로 바다 환경 연구에도 중요한 주제인데, 해가 가며 그 수가 안타깝게도 줄어들고 있다는 책을 읽은 적이 있다. 코로나로 사람의 발길이 끊긴 그곳에 대신 조금 더 많은 거북이 와서 쉬다 갈 수 있지 않을지, 가끔 그 바닷속을 그려본다.



자마미 구석구석


타카츠키야마(高月山) 전망대의 낮과 밤

 우리는 스쿠터를 빌려 섬 곳곳의 전망대를 찾아다니기도 했다. 마을과 가까운 타카츠키야마 전망대에서는 자마미 마을을 한눈에 내려다볼 수도 있었다. 참 작은 마을이다. 아마 내가 몸을 뉘어 잠이 든 장소 가운데에서 가장 소박한 곳이 아닐까 싶다. 햇살 아래서 보는 마을은 밤에 달이 비추는 마을과는 또 다른 느낌이다. 산 뒤로 넘어가려는 해를 보니, 작게 보이는 집들의 부엌에서 분주히 저녁 준비가 한창일 것 같은 생각이 든다. 마을의 반대쪽, 그러니까 섬의 동쪽으로는 오키나와 본섬의 나하시가 보인다. 밤에 올라서서 보면 어둑어둑한 자마미와 불빛이 밝은 나하의 야경은 사뭇 대조적이다. 이 섬에서 나고 자란 사람은 이곳에 서서 나하를 보며 '어른이 되면 더 큰 곳으로 가고 싶다'라고 생각하지 않았을까. 그렇게 커서 도시로 나간 어른은 다시 이곳에 오면 무슨 생각이 들까. 내가 살아보지 않은 삶의 이야기들이 문득 궁금해진다.



 고작 4일의 휴가를 내고 왔지만, 섬을 훑어보기에는 감히 모자라지 않았다. 오키나와 본섬의 시골(村)인 요미탄에서는 기꺼이 살겠지만, 자마미는 너무 작아 여기서 사는 것은 무리라며 우리끼리 농담을 했다. 하지만 매일 비슷한 골목골목을 걷던 발길은 지루하지 않았다. 여행 계획을 미리 세우기 좋아하는 나지만, 선택지가 많지 않은 자마미에서는 마음 편히 무계획을 즐길 수 있었다. 우리가 그동안 떠올리던 '휴양지'의 느낌이 아니라, 작고 조용한 이 섬에, 남의 집에 초대받아 들어가듯 다소곳이 신을 벗고 들어와 앉아있는 느낌. 그렇게 있는 듯 없는 듯 조용히 자박자박 걷기에 자마미는 크지도 작지도 않은 섬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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